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성경말씀은 복음서가 아니라 로마서이다. 바울이 로마교회에 보낸 편지이다. 복음서 범위는 아니지만, 로마서 말씀이 오늘 현실과도 깊은 연관이 있는 권력문제여서, 다루고자 한다.
지난주에 책 한 권을 읽었다. 『괴벨스, 대중선동의 심리학』, 무려 1040쪽 되는 책을 독파했다. 나치제국의 선전장관 괴벨스가 히틀러와 함께 어떻게 권력을 쟁취해 나갔는지 하는 과정을 보았다. 히틀러의 매우 충실한 시다바리인 괴벨스는 천재적인 머리, 집요한 권력의지, 박사에 걸맞은 글솜씨 등을 최대한 활용해서 독일국민들이 히틀러를 메시아로 받아들이도록 했다.
"사람들이 거짓말을 듣게 되면 처음에는 아니라고 하며 두 번째는 의심하지만 계속하다보면 결국에는 진실이라고 믿게 된다"
"대중에게는 생각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이 말하는 생각이라는 것은 모두 다른 사람들이 한 말을 그대로 반복해서 말하는 것에 불과하다"
"거짓과 진실의 적절한 배합이 100%의 거짓보다 더 큰 효과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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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벨스의 최후 [출처=http://alifrafikkhan.blogspot.kr] | | |
대중을 향한 이 문구들은 그가 얼마나 대중선동의 귀재인지를 웅변한다. 그러나 그들의 최후는 비참했다. 패전이 확실해진 후, 1945년 4월 30일 히틀러는 애인 에바 브라운과 함께 지하 벙커에서 자살하고, 괴벨스는 다음날인 5월 1일, 6명의 아이를 모두 청산가리를 먹여 죽이고, 괴벨스 부부도 함께 자살한다. 시신은 휘발유에 새까맣게 탄 채 발견된다. 자신이 말한바,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악랄한 범죄자로 남은 자가 선택할 수밖에 없는 최후였다. 이 비극적인 죽음이야말로 히틀러의 권세가 얼마나 허망하고 부질없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불의를 넘어 사악한 권세는 히틀러의 나치정권뿐만 아니라, 인류역사상 무수히 많았고 현재도 그렇다. 신구약중간시대가 배경인, 마카베오서에 나오는 안티오쿠스왕은 유대인들에게 절대 금기사항인, 돼지고기를 강제로 먹이게 하고 먹지 않으면 고문하고 죽이는 극악하기 이를 데 없는 권세였다. 그것뿐인가, 서방의 지원을 가로채서 민중들을 더욱 헐벗게 하는 아프리카 독재정권들, 지독한 이슬람 원리주의로 아프카니스탄 민중들을 억압하는 탈레반정권,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부시정권도 사악한 권세이다. 우리나라도 현 정권에 이르기까지 좋은 권력보다 나쁜 권력이 더 많았다. 열거하자면 한이 없다.
이제 필자가 계속 사악한 권세를 끄집어내는 이유를 눈치챘을 것이다. 바로 오늘 성경말씀의 적용문제이다. "사람은 누구나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해야 합니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이미 있는 권세들도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것입니다"(로마서 13:1) 실제 현실은 그렇지 않은데, 어찌하여 로마서는 이런 말씀을 하는가이다. 민중을 학살, 학대, 도탄에 빠뜨린 불의한 권력들이 다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권세인가? 그래서 오늘 성경말씀처럼 모든 권세에 복종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성서해석의 중요한 원리를 다시 한 번 상기하겠다. 성경말씀이 나온 상황과 약자의 입장을 도외시한체, 성경문자만 그대로 오늘 현실에 적용하는 것은 또 다른 부작용을 낳는다는 점이다. 6월 28일(토) 오후 대구 2.28 공원에서 열린 퀴어축제에 대한 기독단체의 반대가 그 예이다. 그들은 퀴어축제를 향해 동성애가 죄악이라는 무시무시한 언어폭력을 휘둘렀다. 그 역시 성경말씀을 문자 그대로 갖다 붙이는 데서 오는 폐단이다. 퀴어축제 표어가 "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인데, 양쪽 장면을 본 소감은 이 표어와 딱 맞았다. 퀴어축제에 온 사람들은 모두 발랄하고 자유로운 기운으로 충만했다. 반면에 반대기도회와 시위를 하는 사람들은 눈빛이며, 쏟아내는 말이 매우 살벌했다. 성소수자들이 겪는 고통과 소외에 대해 기독교 사랑으로 연민과 위로를 보이기는커녕, 오직 정죄하기에만 바빴다. 그리고 어째서 퀴어축제 앞에서 교회걱정을 그리도 하는지 그것도 이해가 안됐다. 한쪽은 사랑으로 움직이고, 한쪽은 혐오로 움직이니, 애당초 비길 바가 못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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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기독교단체는 지난 6월 28일 열린 퀴어축제 행사장 주변에서 행사를 막았다. | | |
그럼, '권세에 복종하라'는 오늘 성경말씀은 어떤 배경과 맥락으로 봐야 하는가? 무엇보다 이 말씀이 권세에 대한 모든 행위규범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국가가 존재하는 중요한 기능인, 약자보호와 인권신장, 민주주의 발전과 정의수립, 공동선 추구와 국민 행복 등을 수행하기는커녕, 총체적으로 무능하고 불의한 국가로 전락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세월호에서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한 이런 정권을 그냥 용납해야 하는가? 하는 점은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잘 알고 있다.
