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방송 노조의 파업이 오래 지속되고 있다. 서울 지부는 지난 1월 30일부터, 대구 지부는 3월 12일부터 파업 중이다. 이렇게 오래 지속되는 파업은 세계 언론사에서도 유례가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장기간 파업이 이어지고 있는 것일까. 노조가 내세운 기치는 ‘공영방송 사수’와 ‘비리사장 김재철 퇴진과 구속’으로 모아진다.
지배구조로 보면 문화방송은 엄연히 공영방송이다. 공영방송이 제구실을 다하지 못하면 어떤 나라든 그 나라의 앞날은 기약할 수 없다. 언론이 지배 권력을 비판ㆍ견제하는 정론을 펼치고, 행정부가 언론의 질타와 질책을 수용하며, 국민은 국정의 전반적인 국면을 살펴서 선거로 권력을 심판하는 것은 대의민주주의의 기본 중에 기본이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한국의 언론사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방송공사, 문화방송, 와이티엔, 연합뉴스, 국민일보 등 신문과 방송 및 통신사까지 파업을 감행하는 초유의 사태와 직면했다. 특히 지난 4.11 총선에서 보여준 언론의 극명한 여당 편들기는 21세기 광명천지에 꼴불견 그 자체였다. 한판의 거대한 생쑈를 들여다보는 일은 역겹기 그지없었다.
젊은 친구가 말을 함부로 했다는, 그것도 오래 전에 지껄여댄 것을 용케도 찾아내 1면에 대서특필해댄 언론! 제수를 성폭행하려던 강간미수범이나, 학위논문 표절로 이른바 국가의 품격을 현저히 손상시킨 자들에 대해서는 제 스스로 입을 꿰매버린 언론! 여당에게 유리한 것과 야당에게 불리한 것을 최대한 부각하여 보도하는 행태!
이것들도 언론이라 여기고, 거기 종사하는 자들을 언론인이라 부르는 나라의 기막힌 현실!
그래서다! ‘대구 문화방송을 사랑하는 친구들’(이하: ‘친구들’)이란 모임이 만들어지고, 노조의 파업을 선전하고, 시민들을 상대로 거리서명을 시작한 까닭은. 문화방송 사태 내지 노조파업을 방치하면 할수록 손해보고 괴로운 사람들은 결국 시민이기 때문이다. 온전한 정보와 비판과 미래기획 내지 전망이 배제된 신문과 방송은 얼마나 끔찍한 괴물인가!
전국적으로 100만 시민서명을 목표로 시작된 문화방송 노조 파업지지 서명 열기는 대단했다. 애초에 서명을 기획하고 전국적인 단위로까지 확산시킨 장본인이 대구 문화방송 노조였다. ‘친구들’은 2.28공원에서 첫 번째 서명을 받은 이후 매주 토ㆍ일요일 양일간 한일극장 앞에서 시민들의 서명을 받으면서 문화방송의 문제점을 알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4만 5천 명이 넘는 대구 시민들이 서명에 참여했다. 서명현장에서 나는 몇 가지 고무적이고 몇 가지 우울한 현상을 찾을 수 있었다. 어쩌면 이런 양상은 2012년 현시점에 대구가 지니고 있는 화장기 없는 맨얼굴인지도 모르겠다.
서명에 가장 열성적으로 참가하는 부류는 여고생과 여대생 그리고 여중생이다. “무한도전 다시 봅시다!” 하는 말에 우르르 몰려온다. 이구동성으로 “서명하면 그리 되나요? 언제 다시 볼 수 있어요?” 하고 묻는다.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서명한다. 물론 서명을 거의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중년 남성과 여성들이 대표적이다. 노년층이야 불문가지!
50대 후반의 어떤 여성은 서명 가판대 옆에 진을 치고 서서 10분 넘도록 고래고래 소리치며 서명의 부당성과 노조의 불법과 현 정부의 크나큰 업적을 홍보한다. 경북대를 정년퇴직한 늙은 교수 한 사람도 손사래 치며 서명 작업을 극구 막아선다. “이런 짓을 하면 안 되지!” 하며 완강하게 내 손을 잡아당긴다. 견해가 다르면 그냥 지나가시지!
흥미로운 점은 20대 남성들의 서명참여가 적극적이지 않다는 사실이다. 대구가 본시 보수적이고 수구 냄새가 짙게 풍기는 도시이긴 하되, 도시의 앞날을 책임질 청년들의 행태치고는 낯설기 그지없다. 어떤 친구는 여자 친구가 서명하는 것을 그냥 바라본다. 서명하라고 하면 고개를 가로 젓는다. “무슨 말씀을?!” 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어떤 친구는 서명하다 말고 “집으로 연락 오는 거 아닙니까?” 근심 어린 표정으로 묻는다. 그러다가 자기가 쓴 주소와 이름, 전화번호를 북북 지워버리고 총총히 자리를 뜬다.
나는 대구의 변화와 미래를 젊은 여성에게서 본다.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며 거리낌 없이 자기 뜻을 펼치는 청춘의 아름다움을 느낀다. 주눅 들지 않은 젊음의 싱그러움과 패기가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감히 말한다. “대구의 권력과 미래는 여성에게 넘어갔다” 이것이 서명 작업에 동참하면서 내가 느낀 대구 변화 내지 대구의 현주소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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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22일, 대구MBC와 친구들은 대구 동성로 민주광장에서 '안해도 될 콘서트'를 열었다. | | |
젊은 엄마들이 초등학생들을 앞장 세워 서명에 참여하는 일도 적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바른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표정이 읽힌다. 바로 저런 엄마들의 참여와 문제의식이 소중하다. 어릴 때 받은 가정교육은 평생 유지되는 법이다. 민주주의와 법치 그리고 공공성에 대한 의식을 몸으로 익히는 어린것들을 보면서 마음 한구석이 찡하다. ‘녀석들이 내 나이가 되면 이런 불필요한 시간과 인력낭비가 없었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이제 문화방송 사태는 정치권의 손으로 넘어가고 있다. 물론 김재철을 끝까지 우려먹으려는 자들과 핵심권부가 건재하지만, 이런 상태로 문화방송을 방치해서 득 될 게 없다고 여당이 판단하는 순간 그자는 끝이다. 대구 시민들과 국민의 밝은 눈과 행동하는 양심이 비리사장 퇴출과 공영방송 정상화에 이르는 길의 굳건한 초석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6월 30일 첫 번째 매미소리를 들었다. 어제오늘 녀석들의 수효가 부쩍 늘었다. 이제 바야흐로 본격적인 성하의 시절이다. 만상의 본질 가운데 하나인 처절한 부패와 치열한 성장이 공존하는 기막힌 계절 여름 한복판에서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우리나라의 아름답고 정갈하며 세련되고 균형 잡힌 방송문화 정착을 절절하게 꿈꾼다.
창밖에 굵은 장대비가 시원하게 대지를 때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