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장인의 미의식과 전통건축

연재를 시작하며...
뉴스일자: 2012년05월02일 13시55분

▲ ‘예술이 없는 계급은 없고 계급이 없는 문화는 없다’

1988년 대통령에 취임한 노태우는 "나는 주택을 많이 지은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고 한다. 대선공약인 '5대 신도시와 주택 200만호 건설'계획에 따라 분당, 일산, 중동, 평촌, 부천 등이 생겨났고 그 이후로 수많은 지역에 신도시가 탄생하기에 이른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은 업적에 관심이 많았다. 박정희-경부고속도로, 노태우-신도시, 김영삼-금융실명제, 김대중-IT사업과 복지, 노무현-행정수도 이전, 이명박은 현대건설사장 출신답게 4대강사업 등.

공교롭게도 1997년 새정치국민회의 대선 후보였던 김대중 역시 '한반도 대운하' 건설을 검토했으나 토목사업보다 IT사업육성으로 공약을 변경(새정치국민회의 정책위의장 김원길)하였다고 하니 권력의 정점에 있는 통치자는 가시적 업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그 중심에는 대형 토목공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과거 중국에는 치수(治水)를 통치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여겼다고 하지 않았던가. 또한 실크로드가 그렇고 군사원정길이 동서 문화를 연결하는 중요한 루트가 되었듯, 교통(토목)은 인류 문명사에 빼놓을 수없는 중요한 요소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것은 이와 같은 일에는 반드시 민중의 고통이 따른다는 점이다. 특히 권력자가 치적을 쌓기 위한 정략적인 토목공사라면 그 고통의 강도는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 

 

아파트, 우선 살기에 편하다. 특히 벌어먹고 살기에 바쁜 도시노동자들에게 아파트는 집을 손질하는 등의 집안 일이 줄어들고, 편의시설 등이 가까이 있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또한 아파트는 현금을 가진 일부 부유층과 투기꾼들에게 좋은 먹잇감이고, 부동산개발업자와 대형건설업체의 이윤 추구 대상이다.

대부분의 도시서민과 노동자들은 아파트 한 채를 보유하는 것조차 버거운 것이 현실이다. 임금 인상률보다, 장사해서 벌이는 수입보다 아파트 가격은 빨리 올라간다. 결국 은행에 비싼 이자를 물어가며 변두리 아파트를 구입하고 매달 일정액을 은행이자로 갚아가는, 저당 잡힌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앞으로도 계속 아파트가 우리의 주거형식으로 지속되리란 것에 선뜻 동의하는 사람은 많아 보이지 않는다. 생활의 변화와 의식의 변화, 노령화 등으로 인하여 어떤 형태로든 거주방식의 변화는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언제 본격화 될 것인지를 예상할 수 없지만 적어도 지금, 우리 주위에는 일정한 변화가 진행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와 같은 거주방식의 변화, 주거형식의 변화 가운데 주목할 것이 '한옥'이다. 필자와 같은 중년들은 대부분 어릴 적 한옥형 집에서 태어나고 자라 청년이 된 세대이다. 지난 과거를 회상하면 많은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가고 그 속에는 햇살 드는 넓은 마당과 궁뎅이 붙이면 따끈했던 툇마루가 있다. 비록 좁은 방이지만 가족들 모두 한 이불, 한 지붕에 살았던 기억도 있다. 우리세대가 지금 아파트를 떠난 삶을 생각한다면 바로 이와 같은 어릴 적 향수를 품은 집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서구식 문화의 영향으로 전원주택에 대한 환상도 있음을 부인할 수 없지만, 적어도 내가 태어난 시골로 돌아가 그 곳에 작은 집을 짓고 농사지으며 인생의 마지막을 자연과 벗 삼아 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 그러나 현실은 그것이 그야말로 꿈일 뿐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수 있다. 내년이면 대학에 들어갈 아들의 등록금 걱정으로 잠을 설치는 밤이 있는 한 꿈으로만 간직할 뿐이다.

인터넷신문-대구경북민중언론 '뉴스민'의 창간은 대형언론사들이 주도하는 뉴스의 전횡을 극복하고 지역의 소리를 대변하는 새로운 시도라는 점에서 나는 무척 반갑고 고맙기까지 하다. 기껏해야 신문의 한 쪽 ‘지역난’에나 있는 그런 뉴스에 목말랐기 때문이다. 또한 무엇보다도 우리가 아닌 그들의 시각에서 비춰지는 우리의 모습이 안쓰러운 것은 나만의 불만만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바램이 있다면 대구경북민중언론으로써 지역의 민중, 특히 도시영세 상공인과 노동자의 삶을 진솔하게 전했으면 한다. 적어도 지금의 삶이 고달프지만 앞으로 몇 년 몇 십 년, 나의 자식세대들에게는 더 나은 삶과 희망이 있음을 보여주고 함께 이룰 수 있다는 용기를 북돋아 주는 '뉴스민'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2012년 5월 1일 ‘뉴스민’의 창간을 앞두고 부족한 콘텐츠를 채워 줄 요랑으로 필자가 먼저 투고를 제안하고 ‘뉴스민’에서 기꺼이 받아들어 주었다. 고맙고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 “나 이러는게 좋아“ 깎고 또 깎는다.

민중의 삶, 노동자의 삶과 애환이 있는 곳이면 항상 그 배경이 되고 있는 집이 필자가 다룰 주제이다. 그 중에서도 우리의 조상들에게서 이어져온 고유의 살림집인 한옥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 필자는 한옥을 독학으로 배운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장인의 손결이 느껴지는 오래된 한옥 그리고 드잡이와 같이 무거운 인생을 살아온 목수들은 나의 스승이기에 차고 넘쳤다. 그들 덕분에 내가 있고 할 이야기가 생긴 것이다, 그 이야기를 조금씩 내 놓을 예정이다.

특히 그 동안 집과 한옥에 대한 이야기는 전문가들이 독점하다시피 했다. 그러나 필자는 그러한 전문가 집단이 내놓은 수많은 글들을 보면서 제도권 언론에 대한 불신 불만과 같은 비중의 불편함을 느껴왔었다. 따라서 제도화된 시각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이것이 나의 장점일 수 있다는 생각에서 용기를 내어 본다.

앞으로 20회에 걸쳐 다룰 집과 관련된 글들은 지금까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것들을 하나씩 부수는 과정이 될 것이다. '먼저 부수고 나서 건설한다'는 중국 '문혁'의 슬로건과 같이 기존에 상식화된 것들을 하나씩 부수는 글이 될 것이다. 살며시 문을 열고 들어가기 보다는 '문을 박차고' 들어가는 방식이 될 것이다. '예술이 없는 계급은 없고, 계급이 없는 문화는 없다'는 것이 필자가 오래도록 품고 있는 생각이고 앞으로 연재될 글의 관점이다.

어찌보면 필자가 '뉴스민'에 기고할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는 반드시 '목수'에 대한 이야기를 하여야 한다는 의무감의 발로였는지 모른다. 비록 목수들과 함께 할 때 '먹물'이라고 홀대 받은 적도 있고, '대학나온 친구'라는 부담스러운 말을 듣기도 했지만 그들이 있었기에 내가 있다는 생각에 이르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사진출처-위에서부터>
문달기-성각종 도편수
아파트-이승우사무장의 법원경매(네이버 블로그)
폐가-이강 촬영
치목-성각종 도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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