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87년 체제를 넘어] (1) 장지혁 대구참여연대 간사

“방식 고수는 교조주의, 대중의 삶 속에서 사회운동 찾아야”
뉴스일자: 2013년10월11일 18시10분

[편집자 주] 이른바 ‘87년 체제’란 1987년 6월 항쟁의 결과로 입안된,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하는 새로운 헌정체계를 가리키는 용어이다. 이 시기 이후 재야 운동권은 기존 보수야당에 입당해 정치에 입문하거나 시민단체(NGO), 노동조합, 진보정당 건설 운동에 뛰어들었다. 소수이지만 끝까지 재야로 남은 이들도 있었다. 보통 한 세대를 30년 단위로 구분하는데, 그렇다면 이제는 87년 체제를 구성하는 세대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이들 세대는 당시의 운동 자산을 가지고 권력과 의사결정의 중심에 있다. <뉴스민>은 이들 세대를 청산 대상으로 바라보는 식의 세대 대결 구도를 넘어서 2013년 오늘, 대구경북에서 활기를 불어넣고 더 나은 세상을 바라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한다. 더불어 이들의 활동 범위가 전문화(또는 분화)되면서 줄어든 연대의 가치를 모색하기 위한 계기로 삼고자 한다.

실은 ‘87년 체제’를 다시 끄집어내는 것 자체가 고리타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20대라면 87년 6월항쟁과, 노동자대투쟁 당시 태어나기 전이거나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한 나이였다. 30대 끝자락까지 붙잡고 늘어지더라도 87년보다는 88년 서울올림픽을 떠올리기 쉬운 나이였을 테다. ‘또 고리타분한 이야기나 할 것 아닌가’라는 비판도 예상됐다. 그럼에도 이 기획을 붙잡고 고민한 것은 아직도 사회변혁 또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한 줌의 청년들에 대한 애착이었다.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소련의 붕괴로 “자본주의가 승리했다”고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선택했지만, 세상은 여전히 신음하는 사람들 틈 사이로 저항과 연대의 기운이 꿈틀댄다. 통일전선의 시대가 흘러가면서 더 중요해진 연대의 모색을 위해서는 각자의 지향과 차이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필요할 것이다.

처음으로 만난 이는 장지혁 씨다. 대구참여연대 간사인 그는 학생운동의 본격적 몰락 시기(학생운동은 늘 위기라고 말하는 습관이 있어 차라리 몰락이라는 표현이 적절한 듯 여겨진다) 대학을 다녔다. 진보정당에 몸담기도 했었고, 얼마 전에는 영화 <칠레전투> 상영회를 주도했다.

현장에서 처음 그를 만났을 때는 용역 직원으로 오해(?)하기도 했다. 그만큼 그의 큰 덩치는 시민사회단체의 ‘실무’영역에서 빛을 발한다. 기자회견장에서는 현수막과 피켓, 그리고 무거운 앰프를 한 손에 들고 나타나는 그와 청년활동가로서 고충과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2세대 사회운동의 전반적 퇴조, 선배 세대와 경험의 차이 존재”


참여연대는 한국사회 시민운동의 역사이기도 하다. 어떻게 참여연대에서 일하게 됐나
대학 선배인 권현준(미디어핀다 대표)의 추천으로 2012년 1월부터 일하게 됐다. 대학 다닐 때만 해도 참여연대라고 하면 잘 나갔으니까, 선망의 조직이었다.

직책이 간사다. 간사가 하는 일이 뭔가?
간사가 아니라 소사다.(웃음) 총무 부분, 노동의제, 민간투자 영역 모니터링, 시장 감시 모니터링, 정보공개청구 운동, 조례 제정, 공익제보와 관련한 일을 한다. 연대활동을 나갈 수 있는 활동가가 적어서 연대활동도 많이 한다. 연대활동 나가면 실무를 많이 한다. 누구나 빛이 되는 자리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서창호(인권운동연대), 김선우(대구경북진보연대) 선배는 마흔 넘고서도 여전히 실무를 하지 않나.

