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 죄송합니다. 복지과가 뭐하는 곳인지. 사람이 법을 만드는 데 이럴 수 있소 … 기초생활 지원금이 끊겨 살기 힘들어 먼저 간다. 미안하다”
또 하나의 목숨이 세상을 떠났다. 거제에 사는 이 모씨(76)는 시청 화단에서 농약을 마시고 자살했다. 5년 전부터 기초수급대상자로 선정돼 시청으로부터 매달 약 30만 원의 수급비를 받아오다 무직이던 사위가 취직하면서 수급이 중지됐기 때문이다. 이씨는 혼자서 월세방에서 살아오고 있었다.
"이렇게 혼자서는 꼼짝도 못하는데 1급이 아니라는 이유로 외출이나 가사, 목욕 등 활동 보조서비스를 전혀 받지 못합니다."(뇌병변장애 4급, 이모씨)
이날 중증장애인들은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자진출두하여 노역을 신청했다. 이들은 획일적인 기준으로 장애인의 생사여탈권을 행사하는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를 폐지를 요구하며 국가인권위원회와 보건복지부 산하 장애등급심사센터를 점거하는 등의 활동을 벌여왔다. 장애인의 권리를 찾기 위해 투쟁했지만, 돌아온 것은 벌금폭탄이었다. 현재 기초수급자로 43만 원의 생계비를 받으며 살아가는 상황에서 60만 원을 벌금으로 내라고 하니 차라리 잡아가라는 이야기다.
모두 8월 7일 일어난 일이다.
8월 8일 오전 11시 동대구역 앞에서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반빈곤네트워크 등은 기자회견을 열고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의 출범을 선포했다. 이들은 100만인 서명운동과 10만인 엽서쓰기 운동 등을 통해 대통령후보 및 19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의원들에게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를 요구할 예정이다. 더불어 대시민선전전과 거점농성도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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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명애 대표가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 요구를 담은 엽서를 우체통에 넣고 있다. | | |
박명애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는 “등급을 받으면 내 삶이 좋아질 줄 알았다, 하지만 1급이 되고 나니 그 1급이란 게 나를 옥죄더라”며 “2급 장애인은 1급 장애인을 부러워하고, 1급 장애인은 등급이 떨어질까 두려움에 떨며 지낸다”고 말했다. 이어 박 대표는 “장애등급으로 장애인 간의 불화를 조장하지만 결국 장애등급제는 예산의 문제”라며 정부와 국회, 대선후보자들이 책임지고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을 촉구했다.
아요 인권운동연대 활동가는 “우리 사회의 죽음의 대부분은 빈곤의 문제인데, 사회가 정말 진지하게 빈곤을 해결할 의지가 있다면 부양의무제를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잇따른 자살과 죽음을 이야기하며 “빈곤의 문제를 가족에게 전가하는 사회의 복지는 제대로 된 복지도, 권리도 아니다”고 말했다.
임성열 민주노총대구본부장은 비정규직보호법 사례를 들며 “국가에서 무슨 보장, 보호법을 만든다고 하면 덜컥 겁이 난다”며 “사실 풀어놓고 보면 그것들은 비정규직으로부터 자본가를 보호하는 법이었고, 수급자로부터 재벌들을 보호하는 법이었고, 장애인으로부터 권력자를 보호하는 법이었다”며 현실을 꼬집었다.
노금호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집행위원장은 “정부와 국회, 대선후보자들을 상대로 시민들의 요구를 담은 엽서와 서명 등을 받아 전달하고, 중앙의 거점농성도 함께 진행해 나갈 것”이라며 투쟁방향을 밝혔다.
한편,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오는 8월 20일경 서울에서 개최되는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한 전국 결의대회에도 참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