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儒家)의 창시자로 추앙되는 공자(孔子, B.C.551~B.C.479)는 춘추시대 말 현재의 산동성(山東省)에 해당하는 노(魯)나라에서 태어났습니다. 이름은 구(丘), 혹은 중니(仲尼)라고도 하지요. 그가 살았던 노나라는 예악(禮樂)과 전장제도(典章制度)를 완비한 왕조로 잘 알려진 주(周)나라 무왕(武王)의 동생인 주공(周公)의 자손들에게 분봉 된 나라로, 문화적 수준이 매우 높았습니다.
공자가 생존할 당시는 봉건제도의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사회적 혼란이 가중되던 시기였습니다. 이때 공자는 다른 제자백가(諸子百家)와 마찬가지로 사회 혼란의 원인에 대해서 고민했고,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자 했습니다. 그 결과 모든 혼란의 원인은 ‘사랑’(仁)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부모와 자식, 임금과 신하, 남편과 아내, 어른과 아이, 나라와 나라, 벗 사이에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천하가 혼란하게 된다고 본 것이지요.
인(仁)은 사랑이다
공자의 제자인 번지(樊遲)가 인(仁)에 대해서 묻습니다. 그러자 공자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愛人)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이론이 아닌 실천이고 행위입니다. 아울러 상대방을 수단으로 삼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 전제되어야 올바른 사랑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의 상황은 이와는 판이합니다. 모든 것은 물질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였습니다. 모든 것들은 돈이 되느냐 안 되느냐에 의해서 그 가치가 결정된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지요. 사람에 대해서도 능력 있는 사람은 이른바 경쟁력을 갖춘 사람, 다시 말해 돈으로 전환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을 갖춘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습니다. 자연도 인간의 욕망을 추구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여 버렸습니다. 권력을 가진 자들에 있어 국가나 국민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수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서로서로 이익만을 추구한다면 이익의 충돌은 불가피할 것입니다. 세상이 혼란해지지 않을 수 없겠지요. 이는 우리의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는 자본주의라는 경제체제 아래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현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확립한 애담 스미스는 모든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사회를 효율적으로 발전시키는 방법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애담 스미스 자신은 모든 것을 이익추구를 위한 수단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보다는 모든 사람이 좀 더 자유롭고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살도록 하려는 의도였을 것이겠지만, 결과는 그의 뜻과는 다르게 나타났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그의 의도와는 달리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는 모두가 모두를 수단으로 삼을 것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높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그리고 돈은 그 자체가 경쟁력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므로 돈 앞에서 다른 모든 가치 있는 것들은 속절없이 파괴됩니다. 돈을 위한 무한 경쟁, 그 속에서는 자연이건 사회건 인간이건 어느 것도 온전할 수 없습니다. 나 아닌 다른 존재를 자신의 이익 추구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자세를 가진다면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성인은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
자공(子貢)이 스승인 공자에게 “만약 백성들에게 널리 베풀고, 많은 사람을 구제해 줄 수 있다면(博施濟衆) 어떻겠습니까? 인(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묻습니다. 공자는 “어찌 인이라고만 하겠느냐,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틀림없이 성인이다. 요임금과 순임금 같은 분도 그렇게 하지 못함을 걱정했느니라. 인이라는 것은 내가 서고자 하면 남도 설 수 있도록 배려해 주고, 내가 이루고자 하면 남도 이룰 수 있게 배려해 주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인이란 피안의 세계 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자기를 비겨서 남을 아는 것”<논어, 옹야편>일 뿐이라고 했습니다. 또 제자인 중궁(仲弓)이 인에 대해서 물었을 때는 “문을 나설 때는 귀한 손님을 맞는 것같이 하고, 백성을 부릴 때는 큰 제사를 지내는 것같이 하며,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은 남에게도 시키지 마라.”<논어, 안연편>고도 했습니다.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물건이 상대방에 의해서 훼손되었을 때는 화를 참기가 어려울 겁니다. 그렇다면 이와 반대의 경우에는 상대방이 나를 원망하리라는 것 정도는 쉽게 미루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남에 대한 배려는 자기를 미루어 알 수 있고, 이를 통해 인간관계의 기본 원칙 설정되어야 하고, 또 모든 사람은 이러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 공자의 생각이었습니다. 나아가 “널리 베풀고 많은 사람을 구제”하는 데까지 이르면 요나 순과 같은 성인이라고까지 했습니다.