대학 시절 참여연대가 선망의 조직이었다고 말했다. 참여연대가 잘 나갈 때와 지금은 어떤 차이가 있나.
활동가 역량이 많이 죽었다. 처음에 (참여연대가) 제기했던 방식이 유효하지 않아진 측면이 있다. 해방전후를 1세대라고 보면 80년대 사회운동을 2세대라고 볼 수 있다. 2세대 사회운동의 전반적 퇴조 속에 참여연대도 자유로울 수가 없는 것 같다.

2세대 사회운동이 퇴조한다고 했다. 어떤 측면에서 퇴조한다고 보는가
87년 체제의 레퍼토리가 있다. 집회, 기자회견 등등의 운동 형식들. 지금 하고 있는 방식을 87년 세대들이 만든 것이지 않나. 이슈파이팅하고 기자회견, 행진하는 문화, 언론에 알리고 사람 조직하는 방식까지. 사무실을 두고 상근자는 운동에 몰빵하고, 후원자 그룹으로 있는 조직형태까지. 이제는 열정과 헌신이 몇십 년씩 지속되지 않는다. 100번 싸워서 100번 패배하면 의미 없다. 5번은 이겨줘야 하는데 이기는 싸움이 없다. 2008년 촛불집회도 일반대중의 입장에서는 패배했다. 정권은 계속 이어가고, 그런 경험 속에서 우리도 힘을 못 받는다. 초창기 세대와 비교해 뒤늦게 뛰어든 세대는 사회적 자본이 떨어진다. 사람을 동원하거나 후원받는 것까지 떨어진다.

초창기 세대와 사회적 자본이 차이가 난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초창기 세대(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 학번 세대) 학생운동은 조직이 다 컸다. 우리 세대에 오면 40명이면 엄청 큰 조직이었다. 5~6명이 모여 있었다. 이는 자연스레 적극적 지지층이 적을 수밖에 없다. 아는 사람도 다 겹치기 마련이고. 내가 무슨 일을 하면 나를 지지해줄 사람이 얼마만큼 있느냐의 차이다. 2000년대 이후에는 집단적 경험도 확 줄어든다. 동의하는 사람이 그만큼 줄어든다. 60~70년대 상황과 비슷하다. 지금 같으면 산개해서 생존에 급급하다.

2000년대 후반은 2000년대 초반과 또 다르다. 현재는 학생운동을 과거의 역사로만 생각하는 이들도 많다. 지혁 씨가 경험한 학생운동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달라.
운동도 제도화됐다. 80년 광주 문제는 정말 중요하지만, 저나 제 또래는 80년 광주를 교과서에 배운 세대다. 몸으로 겪은 게 아니라 머리로 배운 세대다. 518도 제도화되지 않았나. 사회를 보는 시각이 다르다. 선배들 중에 컴퓨터 못 쓰는 사람들 많잖아요. 선배들은 그런 부분을 잘 못하니까. 우리도 한 30년 후가 되면 조건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시민사회운동의 선배 세대와 다른 점을 구체적으로 몇 가지 이야기해달라.
시민단체를 직장 개념으로 생각하는 걸 나쁘다고 생각해보지 않았다. 시민단체 활동가가 직업분류표에 나와있기도 하니까. 그렇지만 제도화 될 만큼 성공하지 못했다. 운동에 대한 대의에 동의해서 들어오는데 일상적 문화에 있어 차이를 느낀다. 선배들이 자유주의적이지 못한 측면이다. 머릿속으로 이해하더라도 몸으로는 체화가 안 돼 있다. 군부독재 영향에서 자랐기 때문에 일상적 자유에서 좀 안타깝다.

