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제국의 위안부』 읽기 4

‘강제연행’이란 무엇인가?(1)
뉴스일자: 2015년05월26일 16시50분

[편집자 주] 지난 2월 17일 서울동부지방법원 민사합의21부(부장판사 고충정)는 박유하 세종대학교 교수 저서 『제국의 위안부』와 관련해 위안부 피해자 9명이 박 교수와 출판사 대표를 상대로 낸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이 책의 34군데를 삭제해야만 판매할 수 있다고 결정했다. 재판부는 다만 '박 교수 등의 접근·취재를 막아달라'는 신청은 기각했다. 자유로운 토론과 비판을 원했던 박유하 교수의 바람은 금지도서가 됐다. <뉴스민>은 『제국의 위안부』와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의미 있는 토론의 장을 열고자 한다.  이에 인문학자 정승원의 글을 열 차례 연재한다. 정승원의 견해와 입장이 다른 글도 얼마든지 환영한다. (010-8585-3648, newsmin@newsmin.co.kr)

위안부(더 정확히 말해, 조선인 위안부)문제에 있어서, 첫 번째 핵심적인 논란/논쟁 지점은 ‘강제연행’ 여부입니다. 제가 여러 자료들을 살펴보면서도 ‘강제연행’ 부분이 잘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논자와 자료에 따라서, 동일한 사태에 대해 포커스 지점을 다르게 맞추어서 기술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왜 일본군 ‘위안부’를 공격하는가』(전쟁과 여성 대상 폭력에 반대하는 연구행동센터 엮음/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번역기획/김경원 외 옮김/휴머니스트/2014), 『대한민국 이야기』(이영훈 지음/기파랑/2007) 중 위안부 문제를 다룬 7장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실체」, 8장 「그날 나는 왜 그렇게 말하였던가」, 그리고 『제국의 위안부』를 읽어보면, 약간씩 포인트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용하는 개념들이 제대로 통일되어 있지 않다는 것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세 권에다가 『조선인 군위안부와 일본군 위안소제도』(윤명숙 지음/최민순 옮김/이학사/2015)까지 읽다 보면, ‘뭐가 이렇게 복잡해’하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일단 기존의 지식이나 이미지에서 벗어나서, 차분하게 하나씩 정리해가면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도덕적 가치 평가를 괄호치고, 사태나 상황을 그 자체로 재구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머릿속에 이미지/그림/표상을 하나 새롭게 그릴 필요가 있습니다. 그럴 때 왜 위안부 관련 논의나 담론이 얼마나 꼬여있는지, 얼마나 복잡한지 알게 됩니다. 그리고 박유하 교수가 『제국의 위안부』라는 책을 왜 쓰게 되었는지 이해하게 됩니다. 

우리가 제일 먼저 할 것은 지금까지 우리 머릿속에 오랫동안 자리 잡고 있던 이미지를 제거하는 것입니다. 그 이미지는 “우물가에 물 길고 빨래하던 어여쁜 조선 처녀 ‘20만 명’을 일본군이 총칼로 협박하여 강제로 ‘정신대’로 끌고 가서 일본군 성노예인 ‘위안부’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위안부 지원단체와 언론들을 통해서 유통되어온 이러한 ‘지식/정보+이미지’는 또 다른 이미지를 연쇄적으로 만들어내면서 한국인들의 머릿속에 조선인 위안부에 대한 하나의 상/이미지를 형성했습니다. 그래서 다수의 한국 사람들은 조선인 위안부를 이런 ‘강제연행’의 차원에서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위안부운동의 차원에서 일본군의 가해성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만들어진 이 이미지는 오히려 문제를 꼬이게 했습니다. 그리고 잘못된 위안부 숫자로 역사 왜곡과 분쟁의 소지를 남깁니다. 이런 잘못된 ‘지식/정보+이미지’는 다음과 같은 불필요한 오해와 왜곡을 낳았습니다.

1) ‘정신대’와 ‘위안부’를 혼동하게 했습니다.
2) ‘강제연행’의 성격을 오해하게 했습니다.       
3) ‘위안부 모집’ 관여 주체의 차원을 보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4) 조선인 위안부를 끌고 간 주체들을 흐릿하게 하였습니다. 
5) 일본군 위안소의 성격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자, 이제부터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1) 정신대와 위안부는 엄연히 다릅니다. 정신대는 근로정신대의 준말입니다. 일제가 전쟁 시기에 부족한 노동력을 보완하기 위해서 여성의 노동력을 군수공장 등의 산업현장으로 동원한 것을 정신대로 일컫습니다. 반면, 위안부는 군대의 위안소 등에서 군인들에게 성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일본은 1943년부터 14세 이상의 미혼여성들은 자발적으로 학교, 지역 단위의 정신대로 조직하여 군수공장으로 가게 합니다. 위안부는 이전부터 존재했습니다. 이후, 1992년 어느 신문이 1944년 8월에 공포된 ‘여자정신근로령’을 법전에서 찾아낸 다음 일제가 한반도에서 조직적으로 위안부를 징발한 확실한 증거를 포착하였다고 일면 톱을 대서특필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위안부 문제를 위한 한국의 시민단체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라는 이름으로 활동합니다. 이런 과정들을 거치면서, 우리는 정신대와 위안부를 하나로 혼동하게 됩니다. (한국 사람들이 전혀 다른 존재였던 정신대와 위안부를 혼동하게 된 역사적 과정은 이영훈 교수의 책 『대한민국 이야기』 7장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실체」에 잘 나와 있습니다. 상세한 내용은 이 책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2) ‘강제연행’의 성격과 개념을 논자마다 다르게 사용합니다. 그래서 어떤 책이나 논자는 ‘강제연행’이 있었다고 하고, 또 다른 쪽은 ‘강제연행’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강제연행’을 서로 다르게 정의하기 때문에, 즉 ‘강제연행’의 개념이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차이입니다. 기존의 많은 사람들은 ‘강제연행’을 일본군인이 강제로 조선인 처녀를 끌고 간다는 식의 이미지와 개념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은 ‘협의(좁은 의미)의 강제연행’입니다. ‘광의(넓은 의미)’로 정의하면, 강제연행은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일본군 ‘위안부’제도의 강제성을 판단할 때 납치 식의 연행만을 강제연행이라 하지 않는다. 국제추업조약(-여기서 추업은 매춘업을 말한다.) 등에 나타나는 당시 국제적 개념에 따르면 강제연행이란 ‘사기·폭행·협박·권력남용, 기타 일체의 강제수단에 의한 연행〔징집〕’이라 생각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것을 전제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생각할 때는 강제 수단에 의한 유인·유괴 등과 같은 징집, 감시 하 이송, 나아가 위안소에서의 구속(자유의 속박), 연속적 강간, ‘위안부’ 강제, 생명·인간 존엄 부정, 폭력 구조, 전후 유기 등 전체로 봐야 한다.” (『그들은 왜 일본군 ‘위안부’를 공격하는가』, 50~51쪽)

이것은 정대협을 위시한 기존의 위안부 지원단체와 학자들의 ‘강제연행’ 개념입니다. 이 개념은 ‘광의의 강제연행’ 개념입니다. 다 맞는 말인 것 같은데, 무언가 복잡해 보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리고 이 개념과 정의에는 누락되어서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더 정확히 말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알아야 기존 위안부 논의의 논쟁점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고, 『제국의 위안부』 가 가지는 담론적 맥락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이 이야기는 다음 연재에서 구체적으로 하기로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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