사도행전을 보면, 베드로와 사도들은 당국자의 겁박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예수를 증거한다. 전혀 권세에 복종하지 않는다. 본회퍼 목사는 히틀러 암살음모에 가담한 죄로 히틀러가 자살하기 20일 전인, 4월 9일에 처형당한다. 이런 예를 보더라도 권세에 복종하는 것이 , 어떤 권세에나 무조건 따라야 하는 말씀은 아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로마서에서 이 말씀을 한 연유는 무엇인가? 로마서를 쓰기 대략 10년 전에 유대인 사회가 로마로부터 추방을 당한다. 이 와중에 기독교도 유대교 안의 한 작은 분파로 보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도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비슷한 취급을 받았다. 특히 로마에 사는 유대인과 그리스도인들은 반란을 일으킬 소지가 많은 사람들이라는 오해를 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착한 시민임을 의식적으로 강조해야 했다. 그래서자신들을 향한 로마의 여론이 중상모략임을 증명해야 했다. 그런 배경에서 로마 권력에 대해 할 말은 분명하다. 권세에 복종하는 것이고, 세금을 잘 내서 의심을 지우는 일이다.
로마서 12장 하반부를 보면, 그리스도인들은 로마 권세로부터 부당한 대접을 받고 있다. 박해와 악한 일을 겪는다. 그럴지라도 저주 대신 축복하고,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대다수 로마사람을 염두에 둔)이 선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라고 한다. "여러분 쪽에서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게 지내십시오"(12:18) 이와 같은 말씀을 보더라도, 로마교인들이 당면한 일은 로마사람들과 최선을 다해 잘 어울리는 일이다. 이런 현실적인 배경이 있기에, 바울이 로마의 권세에 대해 긍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바울은 권세자들에게 세 번이나 '하나님의 일꾼'이라는 말까지 한다. 매우 우호적인 표현이다. 치안관은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고, 적극적으로 세금의 의무를 다하라고 말한다. 기독교적 가치로 볼 때, 로마에 내는 세금은 이율배반일 수 있다. 세금의 용도가 무엇인가? 로마제국 유지이다. 구체적으로 황제, 로마가도, 로마군대, 신전 등을 유지한다. 그 속은 정복, 폭력, 잡신우상 따위이다. 그 어느 것도 평화를 지향하고, 살아계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의 가치와는 맞지 않는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 민감한 주제에 대해서는 일절 입을 다문다. 로마시민들이 다 황제권세에 대해 아무 이의가 없기 때문이다. 대구경북에서 목회하는 목사들이 박근혜를 비판할 수 있겠는가? 자신들도 교인들과 같은 입장이어야 관계가 두루 원만하다. 무엇보다 생존하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 로마교회가 권세에 대해 그러했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바울이 일방적으로 로마권세에 찬양만 하는 것은 아니다. 권세에 복종하라는 로마서 말씀은 불의한 권세자들이 마냥 좋아할 말씀이 결코 아니다. 바울은 현실권세를 일방적으로 편드는 게 아니라, 바른 권세를 말하기 때문이다. 바른 권세는 정의를 행해야 한다고(12:3), 바른 권세의 목적은 권세 자체가 아니라 사람을 유익하게 하는데 있다고(12:4), 바른 권세는 공권력을 올바르게 사용해야 한다고(12:4), 또 바른 권세는 사람의 양심을 보호해야 한다고.(12:5) 무엇보다 바른 권세는 민중과 한편인 하나님께 기반한다고 설파했다. 지금 주류기독교인들이 맹목적으로 권력편에서 찬양나팔을 부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달랐다.
바른 권세가 절실함이 어찌 로마시대에만 해당할까. 지금 우리도 매일매일 불의한 권세의 패악을 견디고 있지 않은가! 정말이지 민주시대에 걸맞은 권력이 사무치게 목마르다. 그러므로 우리는 권세가 바른 권세이도록, 민주시민의 덕목을 최선을 다해 발휘해야 한다. 우리가 권세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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