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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정보
나들이 / 33.5cm x 45.5cm / 캔버스에 아크릴릭 / 2012년 작
작품설명
자연의 소리는 곡선입니다. 수양버들 이리저리 춤을 추게 하는 바람소리, 톡톡 떨어지는 버들잎 소리, 아장아장 나들이 나선 아기 새들의 수다소리도 온통 초록 세상에 물들어 있습니다. 둥글고 환한 합창곡을 부르고 있습니다.
화가의 음악듣기
한동안 나는 잘 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잘 구별하지 못했다. 그래서 좋아하는 것은 다 잘 해보려다 헛품만 판 시간도 꽤 길다. 나중에야 내가 잘 할 줄 모르는 것일수록 보상심리가 작용해 더 집착했으며, 그것이 좋아하는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지냈음을 깨우쳤다. 결국 잘 하는 것은 천직으로 삼고, 좋아하는 것들은 미련 없이 다 내려놓고 즐기기로 했다. 유난히 음감이 없던 내가 노래 부르기나 악기 하나쯤 다루고 싶던 꿈을 접고, 온전하게 음악듣기에서만 기쁨을 찾게 된 것도 그런 까닭이 숨어있다.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처음에는 여러 가수들의 수많은 음악을 들었다. 송창식, 김정호, 들국화, 퀸, 비틀즈, 마이클 잭슨은 물론이고 켈트족과 인디언들의 민속음악 등 다양한 장르와 멜로디, 노랫말의 풍요로움을 즐겼다. 우리 가요는 대체로 사랑노래 보다는 꽃을 주제로 한 것을 더 좋아했다. 찔레꽃, 봉선화처럼 꽃을 소재로 삼은 노래는 거의 대부분 슬픔을 거느리고 있다. 켈트족과 인디언을 포함해 각 나라의 민속음악들도 대체적으로 깊고 애잔한 슬픔이 바다처럼 고여 있어서 늘 마음을 출렁거리게 했다.
그 다음 단계로는 몇몇 뮤지션의 음악만 집중적으로 감상을 하게 되었다. 내 감성과 코드가 맞는 독특한 개성에 몰입되었기 때문이다. 시대와 민중의 마음을 함께 건드리던 김광석, 영국 전위음악계의 대표그룹 핑크플로이드의 천재적 실험성, 인상주의 음악의 선구자인 무소르그스키와 화가이자 건축가인 친구 빅토르 하르트만의 우정이 낳은 명곡'전람회의 그림'등에 빠져들어 세상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내다보기도 하며 기뻐했던 시절이다.
근년에 와서는 한 음악을 다양한 음악가들이 자신만의 톡특한 음색으로 재해석한 명곡듣기에 시간을 바쳐왔다. 영화'미션'을 더욱 유명하게 한'환상에서는(Nella Fantasia)'도 엔니오 모리꼬네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 외에 켈틱 우먼, 잭키 에반스, 폴 포츠, 사라 브라이트만, 샤일리, 임형주, 조안나, 정세훈, 선우, 최성봉, 강연숙 등이 부른 노래도 하나같이 짙은 감동의 향기를 지니고 있다.'당신이 나를 일으켜 주시기에(You Raise Me Up)'또한 웨스트라이프, 벡키 테일러, 시크릿, 박기영, 김주현, 김성광, 채유정 모두가 저마다의 아름다움으로 깊은 감동을 준다. 이처럼 하나의 음악이 수많은 개성으로 확장되고, 결국 그것은 다시 감성의 마당으로 모여들어 하나로 어우러진다. 이런 과정을 거쳐 비로소 내 나름대로는 주관과 객관이 한바탕 화해하는 음악듣기, 보기, 읽기, 어루만지기에 이르렀다.
최근에는 마음을 고요하게 해주는 명상적인 음악을 좋아한다. 자연의 소리에 가깝기 때문이다. 번잡한 도회지에 자리 잡은 카페 같은 공간에는 클래식, 재즈 등 서양음악이 잘 어울린다. 이런 곳에서 흘러나오는 명상음악은 오히려 어수선하고 성가시게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구역을 벗어나 작고 좁은 비포장 오솔길로 들어서기만 하면 명상적인 음악은 금방 깊고 거대한 자연과 함께 살아 숨 쉰다. 물론 자연을 만나야 비로소 온전하게 제 모습을 드러내는 음악의 능선도 넘어가보면 당연히 자연 자체의 소리와 다시 새롭게 만나게 된다.
요즈음 나는 화실 창밖을 바쁘게 다녀가는 빗소리와 바람소리처럼, 늘 내 곁에 있던 아무런 색깔이 없는 자연의 소리야말로 그동안 내가 들어온 그 어떤 노래보다도 절창임을 새삼 느끼고 있다. 그래서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소리 없이 스며든 자연의 온갖 크고 작은 소리들과, 영혼의 여행이 만나는 지점 어디쯤에서 그저 넋을 놓아버리는 시간이 나에게는 최고의 음악듣기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