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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관리툴 2012년07월10일 17시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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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백목사의 예수읽기 (2)
마가복음 4:35-41 "바다 저쪽으로 건너가자"

백창욱(대구새민족교회) baek0808@hanmail.net

첫 회 글에서 복음서는 이야기마다 그 배경에 황제가 지배하는 제국의 지배체제를 풍자하고, 제국의 자리에 예수가 지배하는 하나님 나라를 대체한 흔적이 넘쳐난다고 했다. 제국을 풍자하는 이유는 제국을 우스꽝스럽게 만들기도 하고, 그런 현실에 대한 야유이기도 하고, 또 그러는 와중에 진짜 모습을 보여주는 뜻도 있다고 했다.

그럼, 오늘은 복음서 말씀에 과연 그런 의도가 있는지를 증거해 보겠다.

▲예수와 그 제자들의 물고기 잡이 배. [출처 : 천주교 주보]

오늘 복음말씀은 '마가복음 4:35-41'이다. 제목은 '예수께서 풍랑을 잔잔하게 하시다'이다. 마가복음저자는 이야기의 서두를 펼칠 때, 매우 자연스러운 풍경으로 시작한다. "그 날 저녁이 되었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바다 저쪽으로 건너가자. 그래서 그들은(제자들) 무리를 남겨 두고,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갔는데, 다른 배들도 함께 따라갔다"(4:35,36)라고 했다.

요약하자면, 예수께서 바다 저쪽으로 가자고 했고, 동행하는 제자들이 배를 나눠 타고 예수를 따라 함께 바다를 건너갔다는 말씀이다. 도대체 여기에 무슨 제국에 대한 풍자가 담겨 있다는 말인가?

이 말씀은 로마가 정복이나 반란진압 전쟁 원정을 갈 때의 모습을 풍자한 것이다. 정복이든 반란진압이든, 전쟁원정을 갈 때, 육로로 가면 한참 걸리는 거리도 바다를 질러 가면, 훨씬 단축해서 갈 수 있다. 원정거리를 단축해야 보급이나 전투력을 좋게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바다건너 가는 길은 전쟁에서 중요했다. 제국의 속성상 전쟁은 항시적인 일이다. 미국이 군산복합체 이익유지를 위해 일부러라도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보라. 로마군대는 수시로 정복전쟁을 떠났고, 그럴 때마다 바다를 건너갔다. 

▲ 기원 전 로마 정복전쟁 당시의 그림 [출처 : 웅진백과사전 직접촬영]

그런 원정길을 떠날 때, 황제가 탄 본부함선은 온갖 장식으로 위용을 과시하고 총사령관 황제는 중앙에 버티고 앉아 위엄을 과시한다. 그리고 본부배를 중심으로 수백 척의 함대는 대오를 유지하면서 유유히 바다길을 건넌다. 바다 건너편에서 그 모습을 보는 상대국은 이미 주눅이 들고 전의를 상실할 법하다.

마가저자는 바로 이 장면을 풍자했다. 예수도 황제처럼 명령을 내린다. "바다 저쪽으로 건너가자" 그런데 명령을 내린 예수는 어떤 물리력도 가지고 있지 않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탄 본부배를 필두로 해서 여러 배가 함께 따라간다. 로마군함처럼 바다를 건너기는 하는데 모양새가 영 아니다. 그도 그럴것이 모두 고기잡이 배들이다. 로마함대의 위용과 비교하자면, 이 장면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복음저자는 일부러 이렇게 황제와 제국의 원정을 풍자하여 예수께 적용한 것이다. 왜? 복음서가 말하려는 것은 이렇다. "우리도 원정을 나선다. 그러나 너희처럼 무력으로 사람 때려잡는 그런 원정이 아니라"는 것을 웅변한다.

누구도 막지 못할 것 같은 세계최강 로마함대에게도 복병은 있다. 바로 바람과 파도이다. 로마인이야기를 보면, 종종 바다건너 원정을 떠났는데, 정복은 커녕 풍랑을 만나 배를 몽땅 잃고 간신히 빈몸으로 돌아간 적도 있었다. 그렇게 풍랑에 시달릴 때는 황제의 위엄도 온데간데 없다. 우왕좌왕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저 파도에 자기 몸을 맡기는 수밖에!

