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대구에는 볼 게 없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또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대구에는 눈요기를 할 만한 것들이 많다. 다른 어느 곳에도 없는, 정말 볼 만한 것들 말이다. 지금이라도 당장 대구공고에 가면 전두환 동상, 그가 집무하던 공간의 재현물, 입던 군복, 기념식수한 여러 그루의 나무들, 그의 호를 딴 정자, 어마어마한 대형사진이 본관 중앙에 걸려 있는 광경 등을 볼 수 있다. 대구 아닌 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것들이다. 어찌 함부로 '대구는 볼 게 없다'고 말하는가.
비꼬아서 하는 말이 아니다. 지금 쓰는 글의 성격을 정립하기 위해 미리 '여행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토로부터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찾는 여행지와, 그것 또는 그곳의 역사적 혹은 예술적 가치가 비례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부터 하고 싶어서다. 폴란드의 소금광산이나 아우슈비츠 수용소 같은 여행지가 어찌 그 나라의 자랑이겠나. 하지만 온 세계에서 무지무지한 사람들이 줄기차게 찾아온다.
대구공고의 전두환'기념관'도 세계적 관광지가 될는지 모른다. 물론 모든 것을 사실 그대로를 밝혀놓았을 때에만 그렇겠지만... 박정희 아래에서 하나회를 결성한 이래 전재산이 29만원에 불과한 지경에 이르기까지 살아온 전과정을 숨김없이 기록하고 전시해 놓았다고 가정해 보라. 그의 행위들을 둘러싼 국내외의 모든 실타래들을 다 풀어놓고 구경오십사 청한다면? 그때는 결코 철거할 일이 아니다. 그가 대구경제를 살리게 될지 누가 알겠나.
지금 왜 철거 논란이 빚어지고 있나. 사실을 왜곡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속이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이런 비교육적인 사태가 빚어졌는데도 정치적 이유로 모르는 척, 심지어 행정적 재정적 지원까지 한 대구시교육청은 '교과부가 없어져야 우리나라 교육이 산다'는 말의 진실성을 증언하는 꼴이다. 대구교육청이 없어져야 대구교육이 산다고 말이다. 교육감을 비롯한 고위관리들은 태도를 분명히 밝혀야겠다. 대구공고의 전두환기념관을 관광자원화할 것인가, 아니면 철거할 것인가.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교정과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구관 건물 현관에 있는 박정희 기념물도 꽤 볼만 하다. 사대부고의 것은 대구사범학교 학생들의 죽음을 기려 세워진 항일기념비 옆에 있는데, '내 일생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라는 박정희 어록비가 바로 그것이다. 경대사대의 것은 그의 흉상이다. 하지만 전두환에 비하면 훨씬 못하다. 박정희의 경우는 다른 곳에 대구의 것보다 '뛰어난' 물건들이 많아 흥미를 끌기에 영 역부족이다. 전국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전두환기념관에 견주면 '새발의 피'에 지나지 않는다.
요약하면, 외지에서 찾아온 여행자에게 전두환과 박정희 중 한쪽만 소개하라면 당연히 '전통'을 내놓아야 한다. 훨씬 희귀 상품이니 말이다. 구미의 박정희생가를 보고온 사람에게 어록비나 흉상 정도는 볼거리도 되지 못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여행지 안내의 첫 번째 기준이다.
대구 여행 1번지는 어디? 그렇게 묻지는 말자. 그것은 '1등이 아니면 아무도 기억하지 않습니다' 따위의 상술에 이미 젖어 있다는 뜻이다. '대구 10경'이라든가 '대구 9경' 등이 적당하다. 너무 많으면 기억도 나지 않는 이치인 까닭이다. 마찬가지로, 달서구에서 볼 만한 것들에는 어떤 게 있나, 달성군은... 식으로 생각해보자. 시대순으로도 살펴보자. 시대순으로 살핀다면 가장 먼저 비슬산으로 가야 한다. 빙하기 유적이니 그보다 더 오래된 것은 없다.
세계 최대의 빙하기 암괴류, 대구의 비슬산에 있다!