“방식을 고수하는 것이 교조주의,
5년 후 참여연대도 방식에서 리뉴얼 필요해”


자, 참여연대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참여연대가 큰 단체라서 그런가, 너무 많은 의제를 다루고 있는 것 같다. 가령, 우리복지시민연합이라고 하면 단체의 성격이나 내용이 떠오른다. 참여연대가 잘할 수 있는 게 어떤 것인가.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많다. 종합적 시민운동이 주어진 역할을 있다. 라클라우/무페가 말하는 ‘다양한 적대를 접합시켜 단일한 적대를 만들어 내는 것’처럼 사회적 적대를 유지하는 역할이다. (참여연대가) 모호하기 보다는 잘 못해서 비판받는 것이다. 국가권력과 경제권력을 빼놓고 하는 것이 사회운동이기 때문에 경제권력과 국가권력이 독한 마음 먹으면 각개격파 당한다. 라클라우/무페는 정당적 구조로 다양한 적대가 해결된다고 봤는데 큰 단체들이 껴안아야 하는 게 있다.

포스트 민주주의적인 방식을 보면 개별적으로 열심히 활동하는 활동가들은 많은데 운동이 확장 안 되는 이유는 뭘까, 전선이 모호하다. 열심히 안 해서 그런 게 아니다. 또, 새로 들어오는 신임활동가가 없다는 것을 활동가 주체의 개인적 문제로 돌리는 것은 나이브한 인식이다. 열심히 안 하는 사람 아무도 없잖아요. 창의적이지 못하다는 비판도 그렇다. 활동가를 좀 쉬게 해줘야 하는데 그게 안 된다. 유럽 사회운동 사례를 보면 우리처럼 전업활동가가 많은 구조라서 창의적인 게 아니다. 잘 놀아야 좋은 아이템도 나오는 거 아닌가.

참여연대 이야기를 하다가 활동의 창의성 문제로 확장됐다. 새로운 방식에 대해서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
80년대 학번 선배들 눈에는 요즘의 집회가 눈에 안 찰 수 있다. 동원도 잘 안 되고...그러면서 집회가 재미없다고 말하며 준비 단위를 비판하는데, 그러면 집회나 행사를 안 맡겨야 한다. 하지만 준비하는 소수 사람은 이걸 쳐내야 하는 일이다. 현재의 집회 문화를 비판하는데 준비하는 활동가들은 다른 음악 들을 시간도 없다. 재미없다고 평가를 할 수는 있지만, 그렇게 몰고 갈 필요가 있을까 고민스럽다. 현재의 방식을 만들어 낸 이들이 50대, 80년대 학번 선배들이다. 현재 40대 활동가를 보면 결정권한은 없고 일은 쳐내야 한다. 내가 40대 돼서도 저러고 있으면 어떻게 하느냐는 위기감을 느낀다.

저는 제일 기분 나빴던 것 중 하나가 <레디앙>에서 패션좌파라면서 기존 운동권들 옷이 왜 이리 꾸지리하냐는 이야기였다. 그 활동비 가지고 옷을 잘 사 입을 수 있는 구조가 아닌데. 집회에 옷을 보고 온다 안 온다 말하는 게 웃기다. 집회장에 미리 와서 무대 쌓아야 하는데 옷을 깔끔하게 입을 수가 있겠나.

노동조건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참여연대는 노동조건이 어떤가. 그래도 메이저 시민단체라 다른 단체보다는 낫지 않겠나.
최저임금 마지노선이다. 4대보험은 들어간다. 지속적인 재생산이 되느냐가 제일 걱정된다. 돈을 보고 들어간 사람들이 아니잖아요. 최소 기준만 넘어도 되는데...가끔씩 특정 시기가 되면 주말이 없다. 시민단체기 때문에 불만을 당당히 이야기 하라고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 그러면서 전망을 못 세우는 거죠. 20대들 이야기 하면서 미래를 상상하지 못한다고 말하는데, 젊은 활동가들도 이 불안감에서 자유로운 단체가 없다.

참여연대도 그렇다. 근로조건을 선택하는 걸로 활동가를 줄였다. 최저임금 문제를 포함해 공무원들 만나서 할 말이 별로 없어진다. 문제 제기하는 시민단체가 그걸 못 지키는 경우가 많으니까. 대구참여연대가 대구에서 제일 크다고 하는데 서울로 따지면 중규모 단체다. 대구 환경이 열악하다. 다른 단체 (임금이) 올라가야 한다. 선배들의 사회자본으로 형성된 구조라 선배들이 은퇴한 뒤에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우리세대 나를 지지해주고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선배들 100명이었는데 우리는 많아야 20명 수준인데.