그런데 예수님과 그 일행도 풍파를 겪는다. 거센 바람과 파도가 배를 덮친다. 물이 배에 가득 차서 배가 침몰할 지경이다. 어떤 기독종파는 이 부분에 대해 이렇게 선전한다. "예수를 잘 믿으면 바람도 안 만나고 풍파도 없고, 어떤 시련도 없이 해피하게 살 거라고"

그런데 예수를 잘 믿는 조건이 있다. 그 조건은 다름아닌 교회에만 일로 충성하는 것이다. 헌금도 잘 내고, 교회집회와 예배에는 무조건 출석하고, 하여간 모든 에너지를 교회에다 쓰면 예수 잘 믿는 것이라고 선전한다. 나도 교회를 하는 입장에서 그렇게 말하는 게 충분히 이해는 간다. 누구나 자기가 속한 조직이나 집단이 발전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성장을 마다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정도가 있다. 발전을 위해서 모든 논리를 거기에다만 맞춰서 말하면 안된다. 어쩌면 그렇게 말하지 않아서 교회가 발전 못하는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그게 아니므로 그렇게 말해지지가 않는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예수믿는 사람도 바람, 풍파, 시련 다 만난다. 자초해서 만나기도 하고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만나기도 한다. 그게 인생이다. 기독교라고해서 예외는 아니다. 기독교인도 숱한 좌절을 겪는다.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가짜이다. 요는 시련을 만났을 때, 어떻게 대처하고 극복하느냐가 관건이다.

로마함대가 바다 한복판에서 풍랑을 만난다면 어떻게 할까? 우선 배를 가볍게 할 것이다. 익히 하는대로, 가지고 있는 식량이며 무기까지 남김없이 모두 버린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배 밑에서 노를 젓는 노예들을 모조리 주살한다. 이들이 반란을 일으킬 지도 모르고, 어차피 배가 풍비박산 직전이므로 귀찮다고 해서 제거해 버린다. 자기들만 살아남기 위해서 못할 짓이 없다. 바로 이게 제국의 본질이다. 저만 살기 위해서 어떤 짓도 마다하지 않는 것.

실감을 더하기 위해 예를 하나 들자. 삼성왕국의 경우. 매 분기가 끝날 때마다 삼성의 광고를 받아서 먹고사는 매체들은 이번에도 삼성이 사상최대의 실적을 올렸다고 나팔을 분다. 그 성과를 나누는 삼성맨들을 부러워하게끔 가공한 보도를 열심히 뿌린다. 정말 부러운가? 알지 않는가? 그 이익이 어떤 짓을 해서 번 이익인지를.

그들의 성과급 잔치는 철저히 그들만의 잔치이다. 삼성에게 다 털리는 협력업체에게는 국물도 없다. 중소사업자가 필생에 걸쳐서 개발한 기술을 악한 수단과 배경을 악용해서 삼켜 버리고, 그렇게 해서 생긴 이익이다. 삼성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에 걸린 어린 노동자들에게 제대로 인간적인 예우를 한 적이 있는가? 이것이 바로 하나님나라와 반대인 큰 제국이나 새끼제국들이 하는 짓이다.  

 
▲풍랑을 만난 예수와 제자들의 배 [출처 : 천주교 주보]

그런데 우리의 예수님은 어떠신가? 천하태평으로 주무신다. 제국이 벌벌 떠는 풍랑이라는 복병도 예수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뜻이다. 그리고 단 한 말씀으로 바람과 파도를 잠재운다. 그 결과 어떻게 됐나? 아무도 죽지 않았다. 잃지 않았다. 모두가 고루 안녕하고 평안하다. 확실히 제국과 비교된다.

예수께서 바다 저쪽으로 건너가자고 하신 것도 전혀 다른 원정이다. 평등평화참세상 구현을 위한 원정이다. 다음 문맥을 보면, 바다 건너편에는 군대귀신 들린 자가 있었다. 여기 군대는 로마의 군대편제인 '레기온'을 말한다. 예수님은 이 레기온귀신을 한 방에 제압한다. 하나님나라가 제국군대를 쫓아냈다는 뜻이다. 왜? 억압을 풀고 자유와 해방을 선사하려고.

예수님의 행보는 이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지배세력 이데올로기를 분쇄하고 억압과 배제가 없는 평등세상을 지향했다. 예수는 새 세상 구현의 선구자이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도 "이대로는 안된다. 새 세상이 절실하다"는 열망이 있다면, 얼마든지 예수를 따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새 세상을 겸손히 수용하려는 인간성을 수반하면.

사족. 심히 안타까운 것은 예수의 본래 모습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무수한 교회대중은 예수가 적대했던 제국의 승리이미지에 환장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을, 삼성을 무비판적으로 사정없이 사모한다. 영혼을 저당잡혀서라도 승리자들과 한몸이 되기를 열망한다. 그것도 예수의 이름으로. 한국교회 재생은 승리자 공식을 저버릴 때 비로소 시작할 것이다.

백창욱(대구새민족교회)

백창욱(대구새민족교회) baek080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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