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날] 천병석의 신비한 우리말 산책 (6)

‘갈다’와 ‘철따라 ~’
뉴스일자: 2014년05월17일 06시50분

지난 제5편에서는 한국어 <바꾸(-다)>/<바뀌(-다)>> 및 그와 대응하는 아래 글 상자 안의 영어 단어들이, 하늘에 있는 ‘태양’ 즉 아침이면 동쪽으로 떠올라 저녁이면 서쪽으로 지는 태양의 그러한 매일 되풀이 되는 반복과 ‘순환(cycle)’을 기초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들과 의미적 등가관계인 {바꾸다(바뀌다)}라는 뜻의 <alter>/<갈다>라는 어휘 역시 이 단어들과 마찬가지로 태양/달과 같은 천체(天體)의 순환(cycle)을 토대로 생성되었을 것이라고 했었다. 오늘은 <alter>를 이러한 관점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alter>의 어두에다 -본래 존재하였다가 탈락했었다고 여겨지는- 연구개음(g․k)을 다시 재구성하면, 보다시피 현대영어 ‘alter’는 <갈다>라는 현대 한국어로 된다.
“연탄불을 갈다”, “자동차 바퀴를 갈다”, “옷을 갈아-입다”, “밀물썰물이 갈마들다”라고 할 때의 ‘변화․교체’의 뜻을 표현하는 바로 그 말이다. 

“갈대와 같은 여자의 마음!”이라고 할 때의 <갈대>라는 말도 이러한 변화․교체의 뜻 즉 {변하다․바뀌다}의 뜻과 직결되는 점에서 <alter>의 대응어휘로 짐작해볼 수 있다. 다시 말해 ‘변화․변덕’의 의미로 쓰는 이때의 <갈대>는 본래 들이나 산에 자라는 식물로서의 ‘갈대’와는 무관한 것이었으나 사람들이 오랫동안 그처럼 무의식적으로 해석해버린 결과 그렇게 되어버린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변화’ 혹은 ‘교체’라는 개념은 날마다 하늘로 뜨고 지고를 반복하는 태양의 변화 즉 해가 뜨고 짐으로써 알게 되는 낮과 밤, 밤과 낮의 변화로서의 천체현상 그리고 계절적 순환으로서의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그러한 주기적 자연현상을 통해 체득되어졌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된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변화․교체}의 뜻으로서의 “갈다(바꾸다)”라고 할 때의 [갈] 혹은 어두의 연구개음 성질이 탈락한 [알(al)]이란 음형이 본래 가리키던 대상물(지시물)은 다름 아닌 ‘태양’이 될 것이다.

이를테면 명사어휘 <신(신발)>에 서술적 어사 ‘-다’가 결합하여 동사어휘 <신-다>가 만들어진 것처럼, ‘태양’의 뜻인 <갈(알)>에 서술적 ‘-다’가 결합한 것이 이번 장의 표제어인 <갈-다>/<al-ter>라는 것이다.
 

고대세계에서는 ‘태양’이 신(神)으로까지 숭배된 위대한 존재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다음에 보인 신(神)/종교 관련의 명칭들 또한 <alter>의 ‘al -’ 즉 [갈]이 ‘태양’과 밀접한 것임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될 수 있다. 참고로 적은 수메르어 <íl>도 그 ‘높다’라는 의미적 연관에서 보아 하늘/태양을 어휘기초로 삼고 있다고 여겨지는 점에서 <alter>의 ‘al -’ 및 아래의 ㈎㈏㈐ 등과 무관해보이지 않는다.