대구지역 시민사회운동의 환경이 열악하다고 했다. 대구지역 사회운동 특수성이 어떤 것으로 생각하는가.
새누리당 일당 독재 강한 것이야 모두가 공감하는 것이다. 대구는 지정학적으로 지배전략이 잘 구현된 것 같다. 대구 시내에 대학이 잘 없다. 도심과 떨어져 있다. 공단도 그렇다. 서울 구로공단은 사실상 도심에 있지만, 달성공단은 그렇지 않다. 일상적으로 만날 수 있는 부분이 적다. 성서공단에서 캠페인 하면 거기서 일하지 않는 사람들은 잘 못 봐요. 중구에서 집회나 기자회견을 많이 하는데 정작 중구에 사는 사람이 없고, 지나가는 사람밖에 없다.

그래서 대학뿐만 아니라 사회운동 활동가들도 서울로 가는 경향이 있다. 대학도 빼놓을 수 없고. 다들 서울로 가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그럼에도 본인은 대구에 남아 있다.
서울은 고립감이 덜하다. 학생운동이 몰락했다고 해도 그나마 덜하다. 끈기가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내가 지금 여기서 운동을 계속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이들이 밀려서 서울로 가는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초중고, 대학까지 대구에서 나왔다. 활동가가 지역을 자주 옮겨 다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근거지를 떠나려면 확실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인간관계 등 여러 조건이 유리한데도 잘 못하면 다른 지역 간다고 잘 된다고 생각 안 한다. 보험을 판다고 치면, 여기 아는 사람이 더 많으므로 더 나은 것처럼. 서울이 주는 환상이 있기는 하다. 젊은 사람들이 많고, 고립감이 상대적으로 대구보다는 적기 때문에. 아무래도 정치, 경제, 운동도 서울중심이다.

어려운 게 사실이다. 미래에 대한 전망이 안 그려지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는데, 5년 후 지혁 씨는 뭐 하고 있을 것 같나.
나이 먹고 데모하고 있겠죠. 저는 다양한 방식을 시도해보고 싶은 욕구가 있다. 회의할 때도 늘 진행하던 방식 말고 페차쿠차(한 슬라이드당 시간을 정해놓고 발표하는 프리젠테이션) 방식을 사회운동에 도입하고 싶다. 사회운동에 대한 기본적 대의와 원칙을 지키면서도 다양한 방식을 시도하는 것. 교조주의는 원칙을 고수하는 게 아니라 방식을 고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캠페인 방식도 다르게 고민해보고 싶다.

5년 후 참여연대는 어떻게 자리 잡고 있을까.
5년 후면 20주년인데, 리뉴얼해야 하지 않을까. 기존의 방식이 안 먹히면 새로운 방식을 개발해야 한다. 단체 회원모임 뻔하잖아요. 새로운 변화를 주고 싶다. 스탠딩 파티를 하자고 했다가 욕먹었다. 모여서 맨날 막걸리 먹으면 새로운 후원회원이 안 생긴다. 몇십 명씩 모인 자리에서 한마디씩 들으면 시간 지나가 버린다. 이전에 퀴어축제 할 때 아티스트적 실천이긴 하지만 사회운동의 실천으로 하는 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미학적 실천이 그대로 사회적 실천은 아니지만 뽑아낼 수 있는 아이디어가 많은 것 같다. 전두환 환수하라는 문구보다는 이미지 주는 효과가 더 크지 않나.

▲왼쪽에서 첫 번째가 장지혁 씨다.

“지역적 활동 하면서도 거시적 문제 고민해야”

참여연대 이야기만 한참 한 것 같다. 개인적인 고민을 좀 들어보자. 요즘 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처럼 사회적 경제를 시민사회운동에서 관심을 많이 가진다. 풀뿌리 운동도 마찬가지고.
협동조합 편을 많이 들고 싶다. 사회적기업은 어폐가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지만 결국 이윤을 내기 위한 것이다. 협동조합은 주주원리랑 다르니까. 협동조합이 성공하려면 생활정치력이 있어야 한다. 협동조합이 조금 더 나은 방식이 아닌가. 협동조합 원류를 따지면 길드사회주의에서 나온다. 그람시가 말한 진지전으로서 협동조합. 중앙집중화된 영향력이 약한 곳에서 협동조합이 많이 만들어진다. 이탈리아도 정권을 잡은 적이 없지만, 협동조합 역사가 깊다.

