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날] 유승민의 영화 읽기 (2)

말하는 돈
뉴스일자: 2014년04월05일 21시18분

▲영화 <돈의 맛> 스틸컷. [출처=https://www.facebook.com/money2012.kr]

머니 토크

"Money Talk". 돈이면 다 된다는 뜻의 영미 이디엄이다. 그런데 설령 돈에게 입이 달려 있다 해도 돈은 굳이 말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돈은 그냥 거기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 어떤 아우라를 뿜어내기 때문이다. 영화는 돈이 수북이 쌓인 비자금 창고로 달리 인하며 시작한다. 화폐는 가치의 현현이자 힘의 현현이다. 그리고 이들 돈뭉치는 통장에 0이 많이 붙은 숫자나 주식 차트보다 피부에 더 와 닿는다.

첫 쇼트의 돈뭉치 뿐만 아니라 영화 여기저기에는 백씨 집안의 재력을 과시하는 매혹적인 소품이 가득하다. 영화 곳곳에 커다란 서가, 복도 곳곳에 전시된 미술품들과 인물들의 명품 양복, 하이파이 오디오와 빈티지 텔레비전, 고급 음식이며 비싼 와인이 매끈하게 배치되어 있다. 김기영이 <하녀>에서 피아노, 스테인드글라스, 도자, 새로 산 TV 등으로 당대 중산층의 조건으로서의 취향taste 즉 아비투스를 드러내듯 임상수도 그렇게 한다. 더욱 세련된 솜씨로 말이다. 서스펜스나 멜로드라마 내러티브의 힘을 차치하고라도 로우키 조명에 잘 짜인 구도 덕택에 아마 필름을 거꾸로 돌린 대도 이 영화의 맛은 여전할 것이다. 임상수의 전작 <하녀>처럼 이 영화에도 페티쉬적인 향이 그득하다.

그리고 여기, 돈에 매혹된 주인공이 있다. 맨 첫 쇼트에 이어 멍하니 이 돈뭉치들을 바라보는 주실장의 반응이 클로즈업된다. 주실장은 일견 숭고해보이기까지 하는 돈 앞에서 말을 잃었다.

주실장은 말할 수 있는가?

말은 권력이다. 우리는 학교에 입학하자마자 교실에서 조용히 하는 법부터 배운다. 교수, 목사, 기자, 대통령, 힘 있는 사람들은 모두 남들을 침묵시키고 자기는 말을 한다. 이 영화에서 예를 들면 장례식장에서 마이크를 잡고 연설하는 백여사의 이미지. 백씨 일가는 ‘뻑’이니 ‘오 마이 갓’이니 하는 영어를 섞어 쓰며(식민 시대를 살았던 노회장은 일본어를 쓴다) 말로 권력을 현현한다.

백씨 일가의 뒤를 봐주는 주실장은 말을 듣는 사람이다. 말을 잘 듣는 사람이다. 명령을 내리면 그는 따른다. 주실장은 백여사에게 강간을 당해도, 나미의 면전에서 윤회장에게 깔보여도, 에바의 시체를 안고서도 별말 못한다. 기껏해야 그가 할 수 있는 건 돈 봉투를 소매에 챙겨 넣거나 에바의 나신을 조용히 가려주고 같은 월급쟁이에게 화를 내는 것뿐이다.

무력감은 여기서 나온다. 바로 강제된 침묵이다. 자신의 욕망에 의해 강제된 침묵 말이다. 인간은 동물과 다르게 이성 즉 로고스를 가진 존재다. 로고스에는 말이라는 뜻도 있다. 즉 말을 박탈당한 인간은 동물이 된다.

그런 주실장에게 말을 걸어주는 사람이 나미다. “말을 해봐요, 말을. 왜 말을 안 하셔?” 뇌물 수수 현장에서 빈정거리는 혼잣말이나 몰래 하던 주영작 실장은 영화 서사가 전개되며 점점 ‘말이 많아진다.’ 꼰티의 에스컬레이션이 왕비서부터 철이로, 백여사로 이어진다.

그런데 말을 해도 모욕감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영작은 자기 어머니와 ‘뻑’해서 출세하려 한다고 도발하는 철이에게 한 방 먹이려 하지만 오히려 당한다. “으아아어어어오어어, 됐싸, 이제 다 끝이야아아!” 무력감의 원인은 이제 자신의 무능함이 되고 주실장이 느끼는 모욕감은 더욱 강해진다. 이 광경을 카메라는 멀리서 지켜보고 있다. ‘뻑덮루저’에 대한 예의라면 예의랄까. 어찌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에바의 죽음으로 자신도 가해자가 되었다는 자책감이 더해진다. 모욕, 모욕, 모욕. 이 말이 영작의 머리에서도 맴돌기 시작한다.

모욕에 맞서

영작은 더 이상의 모욕을 사양하기로 한다. 백씨 일가의 닫힌 공간에서는 숨도 쉬기 힘들기 때문이다. 내부에서는 활로를 마련할 수 없다. 힘의 차이가 너무 크다. 백씨 일가의 단단한 둥지는 쉽게 깨어질 것 같지 않다. 모욕에 맞서, 어떻게?

김기영의 은이(1960)는 함께 죽는 걸 택했다. 계단에 널부러진 은이의 시체는 눈을 부릅뜨고 가족들을 지켜본다. 임상수의 은이(2010)는 복수의 일환으로 자신의 죽음을 전시한다. 계급의 간격은 더욱 벌어졌고 복수의 손길은 이제 그들에게 닿지 않는다.

<돈의 맛>은 감히 거절하는 용기를 내세워 모욕에 맞선다. 이는 먼저 윤회장이 보여준다. 윤회장은 에바와 사랑의 도피를 시도하나 실패하고 자살한다. 이 죽음은 삶에 대한 패배선언이다.

영작도 용기를 보여준다. 그러나 복수를 택하지 않는다. 다만 벗어나려 할 뿐이다. 단순 도피, 후회에 머무는 게 아니라 반성으로 나아간다. 에바의 시체와 함께 필리핀의 아이를 찾아가는 결말에서 그들은 자신의 죄를 마주한다. 혹은 그들의 죄를 대신 용서받고자 한다.

이때 필리핀은 돈의 페티쉬적인 향에 잠식당하지 않은 바깥으로서 불려져 온다. 한편 영작과 은이가 사랑을 나눌 수 있게 영화가 허락해주는 곳은 죄의 장소인 한국과 회개의 장소인 필리핀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비행기 객실 뿐이다.

영화의 엔딩에서, 닫힌 공간에서 맴돌던 카메라 그리고 주영작은 이제야 허리를 펴고 하늘을 본다. 그 하늘은 흐리지만 적어도 무한히 열려있다. 이런 결말은 임상수의 감독 본인의 용기이기도 하다. 그 자신도 자기 영화의 먹물냄새를 잘 알고 있고 이번 영화에서 의식적으로 제거하려한 듯하다. 하지만 뭐랄까 인공적인 방향제의 향같은 인물에다 결말인 것만 같다. 내겐 비로소 입을 연 영작과 그의 용기보다 여전히 거기 말 없이 있는 사물들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돈의 맛이 너무 강해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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