서두에서 표제어들 밑에 적어놓은 몽고어 <gal>도 이런 점에서는 같은 맥락이다. 즉 ‘불’ 또는 ‘열(熱)’이란 것은 원형적으로 태양에서 비롯된 개념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에서 {불}의 뜻인 몽고어 <gal>은 그 어휘적 기초가 ‘태양’으로 추정되고, 바로 그 점에서 <alter>의 ‘al -’ 즉 [갈]이 ‘태양’을 가리키는 말임을 이 몽고어 <gal>이 입증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흔히 “붉은 불빛”이라는 표현을 쓰듯이 ‘불’은 {붉다}라는 색상어와도 가깝다. 때문에, 몽고어 <gal>을 통해 보듯이 ‘불’은 ‘태양’과 매우 긴밀한 어휘연관을 지닌다는 점에서 이 ‘불’과 밀접한 색상적 요소로서의 {‘붉다’} 역시 그 어휘적 기초가 ‘태양’일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다음에 소개한 {붉다}라는 뜻의 터키어 <al>을 그러한 맥락에서 ‘태양’관련어로 추정하고 보면, 이번 장의 표제어인 <alter>의 ‘al -’과 이 터키어 <al>이 어형적으로도 완전히 동일하여 <alter>의 ‘al -’이 ‘태양’을 가리키는 어휘라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터키어 <al>은 그 어형 및 이것이 지닌 {‘붉다’}로서의 태양적 의미연관의 측면에서 흔히 태양신화의 문맥으로 받아들여지는 난생신화(卵生神話)에서의 그 <‘알’>과 무관해보이지 않는다. 즉 김알지, 박혁거세왕, 김수로왕 등의 탄생설화에서 태양적 요소로 해석될 수 있는 금합(金盒), 흰닭, 자색-줄(끈)등과 함께 등장하는 그 <‘알’>과 이 터키어 <al>은 본래 ‘태양’을 가리키는 하나의 동일한 말이었다고 여겨지고, 그러던 것이 오랜 세월에 의한 의미분화를 겪은 결과 하나는 새들이 낳는 <‘알’>을 다른 하나는 색상어로서의 <al(붉음)>만을 표현하게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한국어 <알>과 터키어 <al>은 ‘태양’을 가리키던 어떤 하나의 원형적 어휘로부터 파생된 「동일기원어」일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대체로 ‘알’이란 것은 둥근 ‘원형(圓形)’이라는 형태적 특징과 더불어 ‘흰색’으로서의 그것이 지닌 {밝다}라는 요소에 근거할 때 그 어휘적 기초가 ‘태양’에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으며, 김수로왕 등의 신화적 존재들이 모두 하늘에서 내려온 존재인 점에서 그들을 담아온 ‘흰-알’ 혹은 ‘금빛-알’이란 것이 ‘태양’의 표징이 될 수 있기도 하므로, {붉다}로서 역시 태양 관련어임에 분명한 터키어 <al>과 난생신화에서 그 <‘알’>이 기원적으로 동일한 어휘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다.

지금까지 소개한 각 단어들의 공통적 어휘기초가 ‘태양’이란 점을 염두에 두면서 이들을 한 자리에 모아보고, 어두자음 /g․k/의 변화형을 고려한 태양 어휘들을 몇 개 더 살펴보도록 하겠다.

마지막 ㉮줄은 ‘gal’ 즉 [kal]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음변화형을 고려한 것으로 이러한 보편적 음운이론을 적용해봄으로써 {태양}을 뜻하는 라틴어 <sol>과의 관계를 밝힐 수 있음이 자못 흥미롭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점을 보더라도 지금까지 살펴본 바의 {불}을 뜻하는 몽고어 <gal>이나 {붉다}의 터키어 <al> 그리고 {‘변화․교체’}로서의 <alter>/<갈다>와 같은 말들이 전부 ‘태양’에서 비롯된 것임을 추정해볼 수 있지 않겠나싶다.

“설을 맞다(세다․지내다)”라고 할 때의 <설>도 “새로운 해를 맞다”로서의 ‘태양’어휘임을 눈여겨보아야겠다. 아마도 한국어 <설>은 라틴어 <sol>과 동일기원어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설(契)>은 하(夏)나라를 멸하고 등장한 은(상)나라 탕(湯)임금의 선조로서 제곡(帝嚳)의 아들이다. 설(契)의 어머니 간적(簡狄)은 현조(검은 새)가 알을 떨어뜨리는 것을 보고 이를 삼킨 후 설을 낳았다 하는데, 이는 신라의 박혁거세나 석탈해 이야기 그리고 가야국 김수로왕의 탄생신화와 마찬가지로 ‘알’이 등장하는 태양 숭배적 관념을 표현한 이야기라 하겠으니, 이때의 [설]이란 이름 또한 {태양}의 라틴어 <sol>과 무관치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삼국사기 및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초기 신라의 ‘김알지(金閼智)’라는 이름에 <알(閼)>이란 음절이 포함된 점, 그리고 제6장에서부터 집중적으로 살펴볼 ‘arch’라는 단어가 태양신화적 문맥의 <알지(閼智)>와 상통하면서 어휘론적으로도 ‘태양’계열의 어휘로 규명되어지는 점 등도 ‘alter’의 [al -] 즉 ‘갈다’의 [갈]이 ‘태양’을 가리키는 말임을 살펴보는 이번 장의 주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이처럼 ‘alter’의 재구형 <* (k)al-ter>에서의 어두자음 /k/의 변화형을 고려해 살펴보면 이번 장의 표제어 <alter>/<갈다>는 다음의 ㉯㉰와도 연관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즉 서두에서 본 대로 ‘변화․교체’라는 개념이 ‘태양’에 의한 낮과 밤, 밤과 낮의 변화 혹은 봄․여름․가을․겨울로의 주기적 변화를 보이는 자연현상을 통해 체득되어졌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에서 ‘alter’는 재구(再構) 원형 <*(k)alter>에서의 음변화를 상정한 ㉯의 <철따라~>와도 대응할 수 있겠다는 말이다. 단어 뜻 {(집을)개조하다, (옷을)고쳐 짓다}라는 것은 봄에서 여름으로, 여름에서 겨울로 ‘철(계절)’이 바뀜에 따라 필수적으로 해야 할 일들이 아니겠는가?