협동조합 이야기를 하면서 생활정치력을 말했다. 풀뿌리운동, 협동조합을 강조하다 보면 일본과 같은 전철을 밟는 게 아닐까 고민스럽다. 지역으로 가면 협동조합도 많고, 공산당 지역 의원도 있지만, 국가적 의제에 대해서는 전혀 대응을 못 한다.
공감한다. 지역으로 돌아가자던 일본은 중앙정치세력으로 사회운동세력의 의미가 없다. 중앙 차원의 사회적 적대 유지가 안 되면 흩어질 수밖에 없다. 소비자협동조합이나 지역적 수준에서 가져가면서도 거시적 문제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모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그 문제의식이 없으면 우리도 일본처럼 갈 수밖에 없다. 시민사회운동은 미국을 참고할 게 많다. 유럽은 당과 노조가 있지만, 사회조직이 잘 없다. 미국은 양당제다 보니까 사회운동조직이 많다. 한국이 미국의 길과 일본의 길 사이에 있다. 낮은 노조조직률과 양당제가 고착화 될 거다. 한국사회에서 유럽의 길은 많이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

국가 차원에 대한 이해, 거시적 담론에 대한 체계나 학습이 필요하지 않을까.
얼마 전 모 후배가 채만수 선생의 노동자교양경제학을 빌려 갔다. 업데이트 해야 하지 않을까. 90년대 현실의 위기를 이론으로 돌파했었다. 그게 사라진 게 아닐까. 현실에 기반하지 못하고 이론적인 것만 하다 보니까 다른 이론 찾고, 또 다른 이론 찾아가고...그러면서 거시적 담론을 형성하지 못했다. 의견 전체에 동의하지 않지만 캘리니코스는 포스트 모더니즘을 70년대 히피들이 만들어낸 사상이라고 말했다. 그걸 가지고는 집단적 저항이 불가능하다. 포스트 모던에서 나오는 실천활동, 저 말도 맞고 내 말도 맞다는 식으로 넘어가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은 거리가 좀 있어 보인다. 요즘 민주노총은 여기저기서 욕을 많이 먹고 있다.
시민운동하지만 노동조합을 옹호한다. 조합원의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할 수밖에 없는 게 노동조합이니까. 민주노총이 정규직 이해관계를 넘어서 비정규직 운동만 열심히 하면 그거 가지고 욕할 거잖아요. 4년제 대학생들이 2년제 대학생 투쟁 안 하듯이. 굳이 비판하자면 너무 딱딱하다는 느낌이 있다. 비정규직과 이주노동자에 대한 지원은 민주노총 욕하지만, 민주노총밖에 없다. 아무나 안 해준다. 비판을 위한 비판은 지양해야 한다. 메이데이에 평양에서 축구 대회를 한 건 이해가 안 갔다. 오히려 개성공단 노조 조직을 하는 게 맞지 않았을까. 노동운동에서 통일운동 하는 방식이 노조끼리 교류가 아니라 정치적 이벤트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진보정당들이 무너지고 있다. 한때 진보정당에도 몸담았던 것으로 안다.
진보정당 운동이라는 게 민주노조운동과 시민사회운동의 정치적 대표다. 진보정당이 4개나 있다. 사실 웃긴 상황이다. 상층구조만 보면 빨갱이들이 많아서 그런 것인가 착각하기 쉽다. 정치에 대한 개념이 불분명하다고 생각한다. 열심히 하는데 정당으로서의 존재감은 안 느껴진다. 단체 같은 느낌이다. 당에서 활동하는 사람은 정치인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런 훈련이 없다. 당인데 동아리 같기도 하고. 정치적 비전도 없고. 정치라는 게 중심이 아니라면 단체에서 열심히 하는 게 낫지 않느냐. 자조, 패배, 경멸, 경계선 치기만 남은 게 아닐까. 활동가를 소모하면서 생존하는 방식 아닌가.