사람은 남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행위를 비판하고 반성하며, 좀 더 나은 삶의 방법과 질서를 모색해 나갑니다.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불쾌한 경험도 겪고 유쾌한 경험도 겪게 됩니다. 사랑의 실천은 나에게 유쾌한 경험을 가져다줬던 일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행하는 일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특별하거나 행하기 어려운 일이 결코 아니지요. 그러기에 공자는 “괴변, 폭력, 난동, 귀신 등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논어, 술이편>고 했습니다.
‘괴’(怪)는 비현실적인 일, 괴이한 일, 비이성적인 일, 비합리적인 일이고, ‘력’(力)은 무력, 즉 주먹다짐, 혹은 무조건 힘으로 밀어붙이는 일로서 감정과 이기심에 좌우되는 폭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난’(亂)은 신하가 임금을 죽이고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등의 인륜과 질서를 파괴하는 일을 말합니다. ‘신’(神)은 은(殷)대와 같이 점복(占卜)이나 무술(巫術)로 귀신의 뜻을 묻는 주술적(呪術的)인 것을 의미합니다. 공자가 이러한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는 것은 주체적 존재로서의 인간 존재를 신뢰했음을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아울러 이성(理性)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신뢰의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즉 인간은 이성, 지성, 문화의 힘으로 현실 사회를 합리적이고 평화적으로 발전, 향상할 수 있다고 믿었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소인이 용맹스러우면 도적이 된다
이처럼 공자 사색의 출발점은 사랑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이러한 사랑의 사회적 확대를 통해 태평성대로 알려진 요(堯)와 순(舜)이 다스리던 지극한 평화의 세계를 구현할 수 있다고 믿었지요. 공자가 이상적 인격을 갖춘 존재로서의 군자(君子)를 “자기를 수양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해주어야”<논어, 헌문편>하는 존재라고 했던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그러나 백성을 편안하게 해 줄 수 있는 이상적인 인격체인 군자(君子)는 거저 되는 것이 아니지요. 공자는 “군자는 의로움을 좋아한다.”<논어, 리인편>고 했습니다. 의로움을 행하려면 학문을 배우고 덕행을 쌓으며, 악과 대결하여 선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의 이기적 욕구를 제거해 나가야 도달할 수 있습니다. 제자 안연이 인(仁)에 대해서 묻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자신의 이기적 욕구를 누르고 예(禮)로 돌아가는 것이 인이다. 단 하루라도 이렇게 하면 천하의 모든 사람이 인으로 돌아갈 것이다. 인을 실천하는 것은 나에게 있지, 남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논어, 안연>라고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중국인에게 지혜의 보고인 <주역(周易)>에서도 “자연의 위대한 덕은 만물에 생명을 부여하는 것”이니 사람들은 이러한 자연의 만물에 대한 사랑을 본받아 “덕으로 나아가는 수업을 쌓아야만”<주역, 건괘> 진정한 군자가 될 수 있다고 했지요.
하지만 소인은 자신의 본능적 욕구에만 충실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과감하게 수행하지요. 제자인 자로가 “군자도 용맹스러움을 높이 여기나요?”라고 하자, 공자는 “군자는 의로움을 가장 으뜸으로 여긴다. 만약 군자가 용맹하기만 하고 의로움이 없으면 천하가 어지러워지고, 소인이 용맹하기만 하고 의로움이 없으면 도적질을 하게 된다.”<논어, 양화>고 했습니다. 용맹은 결단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군자라고 할지라도 의로움에 대한 자각이 없는 실천은 천하를 어지럽게 합니다. 올바른 마음을 가진 군자라도 용맹하기만 하면 작전에는 실패할 때도 있다는 거지요. 하지만 소인은 아예 도적이 되어버립니다.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모든 것을 수단화하니까요. 지금 우리는 이런 소인들이 득세하는 세상을 직접 체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곽말약 같은 이는 공자의 사상은 지배자에게 통용되는 것이지 일반 민중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예기 곡례편에는 “예는 서인에게까지 내려가지 않는다”고도 했습니다. 예는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가져다준 불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공자는 프로메테우스처럼 불을 인간에게 가져다주지는 않았습니다. 따라서 유가사상이 봉건적 지배질서을 정당화하는 학문으로서의 성격을 가진다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프랑스 시민혁명도 따지고 보면 시민계급의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혁명의 성격입니다. 그럼에도 그 속에 담긴 보편적 인류애는 현대 민주주의의 초석을 이루게 됩니다. 공자의 사상 또한 그 속에 담긴 보편적 인류애는 여전히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