생각건대 ㉰의 <절대(絶對)>라는 말 또한 ‘alter’의 의미기초인 ‘태양’을 표현한데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즉 아침이면 반드시(틀림없이) 떠오르고 저녁이면 어김없이 지는 태양, 혹은 반드시 동쪽으로만 해가 뜨고 서쪽으로는 해가 진다고 하는 방위(方位)에서의 그 ‘불변성’이 ㉰의 <절대(絶對)>라는 개념어로 발전하였으리라는 것이다.
흔히 무언가 절대로 일어나기가(변하기가) 어렵다는 의미로 “해가 서쪽에서 뜨겠다!”라고 하는 점에서 보더라도 태양에 수반되어져온 방위(方位)에 대한 인식 내지 방위의 기준됨으로서의 ‘태양’이 가질 수 있는 {‘절대성’}이라는 의미내용을 수긍할 수 있다 하겠다.

이처럼 언어라는 것은, 일종의 『언어-핵(씨앗)』이라 부를 수 있는, 동일한 하나의 ‘태양’으로부터 ‘alter’의 {변하다}라는 의미요소 그리고 이와는 완전히 상반된 불변성으로서의 {절대(絶對)}라는 의미요소까지 생산해낸 ‘빅뱅(Big bang)’의 역사를 겪어왔다고 필자는 믿고 있다. 영어 <come>이 {오다}/{가다}의 뜻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것과 비슷하게, 원형적인 하나의 사물(언어씨앗)을 어느 관점에서 혹은 어느 방향에서 언어화하느냐에 따라 그 현대적 의미가 달라져왔다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붉다}의 터키어 <al>과 난생신화에서의 <알>도 바로 이러한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이 둘은 원시언어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태양’을 가리키는 하나의 말이었다가, 하나는 태양이 지닌 그 {붉다}라는 색상적 관점으로 진행하였고 다른 하나는 태양이 지닌 그 {둥글다}라는 형태적 관점을 중심으로 나아감으로써 오늘날은 그 의미가 서로 달라져버리게 되었다는 것으로, 그런 뜻에서 터키어 <al>과 한국어 <알>, 이 둘을 언어의 의미적 빅뱅에 의한 결과로 볼 수 있다는 얘기다.
태양이 가진 그 {둥글다}라는 형태성을 표현한 <알> 즉 [al -]은 머루알/포도알/호두알/팥알/콩알/보리알 등등의 말에 존재하는 바로 그 [알]이란 음절일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alter>의 ‘변화․교체’의 뜻은 매일매일 다시 떠오르는 태양의 신생(新生)과 재생(再生)의 이미지에 그 의미론적 기초를 두고 있다. 그 점에서 alter의 대응 <갈다>에서의 ‘갈’은 아래의 ㉱줄에 적은 {새것}이라는 뜻으로 쓰는 <(새‘new’-) 깔깔이>라는 방언형에서의 [깔]이란 음절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매일매일 변하고 교체된다는 것은 매일매일 ‘새로워’진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줄의 <gold>는 태양의 또 다른 중요한 의미요소 가운데 하나인 '빛(빛나다)'과 연결되는 어휘이다.