조례 제정 운동을 한다고 하면 이에 대한 정보와 자료를 다 가지고 있어야 한다. 명확한 계획과 비전이 있어야 한다. 정치과정에 대한 기본적인 걸 (진보정당이) 제공해줘야 하는데 그게 없다. 운동은 아마추어적 문제를 제기해도 되지만,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하는 정당은 아니다. 대안을 제시하고 좀 더 체계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단순한 선거정치조직 이상의 의미가 있느냐. 우리그룹에서 후보 낸다는 의미밖에 없는 거죠. 이념도 애매하고, 정당 사이에 차이도 없다.


“사회운동은 대중의 삶 속에서 나온다”

이번 인터뷰 기획의도가 청년활동가의 고충, 그리고 차이를 확인하고 연대를 모색하는 데 있다. 다들 힘드니까. 상호부조라도 하면서 배워나가야 하지 않을까. 주변에 의견을 자주 교환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 있는가.
조직체는 아니고 편한 말 할 수 있는 사람끼리 모이는 것 같아요. 충격받은 게 나는 NL/PD 거의 받아들이지 않는데 한 후배가 묻더라. 나를 설명할 수 있는 언어가 없었던 거죠. 지금 만나는 사람도 다 그렇다. 단체 활동하면서 알게 된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논쟁도 많이 한다. 이런 걸 넘어서는 모임이 있으면 좋겠다.

활동가 노조가 좋지 않을까. 페차쿠차 프로그램도 같이 하면서. 2시간이면 30명의 활동가가 모여서 함께 할 수 있으니까. ‘나는 이런 일 한다’며 자기 현장 폰카로 찍어서 만나도 좋지 않을까. 소규모 클럽에서 맥주 한 잔 마시면서 모임 하면 좋겠다. 사실 우리가 그렇다고 선진적인 대중과 고립된 사람들도 아니지 않나. 클럽을 갈 수 있고.

반려동물도 대중의 삶을 설명할 때 중요하다. 1인 가구가 많다는 거죠. 1인 가구가 아니라도 가족끼리 공유하는 시간이 적다는 걸 보여주죠. 수의병원은 의료비혜택도 안 된다. 저소득층 1인 가구인데. 반려동물과 관련해 신문지면에도 많이 나오는데 신문을 챙겨 보는 선배들이 그런 문제의식을 못 느낀다. 대중의 삶과 유리될 수 없는데... 특히 우리 세대가 나아가야 할 사회운동이 아닐까 한다.

대중의 현상을 보는 것도 중요하다. 음악도 사회의 한 부분인데 이런 걸 왜 못 느낄까 생각한다. ‘1인 시위가’도 만들고. 어차피 얼굴 팔리는 데 음악 좀 튼다고 문제가 되겠나. 거대한 대중과 함께했던 준비가 없으니까 대중이 빠져 나가는 거다. 운동의 쇠퇴기에 조직의 힘을 발휘해야 한다. 우리가 준비를 덜 했던 게 아닐까. 조직화되어있거나 회원 가입한 사람들 확 줄어든. 우리가 왜 조직하지 못했을까. 우리부터 모여야 한다. 퍼지면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

이제 진짜 마지막이다. 추천하고 싶은 활동가가 있는가
KYC의 김남규. 꾸준함의 대명사다. 물어봤는데 처음부터 시민사회운동한 게 아니라서 독특한 정체성을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형석은 살을 빼야 할 것 같고. 안타깝더라. 김남규는 원폭피해자 운동을 이끌고 있다. 한 번도 주류적 의제로 등장하지 않은 내용이었다. 운동의 의제 중에서는 마이너하고 마이너한 부분을 이끄는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하다.

긴 시간 이야기를 해줘서 고맙다. 인터뷰 연재를 다 끝내면 꼭 페차쿠차 프로그램을 한 번 해봤으면 좋겠다. 다음 활동가는 대구환경운동연합의 이보나 활동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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