비슬산은 대구를 대표할 만한 ‘명품’ 답사 여행지이다. 비슬산은 꼭대기 일원의 100만㎡에 이르는 ‘고위평탄면’을 자랑한다. 정상 일대의 표면이 이만큼 평평한산은 보기 드물다. 게다가 비슬산의 고위평탄면은 봄이면 사람이 다닐 수 없을 만큼 빽빽하게 피어나는 참꽃 군락의 장관을 보여준다. 또 가을에는 새털구름의 상공까지도 뒤덮는 금빛 억새숲 비경으로 사람의 눈을 시리게 한다.
그러나 빼어난 자연경관을 보여준다는 이유만으로 비슬산을 대구의 대표 답사지로 내세울 수는 없다. 그것은 구태의연한 발상이다. 비슬산에는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물건’이 있다. 아니, 지구 전체에서도 가장 막강한 그 무엇이 있다. 그것은 경사 15도로 기울어진 채 산자락을 무려 2km나 뒤덮고서 위용을 뽐내고 있다. 8만∼1만 년 전 지구의 마지막 빙하기에 형성된 암괴류, 바로 그것이다. 영국 다트무어, 미국 시에라네바다, 호주 타스마니아 암괴류가 유명하지만 비슬산 암괴류는 그것들을 단연 능가한다. 특히 답사객들은 신라 고찰 유가사나 소재사에서 1시간 남짓 걸어올라 정상 인근의 ‘大見寺지’에 도달했을 때, 절터 일대를 뒤덮고 있는 집채 같은 바윗덩어리 군집- 토르(Tor, 탑바위, 바위산)집단 앞에서 그만 말을 잊는다. 온 세계가 그 형성 과정에 학술적 가치를 부여하는 비슬산 암괴류, 다른 곳에서는 이만한 장엄을 결코 볼 수 없다. 물론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국가 지정 천연기념물이다.
‘비슬산 암괴류’는, 빙하기가 끝날 무렵 지표면의 흙이 씻겨 내려가자 산비탈 땅속 깊은 곳에 묻혀있던 둥글둥글한 바위의덩어리들이 흘러내리면서 차곡차곡 쌓은 듯 남아 계곡을 이룬 암괴류와, 하나하나가 산만큼 커다란 바위들의 군집인 토르, 각이 진 작은 바위들이 30도 내외의 급경사를 이룬 채 무수히 모여 있는 애추(崖錐, Talus, 너덜겅) 들을 총칭하는 이름이다. 비슬산은 화강암 지형의 온갖 발달 과정을 보여주는 천혜의 자연학습장인 것이다. 특히 전국적 봄철 명소인 참꽃 군락지 끝자락의 절터에 올라, 불당은 물론이고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광활한 빈 땅의 마지막 벼랑 끝에 애처롭게 버티고 있는 3층석탑을 바라보노라면, 마음속에 솟구치는 애잔한 물결에 문득 눈시울이 젖는다. 아득한 벼랑을 눈앞에 내려둔 채 멀고 먼 가야산 자락을 아스라이 응시하는 9.9부 능선 이 자리에, 과연 누가, 무엇 때문에 절을 짓고 석탑을 세우는 공덕을 쌓았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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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곡산성에서 바라 본 비슬산 전경 ( 출처 : 정만진) | | |
켜켜이 이어지는 산줄기 위로 햇살이 쏟아지듯 빛날 때든, 눈발과 안개에 자욱하니 가리어 한치 앞 벼랑조차 보이지 않을 때든, 도무지 원근을 구분할 수 없는 아득한 경치를 전망으로 삼고 있는 이 산꼭대기에, 그것도 인간의 종말을 증언하는 빙하기 유적 토르 군집 바로 앞에 금세 넘어질 듯 가녀린 3층석탑과, 이제는 무너져 그 자취마저 말끔히 사라져버린 불당을 세운 이의 마음은 진정 무엇이란 말인가. 그에게 정녕, 인생은 텅 빈 절터에 이는 한 줄기 바람과도 같은 것이었을까. 아니면, 마지막 빙하기의 엄혹한 냉기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사라져가는 사람들을 똑똑히 지켜본 저 묵중한 바위산과도 같은 것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