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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관리툴 2012년09월10일 12시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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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은행나무 숲이 사라졌다
자연은 또 어떤 경고로 진실을 알려줄까

이상원 기자 solee412@newsmin.co.kr

비가 온다. 지난 8월 한 달 중 대구에는 10일간 비가 왔다. 개인적으로 비가 오는 날을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나 8월의 더위를 완전히 씻어내지도 못하고 눅눅함만 더하는 비는 더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올해는 비를 마냥 싫어할 수만은 없었다. “적어도 비가 오는 날만큼은 공사를 멈춘다”는 강정마을 때문이기도 하고, 적은 비에도 허물어지는 4대강을 통해 진실을 밝혀내는 자연의 경이로움에 놀라기도 했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마을은 비가 많이 오면 비상상태가 된다. 지난 2010년 여름 연달아 두 차례나 마을의 절반이 침수당하는 재해를 당했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 기억을 더듬어보면 비가 많이 올 때마다 일찍 하교하곤 했다. ‘잠수교’라 불린 마을 초입 다리가 낮아서 조금만 비가 많이 오면 불어난 강물에 잠겨버렸기 때문이다. 마을은 비에 취약했다. 하지만 최근의 재해는 다분히 자연을 파괴해버린 대가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게 한다. 두 차례의 침수가 모두 그해 들어선 배수펌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2002년 전국적으로 큰 피해를 준 태풍 ‘매미’가 왔을 때도 마을은 침수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그 피해 정도는 2010년의 새 발의 피에 불과했다. 매미 때는 마을 앞 금호강이 불어나 강물이 역류하면서 저지대가 잠겼다. 하지만 2010년에는 마을의 절반이 잠겼지만, 금호강은 수위가 조금 늘어났을 뿐이었다. 배수펌프가 고장 나 마을 고지대에서 내려오는 물이 강에 배수되지 못한 채 역류하면서 재해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바꿔말해 배수펌프가 없었다면 재해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다행히 올해는 큰 비가 오지 않아 피해 없이 볼라벤을 보낼 수 있었지만, 마을은 배수펌프로 인해 조금씩 예전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어린 시절 뛰어놀았던 마을 뒷산에는 마치 일제가 조선의 정기를 빼앗기 위해 박았던 쇠말뚝 같은 쇠기둥이 설치되었다. 배수펌프 고장이 산에서부터 내려오는 나뭇가지, 찌꺼기 때문이었다며 그것을 걸러내기 위해 설치한 것이었다. 가장 큰 변화는 뒷산 초입에 자리 잡고 있던 은행나무 숲이 사라진 것이다.

▲ 은행나무 숲이 있던 자리는 이제 허허벌판, 흙만 파헤쳐진 채 본격적인 공사를 기다리고 있다.

은행나무 숲은 실개천을 사이에 두고 우리집과 마주 보고 있었다. 거실 창으로 울창하게 보이던 은행나무 숲이 어느 날 통째로 없어진 사건은 한번 손대기 시작한 자연이 얼마나 걷잡을 수 없이 파괴되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담당구청은 그곳에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가둬두는 침사지를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배수펌프가 많은 물을 한꺼번에 감당하지 못하니 미리 물을 가둬둘 시설을 만들겠다는 계산이었다.

배수펌프가 없던 시절 스스로 물을 뱉어놓았던 마을은 이제 그 능력을 상실했다. 산소호흡기 없이는 숨을 쉬지 못하는 빈사상태의 환자처럼 마을은 죽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주민들은 언제 또 재해가 일어날지 두려움에 떨며 비만 오면 애처롭게 기계만 바라보게 되었다. 스스로 흐르던 물길을 막아서 생긴 재해를 또 다시 물을 가둬 해결해보겠다는 어리석음에 실소만 나온다.

사라진 은행나무 숲 자리에 굴삭기가 올라오고 땅을 파헤치는 모습을 보며 두려움을 느꼈다. 또 무엇이 없어질까. 어디가 파헤쳐질까. 은행나무 숲 주변의 공지에 고추며 오이를 기르던 이웃할머니의 작은 텃밭이 사라지고, 그 위에 ‘경작금지’라는 붉은 팻말이 꽂히듯 또 무엇이 ‘금지’될까. 두려웠다. 자연은 또 어떤 경고로 진실을 알려줄까.

이상원 기자 solee412@newsm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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