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부득이하게 영어체험마을로 교육을 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놀랐던 것은 영어권 국가가 미국만 있는 것이 아닌데 영어마을의 모든 교사와 구성 양식이 미국 중심이라는데 놀랐습니다.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많은 아이들이 영어체험마을 캠프에 참석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시기는 이미 예약이 끝나 참여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고 영어체험 마을 관계자는 큰 자랑인 듯 말하였습니다.
오래지 않은 옛 일임에도 내가 국민학교 다니던 시절 방학을 생각해보면 기껏해야 교회 여름 성경학교를 가거나, 시골 친척집에 다니러가는 것이 대부분 이었습니다. 요즘에는 영어체험마을, 어린이 경제캠프, 어린이 리더쉽 교실 등 여러 가지 다양한 캠프들이 어린이들 일기장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방학이라는 공간은 아이들에게 쉼의 시간이 아니라 공교육이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체험의 영역을 사교육이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 버린 거지요. 또한 이러한 경험 축적의 정도는 아이들 속에서 계층 분화를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방학 기간 중 외국에 나갔다 온 아이와 영어체험마을을 간 아이, 그리고 그냥 집에서 영어만화를 본 아이는 방학이 끝나고 우애롭게 이야기 나눌 수는 없겠지요. 다시 말하면 부모의 경제력은 아이의 방학체험의 질을 결정하고, 그러한 경험의 축적이 아이들 사회에서의 계급형성에 기여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의 방학일기장에 쉼과 놀이의 시간 대신, 체험과 학습의 시간이 채워지는 것 못지 않게 문제가 되는 것은 체험과 학습의 내용입니다. 요즘 가장 유행하는 것은 영어체험 캠프입니다. 이러한 영어체험캠프는 부모의 경제적 사정에 따라, 현지로 가는 경우와 국내의 영어체험마을, 아니면 보습학원의 단기캠프 등으로 나뉘어 집니다. 영어체험캠프가 문제가 되는 것은 부모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아이들의 영어 교육과 경험의 폭이 달라진다는 것(KDI 조사결과 부모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영어 사교육 비용은 10배가 차이가 난다고 합니다)과 현재 영어의 배움과 쓰임은 단지 하나의 타국어에 대한 선호적 습득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사회를 꿰뚫는 커리어의 축적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영어교육이 필요악이 되어, 캠프에 참석하지 못하거나, 비싸지 않은 캠프에 참석한 아이들이 받을 사회적 박탈감이 더욱 크다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또 하나의 커다란 문제가 되는 캠프가 요즘 증권사나 은행, 경제 신문 등에서 앞 다투어 개최하는 어린이 경제캠프 입니다. 경제캠프는 어린이들에게 경제적 개념을 심어주고, 건전한 경제생활을 가르쳐 준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는 거 같지만, 실제 그 내용을 들여다 보면 그것이 아닙니다.
어렸을 때부터 노동이 아닌 재테크의 중요성을 알려주고, 부자가 되는 것이 바로 삶에서 성공하는 것이라는 환상을 아이들에게 심어주는 시간이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경제 교육이란 노동과 인간이 바탕 된 사회적 관계 발전을 가르치고, 폭력과 약탈이 중심이 된 신자유주의하의 죽임의 경제가 아닌, 우애롭고, 공정한 살림의 경제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러한 교육이 이루어질 때 세상은 행복하고 아름다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공동체를 떠받쳐야 되는 대구의 어떤 지자체는 구립 공공도서관을 이용하여 금융회사와 함께 폭력의 경제교육을 기획하고 있다니, 정말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도 내가 여름이라는 계절을 생각할 때 나의 심장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국민학교 방학 때 시골 외갓집 앞 개울에서 물장구치던 모습입니다. 좋은 것을 보고, 먹었던 성인시절의 비싼 여름휴가도, 열심히 도서관 벽을 바라보고 공부하던 시절의 기억도 아니었습니다. 다른 기억들은 다 희미해지고 유년시절의 물장구가 나의 여름이라는 관념을 채우고 있는 것입니다.
아이들의 여름 방학 일기장을 어른들의 이기심과 허영심으로 만들어진 학원과 캠프로 가득 채우는 것은 아이들의 행복한 미래를 빼앗는 동시에 그 아이들의 추억마저 빼앗아 버리는 잔인한 폭력입니다. 이제 더 이상 어른들은 아이들의 유년시절의 쉼표를 욕망의 토사물로 더렵혀서는 안 됩니다. 른들은 아이들의 여름이 새소리, 물소리, 친구들과의 수다, 책읽기 같은 어울림과 놀이로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자신만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