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날] 유승민의 영화 읽기 (3)

”연애, 다시 잘할 수 있을까?” - <연애의 온도> 리뷰
뉴스일자: 2014년04월19일 09시07분

연애가 끝나고도 사랑은 계속될 수 있을까? 헤어진 연인이 다시 잘 될 수 있을까? 있다. 있다고, <연애의 온도>는 대답한다.

그런데 이 영화가 보여주는 사랑은 애잔하거나 낭만적인 모양이 아니다. 손편지를 썼다 꾸겼다를 반복하며 머리를 쥐어뜯는다거나, 전할 수 없는 안부를 라디오 사연으로 보내는 일 같은 건 적어도 이 영화에 없다. 그러니까 멀어진 몸과 마음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미디어의 도움이 둘에게는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둘은 매일같이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연애의 온도> 주인공 영과 동희는 3년간 사내커플로 지내며 비밀연애를 했었다. 그리고 헤어진 지금도 같은 회사에서 근무한다. 

연애 후 둘이 벌이는 행각은 일단은 사랑이라기보다 진상이라 부르는 게 적당해보인다. 영은 동희의 서류를 몰래 버려 동희를 곤란하게 만든다. 한편 동희는 괜히 영의 업무를 처리 안 해주는 가 하면 사귈적 영에게 빌려줬던 노트북을 당장 돌려달라며 굳이 “수고"라는 말을 덧붙여 속을 긁는다. 

둘의 심술은 강도를 더 해간다. 영은 동희의 노트북을 완전히 박살내 돌려주고, 관계를 청산하며 그간 데이트비용을 돌려받기도 한다. 그러며 영은 동희에게 널 사랑한 적 한 번도 없다며 안 해도 될 말을 굳이 덧붙인다. 추하다. 헤어지고, 비밀연애의 짜릿함은 저릿함으로 바뀌었다. 하나하나 달콤하던 일상이 이제는 쓰다.

하지만 둘의 인연은 여기서 끝나진 않는다. 이윽고 재회. 어떤 영화의 한 대사를 잠시 들춰보자. 

“여자는 가장 가까운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걸요."

남자도 그럴 거다. 그러니까 연애와 사랑에는 일종의 근접성 법칙이랄 게 있다. 자주 마주치고 자주 부딪히는 사람과 사랑에 빠진다는 거다. 그래서 그런지 ‘재회의 로맨틱코미디’라 부를 수 있는 장르들은 이 법칙에 충실하다. 최근 종영을 앞둔 <응급남녀>는  이혼한 두 부부가 재회의 가능성을 타진해보는 드라마인데, <응급남녀> 역시 주인공들이 우연히 한 병원에서 인턴생활을 시작한다는 설정에서 출발한다. 감정적인 재회를 위해 물리적인 충돌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연애의 온도> 역시 이 법칙을 충실히 따르며 주인공의 사랑과 연애를 회복시킨다. 여기에 더해 연극으로 치면 방백이라 할 장치를 가져온다. 주인공과 관객 모두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는 와중 서사가 진행된다면(보통 우리가 보는 많은 내러티브 영화가 여기에 해당한다), 어느 순간 인물은 카메라 앞에 서서 직접 말을 한다. 영화 내에서는 회사 생활 관련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다고 설정되어있다. 이 장치는 <우리 결혼했어요>와 <짝>을 통해 국내 관객·시청자에게 익숙해져있다. 별도의 공간을 마련해 서사의 이해를 돕는 한편 인물의 속마음을 관객에게 직접 전달하는 셈이다.

첫 재회의 순간 둘은 묻는다. “연애, 다시 잘 할 수 있을까?”  이때 대답의 근거는 ‘기대'다. “다시 사귄 커플들이 잘 될 가능성은 3% 밖에 안 된데. 하지만 우리가 거기에 들 수도 있는 거잖아.” 가능성은 낮지만 거기에 도전해보는 거다. 혹시 모르니까. 하지만 둘의 연애는 실패로 끝난다. 처음 헤어졌던 이유와 똑같은 이유로.

영화의 마지막에 영과 동희의 두 번째 재회가 다시 우릴 기다리고 있다. 만난 자리는 극 중 다큐멘터리의 상영회로, 둘은 다큐멘터리를 통해 서로의 과거와 속마음을 재차 맞이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우리, 관객이 <연애의 온도>라는 영화 안의 회사 다큐멘터리라는 내부 층위의 영화를, 위에서 말한 장치의 결과물을 재회할 순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주인공 둘은 극장에 들어가지 않고 밥을 먹으러 나간다. 말하자면 <연애의 온도>는 그리고 영과 동희는 미디어적 재현에 의존하지 않는다.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사진, <동감>에서 무전기, <파이란>에서 비디오, 그리고 <나의 PS 파트너>와 휴대전화를 생각해보라. 다른 멜로 장르에서 재현적 미디어는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사랑과 연애의 시작과 중간, 끝에 늘 이 미디어와 미디어적 재현이  있다. 이들은 사랑을 일으키는 매개이자 만남을 지속하는 중개자이며, 지나간 사랑을 기억하는 매체다.

그런데 이 영화의 경우 오히려 어느 쪽인가하면 미디어적 재현 혹은 재현 미디어에 적대적인 것 마냥 느껴진다. 이를테면 민 팀장의 도촬이라든가, 동희가 마지막에 극장을 차고 나온다거나 하는 장면이라든가. 

두 번째 재회의 순간, 말하자면 재회를 재회하는 순간에 그들은 재현을 통해 과거를 향수하길 포기하고, 서로를 대면하길 택한다. "됐고, 얼굴 보고 얘기하자"고 말하는 셈인데, 영화는 '얘기하자'는 것 보다 '얼굴 보고'라는 데에 더 힘을 싣는 듯한다.

영화는 다시 묻는다. “연애, 다시 잘 할 수 있을까?” 이제 영과 동희의 대답은 미묘하게 바뀌어있다. 다시 잘 될 가능성이 가능성이 로또보다 낮을 지라도 해 보자고, 롤러코스터가 무섭지만 그래도 이왕 놀이동산 왔으니까 한 번 타보자고 했던 것처럼 연애 역시 무섭지만 해봐야지 않겠냐고 말이다. 이제 '가능성'은 고려대상이 아니다. 이는 미디어를 우회했기 때문에, 아니 미디어로 우회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결론이지 않을까?

<연애의 온도>는 사랑의 가능성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연애가 잘 될 가능성을 따지지 말고, 사랑이란 이름의 가능성과 잠재성을 대면하자고. 할 수 있을지 계산하지 말고 일단 해보자고. 연애를 해보자고, 사랑을 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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