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이 MBC 파업을 정치파업이라고 주장하는 김재철 사장의 광고를 받아 신문 전면에 실었다. 자칭 진보적인 신문이라는 매체가 낙하산으로 내려 와 방송의 공영성이고 뭐고 짓밟는 MBC 사측의 광고를 실어주었다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다. 아무리 목구멍에 포도청이라 해도 그렇지 사람이 갈 길이 있고 가지 말아야 할 길이 있는 것 아닌가. <경향신문>은 현 정권의 주구인 MBC 사측의 광고를 받아 실어줌으로써 현 정권의 언론방송 탄압을 정당화하고 말았다.
그런데 최근 대구에서도 희한한 일이 일어났다. 대구MBC노조가 김재철과 친분이 있는 차경호 사장 낙하산 반대에 맞서 파업을 벌이다 차경호 사장이 인간적으로 김재철보다 낫다며 같은 낙하산 출신인 차경호 사장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이로 인해 지난 5월 8일 낙하산으로 대구MBC 사장으로 내려온 후 57일 만에 대구MBC 사옥에 출근하게 됐다.
대구MBC노조가 낙하산 저지 투쟁을 일단락한 배경에는 지역사 자율경영, 공정방송 이행, 보직 사퇴 간부 무징계 등에 차경호 사장이 구두로 동의했다는 것이 들어 있지만 여기에는 대구MBC노조와 차경호 신임 사장 간의 거래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서 같은 낙하산 출신인 김재철 퇴출을 주장하는 MBC파업은 계속 하겠다니, 이건 도대체 무슨 일인가? 차경호나 김재철이나 현 정권의 같은 낙하산 출신 아닌가? 차경호 신임 사장은 김재철 사장처럼 법인카드를 긁어 명품백 사지 않고 공금을 흥청망청 쓰지 않으니 김재철 사장보다 낫다는 것인지, 아니면 성품이 김재철 사장보다 낫다는 것인지 도무지 헷갈리기만 할 뿐이다.
대구 MBC 노조가 노조위원장의 개인소유물이 아니듯이 대구 MBC에 신임사장이 들어서고 안 서고의 문제는 차경호라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차경호 신임 사장 뒤에는 김재철이라는 인물이 있고 또 그 뒤에는 언론장악을 기도하는 현 정권의 의도가 있기 마련이다. 한 개인을 둘러싼 이러한 맥락들을 완전히 제거한 채 문제를 개인 차원으로 환원시키는 태도나 갖고 있으니 ‘지역 방송의 독립 공정성 확보를 위해 더 큰 길로 나아가려 한다’고 하면서 낙하산 저지 투쟁을 접겠다는 발상을 하는 것이다.
 |
| ▲지난 4월 26일부터 대구MBC 노조는 차경호 사장에 대한 낙하산 사장 출근 저지 투쟁을 이어왔다. | | |
차경호 신임사장이 들어오면 지역방송의 독립이나 공정성 확보가 된다는 것인가. 김재철 사장보다 인간적으로 나으니 그게 가능하다고 보는 것인가. ‘큰 길’ 운운하면서 낙하산 출근 저지 투쟁을 접은 배경에, 지역 MBC 중 유일하게 보직 간부 총사퇴 배수진을 치고 파업을 하다가 보직 사퇴 간부 무징계와 낙하산을 맞바꾸기한 흔적이 엿보인다. 지역 방송의 독립 공정성 확보 핑계로 노조의 실리를 챙기겠다는 발상 아니면, 파업은 계속 하면서 차경호 신임 사장을 인정하겠다는 모순이 생겨날 수 없다. 차경호 신임 사장은 받아들이면서 MBC 파업에는 왜 동참하는가?
특히나 이번에 대구 MBC 노조가 낙하산 출근 저지투쟁을 접는 모습을 보면서 더욱 화가 치미는 것은, 애초에 대구 MBC 노조가 파업에 돌입하는 것을 보고 대구 지역의 시민사회단체나 교수들이 대구 MBC 지지방문을 갔고 2 ․ 28 공원에서 낙하산 반대, 김재철 퇴출 등을 내걸며 대구 시민들의 서명을 받는 운동을 벌였지 않은가. 그런데 시민사회 단체 누구와 논의를 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동안 대구 MBC 노조의 파업을 지지한 ‘우리’는 무엇이 되는가?
이것이 <경향신문>을 진보적이라 생각해 <경향신문>을 구독해 보던 사람들이 뒷통수 맞은 일과 뭐가 다른가? ‘우리’가 무엇을 위해 대구 MBC노조 파업을 지지하러 시간 쪼개가며 MBC 사옥에 지지 방문하러 갔던가? 핵심은 김재철이요 MBC이니 대구MBC는 차경호 신임사장을 인정해도 된다는 말인가? 어차피 김재철도 8월에 운을 다할 것이니 차경호를 받아 안아도 된다고 결정한 것인가? 과연 그럴까? 정권 입맛에 길들여진 방문진이 MBC 이사를 제대로 뽑고 김재철 후임으로 제대로 된 사장을 뽑는 일을 할까? 그게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공정성이 사장 개인 한 사람 뽑는다고, 대구 MBC 노조 주장대로 인간성 좋은 사람 뽑는다고 해결될 문제인가? 현 정권 내내 방송의 공정성은 커녕 방송을 정권의 나팔수로 이용해 왔던 상황은 내팽개치고 대구 MBC 파업을 지지했던 많은 대구 시민들의 뒷통수를 이렇게 때려도 된다는 말인가?
차경호는 되고 김재철은 안 된다는 식의 의식수준에 머무를 바엔 대구 MBC 노조는 차라리, 낙하산 저지 출근 투쟁만 접지 말고 파업 자체를 접고 현장으로 복귀하는 것이 낫다. 대구 MBC 노조 파업을 지지했던 많은 사람들의 힘을 빼지 말고. 먹고 살기 힘드니 MBC 광고를 실어주었다는 발상이나 차경호는 인물이 괜찮으니 인정한다는 논리는 수준 있는 매체와 방송들, 그리고 노조가 할 짓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