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진당은 예상대로 진보적인 운동권을 멘붕 상태로 몰아갔다. 통진당이 부정을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통진당 사태로 진보진영이 멘붕 상태에 빠졌든 빠지지 않았든 노동자계급의 상태는 변하지 않는다. 고민택은 2002년 <문화과학>지에 기고한 글 ‘2002년 대선과 좌파의 진로’에서 민주노동당이 계급투쟁에 복무하기를 바랐지만 진보진영은 계급투쟁은 커녕 흙탕물만 뒤집어쓰고 말았다.
민주노총은 통진당 문제에 대해 조삼모사의 행동을 보였다. 배타적 지지를 한 적도 없는데 배타적 지지 철회가 무슨 말인가 라며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인 것이다. 2002년보다 훨씬 더 제도권 정치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는 판국에 진보 진영은 좌파연하며 제도권 바다에 발을 깊이 들여 놓고 있다.
연일 이어지는 폭염과 열대야로 차가운 바다를 찾았다가 이안류에 휩쓸린 피서객들이 목숨을 잃었다. 통진당이든 민주노총이든 이안류에 휩쓸려 죽음을 자초하고 있는 사이, 제도권 정치에 대한 불만은 극에 달하고 있고 그 틈을 타 대선 가도에 사람들이 줄줄이 올라서고 있다.
안철수 교수가 예능프로그램 ‘힐링 캠프’에 출연한 후 지지율이 더 올라갔다는 얘기가 들리고 다자구도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이 밀린다는 얘기도 들린다. 진보 진영이 2002년 반이회창 전선으로 결집했듯이 다시 반박근혜 전선으로 결집할 것이 분명한 정치 구도에서 지긋지긋한 반복의 정치를 또 다시 할 것인가. 제도권으로 한 발 다가서는 민주노총의 낚시에 또 다시 넘어갈 것인가.
그러나 현재 좌파의 상황 또한 2002년 대선을 앞둔 당시의 상황을 다시 반복할 확률이 높다. 6 ․ 13 지방선거의 승리야 그렇다 치고 4 ․ 2 총파업 철회처럼 올 8월 총파업 또한 과거를 반복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10년 전에 발전노동자 투쟁으로 형성된 전선이 전체 계급투쟁으로 확장되지 못하였지만 이제는 전선을 치는 것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지역에서도 뚜렷한 전선이 형성되지 않고 있다.
중요한 것은 집회나 농성이 아니라 파업이다. 노동자의 권리가 짓밟히고 있는데 노동자는 일할 의무가 없다. 노동자의 파업은 파업의 권리 아니던가. 이러다가 10년 전 노동자의 힘이 노동자 민중운동 진영에 ‘전국공동투쟁본부’ 건설을 제안했다가 무산되었듯이 또 다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은 아닌가.
운동이 반복되고 좌파의 운동이 반복되는 가운데 제도권 정치는 운동을 이안류에 실어내 보낼 준비를 하고 있다. 아니, 좌파 스스로 이안류의 격랑에 휩쓸려갈 준비를 하고 있는 듯하다. 통진당이 기사회생을 하든 안 하든 다시 살아나 봐야 선거 대응을 위한 후보단일화 운동 밖에 더 하겠는가. 사회당은 또 다시 좌파 후보를 내세우는 전략을 제시할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것이 반복의 정치다.
그 사이에 루비니 같은 자유주의 경제학자까지도 영화 <퍼펙트 스톰>(2000)에 빗대 세계 경제가 퍼펙트 스톰을 맞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퍼펙트 스톰은 여러 가지 일이 겹쳐 더할 수 없이 나쁜 상황을 말하는데, 반복의 정치를 하는 가운데 노동자 민중에게는 가장 혹독할 시련의 시기가 대선을 넘어 코앞에 와 있다. 퍼펙트 스톰이 노동자 민중의 운동을 휩쓸고 가려는 듯 거세게 넘실대고 있다.
객관적으로 자본의 위기가 성큼 다가섰지만 노동 또한 위기와 질곡, 답보 상태에 빠져 있다. 현장의 변화 없이 좌파들만 노동자계급 정당이니 논의만 무성하다. 현장과의 유기적인 관계가 단절되어 있고 현장이 장악되지 않은 상태에서, 현장에서부터 뜨거운 변혁의 열정이 솟구치지 않고 있는데 어떤 변혁을 꿈꾼단 말인가.
민주노총이 임단협 같은 자본과의 협상을 통해 자본주의를 유지 강화시키는데 이바지하고 있는 마당에 무슨 변혁을 꿈꾼단 말인가. 반복의 정치, 반복의 정치적 시도를 이안류에 휩쓸려 보내고 현장부터 변하게 하는 좌파의 차이의 정치를 시작하자. 자본주의의 객관적 정세를 냉정하게 바라봐야 할 때다.
GDP가 1000조 정도인데 해외도피자본이 888조에 이르는 이 나라에서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주변에 내 돈만 뜯어먹는 도둑들로 넘쳐나는 나라, 여차 하면 뱅크런, 사재기 할 나라, 이 지긋지긋한 나라에서 노동자 계급이 기대고 믿을 구석은 국가도, 자본도, 제도정치도, 대선도 아닌, 노동자 계급 자신밖에 없다는 초심으로, 제발, 돌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