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될 일이가. 뼈 빠지게 공부해서 시험쳐가 정규직 되는데, 비정규직이 정규직 시켜달라고 데모하면 되나” 지난 22일, 대구 교육청 앞에서 있었던 학교비정규직 결의대회 현장을 지나던 한 아주머니가 이렇게 중얼거렸다. “비정규직도 힘들게 시험치긴 마찬가지”라고 하니, 아주머니는 “그래도 정규직이 얼마나 힘들게 되는 건데”라는 말을 되뇌며 그곳을 지나쳐갔다.
아주머니에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처해 있는 열악한 노동조건이나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 동일노동에 동일임금 따위의 말은 씨알도 먹히지 않을 듯했다. 아주머니의 머릿속에는 내 딸이, 내 아들이 뼈 빠지게 공부해서 정규직 됐는데 ‘데모’로 정규직 시켜달라고 해서야 되겠느냐는 생각이 견고하게 자리 잡은 듯 보였다. 그 자리에서 “그러니까 비정규직을 뽑지 않고 대신 정규직을 많이 늘리면 지금처럼 뼈 빠지게 공부 하지 않아도 되고, 비정규직이 정규직 시켜달라는 일도 없지 않을까요”라고 말했다면 아주머니는 어떤 대답을 했을까.
신자유주의, 자본의 탐욕, 재벌 중심의 경제 구조 등 많은 진보적 학자들은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문제점으로 이것들을 꼽는다. 따라서 앞서 아주머니의 경우도 아주머니가 비정규직을 없애는 것보다 힘들게 된 정규직의 지위를 인정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도록 각박해진 사회의 문제라고 본다. 하지만 최근 발생한 일련의 사태, 이를테면 적당한 선에서 사측과 타협하려 하는 현대차 정규직 노동자들의 모습을 보면 정말 사회가 문제인 걸까 싶은 의문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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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일, 전국에서 500여명의 시민들이 울산 현대차 공장을 찾아 현대차의 불법파견 인정과 비정규직 전원의 정규직화를 소리 높였다. | | |
지난 16일 현대자동차는 노사 단체교섭에서 사내하청 노동자 3천명을 정규직 전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자 몇 달 동안 한 덩어리가 되어 싸워왔던 현대자동차의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사이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뒀다며 회사와 타협하려 했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전원 정규직화가 아니면 안 된다며 타협을 거부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회사안을 거부한 이유는 분명했다. 전환하겠다는 3천명은 실상 정년퇴직을 맞을 2,845명 정규직 노동자의 신규채용분이였기 때문이었다. 회사로서는 미숙련 신입사원보다는 숙련된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뽑으면 교육비용도 절약하고,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했다는 명분도 얻을 수 있으니 꿩 먹고 알 먹는 타협안을 내놓은 셈이었다.
더불어 그렇게 되면 정규직 신규채용이 없을 테니 앞서 아주머니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비정규직이 정규직 일자리를 ‘데모’로 ‘빼앗아’ 가는 걸로 비칠 수밖에 없다. 그리되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쟁의행위는 더더욱 대중으로부터 손가락질 받게 된다. 또 비정규직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3천명안에 포함되기 위한 눈치 싸움이 시작되어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될 공산이 커진다. 그러니까 회사의 3천명 전환안은 일석이조가 아니라, 돌 하나로 몇 마리의 새를 잡을지도 알 수 없는 ‘신의 한 수’인 셈이다.
하지만 이를 뻔히 알고 있는 정규직 노동자들은 지난 5월부터 이어온 ‘불법파견 특별교섭’ 테이블을 밀어내고 정규직노조의 단협으로 사측과의 협상을 마무리하려 하고 있다.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지난 24일 열린 현대차 정규직노조의 임시대의원대회에서는 결국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했다.
상황이 이렇고 보니 아주머니와 현대차 정규직노조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 수 없는 지경이다. 단지 둘 사이에는 몰라서 제대로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알기 때문에 더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 시대의 자화상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을 뿐이었다.
같은 날, 일부 정규직 노동자들이 회사 안을 받아들여선 안 된다며 선언문을 발표했고, 전국에서 500여명의 시민들이 울산 현대차 공장을 찾아 현대차의 불법파견 인정과 비정규직 전원의 정규직화를 소리 높였다. 지금 이 순간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울산으로 집중되고 있다. 현대차의 결정이 바로 2012년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현실을 바로 알 수 있는 척도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