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 존재하는 고인돌(支石墓, Dolmen)의 수는 대략 6만여 기이다. 그런데 그 6만여 기 중 (1999년 문화재청과 서울대박물관 공동 발간 <한국지석묘유적종합조사연구>에 따르면) 남한에만 2만 9510기의 고인돌이 있고, 북한에도 2만 안팎의 고인돌이 남아 있다. 그 덕분에 우리나라는 국제적으로 ‘고인돌의 나라’로 아주 유명하다. 특히 2천여 기가 밀집된 고창, 화순, 강화의 고인돌들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우리나라에서 고인돌에 대한 발굴 조사가 처음으로 시행된 때는 1927년으로, 대구 ‘대봉동 고인돌’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그만큼 대구에 고인돌이 많았다는 뜻이다. <대구시사(市史)> 102쪽의 ‘대구 분지를 흐르는 신천의 유역에 분포한 지석묘군은 일찍부터 알려졌고, 남방식 지석묘 묘제의 대표적 유적으로 유명하다. 이 지석묘군은 1920년대 초기만 하더라도 옛 대구읍성 바깥에 분포해 장관을 이루었다.’라는 대목은 결코 허장성세가 아니다.
대구시가 펴낸 <대구의 향기> 35쪽에 나오는 ‘대구에는 굉장히 많은 지석묘가 있었다. (중략) 대구역 부근에서 달성공원에 이르는 사이에 지석묘가 있었고, 서남쪽으로는 화원(읍)에 이르는 도로 부근에 2km에 걸쳐 이어져 있었고, 동남쪽으로는 봉산동 대봉동에 이르는 사이에 있었으며, 신천 너머 수성들에도 남북으로 1km에 걸쳐 늘어서 있었다.’라는 표현 역시 사실을 기록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 대구 시내에서 제대로 된 고인돌을 보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대구의 향기>가 지적하는 것처럼 ‘시가의 발전에 따라 지금은 대부분의 지석묘가 없어지고 말았다.’ <대구시사>에 나오는 ‘대구의 그 많던 고인돌들이 거의 흔적을 잃어가고 있다’를 읽는 눈에는 저절로 물기가 감돈다. 도대체 그 많던 고인돌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식민지 시대, 이 땅을 강제 점거하고 있던 일본인들은 자기네 정원을 꾸미는 데에 우리의 귀중한 문화유산을 함부로 가져다 썼다. 그 일을 두고 <대구시사> 103쪽은 ‘1927년 첫 지석묘 발굴 조사가 있었을 때에는 이미 상당수의 지석묘 상석이 일본인들의 정원석으로 많이 이용되어 원위치에서 이동되었다’고 고발하고 있다.
하지만 ‘대구는 광복 전까지만 해도 거석 유적들이 도심 곳곳에 즐비해 <고인돌의 도시>라고 불렸다(<영남일보> 2010년 10월 9일, 박진관 기자)’는 지적을 보면, 대구 지역 고인돌들이 허망하게 사라져간 데에는 우리 스스로 책임도 적지 않다고 보아야 한다. <대구시사>도 ‘일본인들의 행위 후에도 시가지의 확장으로 상석 대부분이 제거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대구 시역의 확장으로 진천천 유역, 욱수천 유역, 율하천 유역의 반야월 지역 지석묘군마저 최근의 갑작스러운 경제성장에 따르는 대규모 공업단지 조성, 시가지 확장 등 국토개발로 거의 흔적을 잃어가고 있다’면서 우리의 잘못을 자책하고 있다. 세계문화유산인 고창보다도 더 많아 무려 3천여 기의 고인돌이 있었다는 대구, 지금도 그것들이 제자리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학습을 하려면 박물관을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유리 상자 안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석기와 청동기 유물들은 박물관이 아니고서는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대구도 마찬가지이다. 대구의 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에 대해 알려면 국립대구박물관, 경북대박물관, 계명대 행소박물관 등으로 가야 한다. 그러나 고인돌이라면 사정은 다르다. 그들은 아직도 비바람 속에 유유히 남아 있다.
대구에서 찾기 쉽고, 안내판 설치 등 정비가 잘 되어 있는 고인돌 유적은 어디일까? 진천동 유적지(사적 411호), 지하철 대구역 칠성시장 방향 출구에 있는 칠성바위 유적지, 상동 정화팔레스APT 바로 뒤에 있는 상동 유적지, 대구교도소 담장 바로 아래와 화장사 대웅전 옆에 걸쳐 분포하고 있는 화원읍 천내리 유적지(기념물 13호) 등을 손꼽을 수 있다. 그 이외에 시지 보성아파트 단지 내, 수성유원지와 안상규벌꿀 중간 지점(기념물 12호), 달성군 가창면 냉천제일교회 뒤의 밭(기념물 14호), 대구박물관 건물 뒤 유적공원 등에서도 고인돌 유적을 감상할 수 있지만, 보존 상태는 앞엣것들만 못하다.
특히 아이들이 고인돌에 새겨진 선사시대 그림들을 탁본할 수 있게 모형 입석을 세워둔 진천동 유적, 옛날 무덤의 속을 고스란히 들여다볼 수 있도록 꾸며진 상동 정화팔레스APT 소공원, 돌마다 사람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 흥미성이 돋보이는 칠성바위는 직접 가서 볼 만한 ‘교육적’ 고인돌 유적이다. 또한, 대구교도소 철망 아래에 버티고 있는 화원읍 천내리의 고인돌들도 발길을 잡아당긴다. 교도소 담장과 고인돌이 나란히 있는 풍경과, 원시종교의 유적인 고인돌 운집터에 현대종교인 사찰이 지어져 있는 모습 앞에서 답사자는 저절로 ‘인생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정녕, 인생이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