㉳줄의 <알다>라는 말은 고대세계에서 생존을 하려면 필수적으로 알아야 했던 ‘시간 인식’ 즉 시절/절기(節期)에 대한 지식과 그 습득이란 측면에서, ㉯의 <철따라>와 마찬가지로, <alter>의 어휘적 기초인 ‘태양’으로 연결될 수 있다.

가령 멀리 사냥을 나갔다가 어두워지기 전에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려면 해가 언제쯤 질 것인지를 가늠할 줄 ‘알아’야 한다든가, 혹은 언제쯤이면 잡기 쉬운 연어 떼가 강으로 올라오며 맛이 좋고 영양가가 풍부한 과일들은 어느 때에 많이 열리는지, 또는 얼음이 어는 때를 알아야 미리 소떼를 이동시킬 준비를 할 수 있다든가 등등의 먹고사는 문제가 걸린 모든 활동들이 ‘때(철․절기)’를 잘 알아야만 원활하게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고대세계에서의 지식(知識) 즉 ‘알다’라는 것의 기초는 무엇보다 이 ‘때(철․절기)’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때/절기(節期)를 셈하는 ‘달력’의 뜻인 calendar에서의 <cal->도, 이러한 맥락에서 서두에 적은 ‘alter’의 연구개음적 원형 <*(k)alter>의 제1음절 <*(k)al->과 마찬가지의 ‘태양’관련어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던 신정일치적(神政一致的) 권한의 이슬람 지도자 ‘칼리프(caliph)’라는 칭호에서의 <cal->도 이와 같다.

한편, 이 ‘알다’는 앞에서 살펴본 바의 <절대(絶對)>라는 말에 녹아있는 방위(方位)로서의 태양적 의미요소일 수도 있다. 즉 ‘어디로’ 가야지만 먹이가 있느냐, 혹은 ‘어디로’ 가야만 먹이를 많이 캐고-따고-잡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로서의 태양(일출)이 기준이 된 그 방위적 의미요소에서 파생된 개념이 지식(知識) 즉 <알다>일 수도 있겠다는 얘기다.

이처럼 생존조건의 제1요소인 ‘먹이’ 문제를 선순위에 놓고 보면 앞서 언급한 머루알/포도알/호두알/보리알 등에서의 <알>은 방향적 요소이면서 ‘먹이․먹거리’로서의 어떤 원시적 어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먹이를 구하는 활동인 “일하다”에서의 <일(노동)>이 alter의 <al->과 의미적(?)으로나 음형적으로 비슷해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번 장의 조금 앞쪽에서도 적었듯이, alter의 <al->은 {해․햇빛․날}의 <일(日)>과 동일한 것으로 추정되는 점에서 같은 음형인 <일(노동)> 또한 그 의미적 상관성에서 보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일(日)’이 뜨면 ‘일’어나 ‘일(노동)’을 죽도록 해야만 먹고살 수 있었던 원시적이 아니었겠는가?
    
변화․교체의 <alter>/<갈다>나 불변(不變)의 <절대(絶對)>가 의미적으로 나누어지려던 그 시점, 그리고 ‘때․절기’와 ‘방향’적 개념이 의미적으로 나누어졌었던 〈언어 빅뱅(Big bang)〉의 시대가 까마득히 먼 과거의 일인지라 어쩌면 우리는 이 ‘지식․자각․인식’으로서의 <알다>라는 어휘의 정확한 생성배경에 관해 영원히 알 수 없는지도 모르지만, 이 <알다>가 ‘태양’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은 확신할 수가 있다.
    
‘백번 듣는 것이 한번 (눈으로)보느니만 못하다’라는 뜻의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란 말도 있지만, 사실 ‘태양’이 떠올라 어둠이 물러가는 빛/밝음의 아침이 되어야만 나의 가족이 내 곁에 있음을 ‘알’게 되며 내 소유의 물건들이 그대로 제자리에 있음을 비로소 ‘인식’하게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태양’ 곧 ‘빛’이 [알다/자각/인식]의 원천적 매개물이라 아니할 수 없음이고, 기독성경의 창세기 제1장3절 말씀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라고 하여 첫째 날에 우선적으로 ‘빛’이 창조되었음을 밝힌 것도 빛이 존재의 원천적 매개물임과 동시에 인식/자각의 매개물이기도 하다는 점을 바탕에 깔고 있는 것이라 생각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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