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퀴어미술전 기획자 준이씨가 고민하는 퀴어

“남성성과 여성성에 한정한 섹슈얼리티에 의문 던지는 것이 퀴어”
뉴스일자: 2013년06월21일 11시01분

지난 14일부터 대구 중구 방천시장에 위치한  토마갤러리에서 퀴어미술전 ‘여기 퀴어 있다’가 시작됐다. 퀴어영화제는 꽤 많이 알려졌지만, 퀴어미술전은 생소하다. 그것도 보수의 심장 대구에서 열렸다. 이런 미술전을 대구에서 기획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19일 오후 3시, 퀴어미술전 ‘여기 퀴어 있다’의 기획자이자 본인의 작품도 미술전에 내놓은 작가 준이씨를 만났다.

14일 미술전 오픈식에서 작품에 대한 관람과 설명을 들었던 터라, 인터뷰는 작품에 대한 설명보다 퀴어미술전이 어떻게 기획되었고, 준비하는데 장애요소는 없었는지, 작가인 준이씨 본인의 퀴어미술에 대한 해석과 관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집중되었다. 가장 먼저 흔히 동성애를 떠올리기 쉬운 '퀴어'라는 주제 때문에 미술전이 열리는 것을 반대하는 움직임에 부딪힌 적은 없는지 물었다. 동성애 혐오 행위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한국, 그것도 보수의 심장이라는 대구의 도심에서 열리는 퀴어미술전이다 보니 가질 수 밖에 없는 서글픈 질문이었다.

준이씨와 퀴어문화축제를 준비하는 조직위원회도 내심 그런 움직임이 있지 않을까 우려가 됐다고 한다. 준이씨는 “사설 갤러리라서 대 놓고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애초에 공공장소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갤러리에 들어와서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 한 번 이상한 일은 있었다. 아침에 오픈하려고 하는데 양복 입은 사람이 서서 저한테 종교가 있느냐고 물어보더라. 한때 있었다고 했더니, 성경은 읽어봤느냐고 묻고는 쓱 사라지더라. 장담할 수는 없지만, 문 앞에 서 있었던 걸 보면 느낌이 좀 그랬다. 아직 긴장의 끈은 놓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10년 넘게 열리는 LGBT영화제는 있는데, 미술은 왜 그런게 없을까…”
“한번으로 끝나는 미술전이 안되게 이어나갈 것”


대쿠 퀴어문화축제는 올해로 5회째를 맞는다. 그동안 영화제, 퍼레이드 등 축제는 해를 거듭할수록 다채로운 행사로 꾸며지만, 퀴어미술전은 올해 처음 시도하는 행사다.

준이씨는 “LGBT(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영화제는 10년이 넘게 열리고 자리를 잡는데 미술은 왜 그런 게 없을까 궁금했다. 내가 배우고 작업하는 게 미술이고, 평소 섹슈얼리티나 젠더에 호기심을 가지고 있던 차에 이 작업을 미술로 표현하고 싶었다. 성소수자라고 말하면 딱딱하고 정치적 의미가 짙은 단어 같은데, 퀴어라는 코드를 문화적으로 접근하면 인권 감수성을 부드럽게 흡수하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미술전을 기획하게 된 취지를 설명했다.

그렇게 준이씨는 퀴어 커뮤니티 등을 통해 함께 작업할 작가들을 찾아 나섰다. 이번에 미술전에 참여한 김미란, 김미소, 김태극, 박은희, 서세진, 레즈비언 아티비스트 그룹 ITDA, 레즈비언 라디오방송 제작팀 레주파 등 예술가들은 이전부터 준이씨가 친분이 있는 이들도 있지만 이번 미술전을 통해서 처음 인연을 맺게된 이들도 있다. 김미소 작가는 직접 전시장에 찾아가 제안했고, 서세진 작가는 퀴어인문잡지 ‘삐라’에서 연 퀴어캠프에 재능 후원한 것을 보고 섭외하는 등 열심히 발품을 팔았다.

생소한 작업과 미술전을 연 것만으로도 성공적이라고 여기는 기자에게 준이씨는 한번에 그치는 미술전이 되지 않게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내년에도 또 참여하겠다는 작가들도 있어 2회 전시회도 이어나갈 계획이다. 한번에 그치면 순간의 기록으로만 남을 뿐이지 않나. 회차를 거듭하며 우리나라에서 퀴어가 미술로 어떻게 해석되는지 한번 확인 해보고 싶다. 또, 유명한 작가들과도 작업하고 싶다(웃음)”며 “퀴어가 해석하는 페미니즘이나 다양한 작업자들과 퀴어아트 작업을 해 보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관람객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생소한 미술전에 하루 평균 10~20명씩 찾았다면 다양한 반응이 있었을 터다. “퀴어가 뭐에요, FTM이 뭐에요”라는 질문부터 “외국에서 무지개 깃발 걸어 놓은 걸 봤다”는 이들까지 관람객들은 생각 이상으로 다양한 반응을 보여줬다. 이중 특히 준이씨가 기억에 남는 관람객은 커밍아웃을 한 가족을 둔 관람객이었다. 준이씨는 “그분이 오셔서 고민을 안고 질문을 많이 하고 가셨다. 어렵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미술로 퀴어를 알아가고, 접근하는 게 퀴어미술전의 취지인 만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퀴어미술전을 찾은 관람객들

“퀴어는 범주 짓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대하는 태도”
“남성성과 여성성에 한정한 섹슈얼리티에 의문 제기는 게 퀴어 아닐까”


기획자이자  직접 미술전에 작품도 내놓은 작가인 준이씨에게 퀴어란 어떤 의미일까. 준이씨는 “(미술전을) 성소수자 인권 전시회가 아닌 퀴어미술전으로 봐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차이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준이씨는 “퀴어는 범주 짓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대하는 태도”라고 강조했다.

준이씨는 “사람들은 퀴어라고 하면 동성애 그런 거 아니냐고 말한다. 성소수자를 긍정적으로 말하는 단어인 것도 같다. 저는 무엇이 '퀴어'다라는 게 아니라 퀴어는 어떤 태도인가라고 스스로 묻는다. 레즈비언 중에서도 보수적인 레즈비언이 있다. 레즈비언이라는 개념 자체는 퀴어지만, 다른 퀴어를 부정하는 레즈비언은 퀴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성애자나 비트랜스젠더 중에서도 ‘나는 남성이지만 내가 여성적인 게 좋아’라거나 ‘내 주위에 그런 친구들이 있어도 아무렇지 않아’라고 여기는 퀴어적인 태도를 가진 이들이 퀴어”라고 설명했다.

퀴어에 대한 진지하면서도 개방적인 태도에 작가이기보다 뛰어난 성소수자인권활동가가 아닐까하고 생각하기  무섭게 준이씨는 “나는 성소수자인권활동가라기 보다는 미술작업을 하면서 퀴어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정의했다.

준이씨는 “이성애중심적인 구조를 깨고 나니, 동성애, 양성애 중심으로 재구조화 하려고 하는 게 있더라. 인권활동가 내에서도 퀴어를 이야기할 때 동성애자를 전제로 말한다. 그러면 트랜스젠더는 어떨까요? 퀴어 전시는 동성애 전시가 아니잖아요. 남성성과 여성성에 한정한 섹슈얼리티에 의문을 제기하고 질문을 던지는 것도 퀴어가 아닐까요”라며 퀴어가 동성애 중심으로만 언급되는 것에 문제의식을 드러내기도 했다.

▲퀴어미술전 기획자 준이씨의 작품

그 때문에 준이씨는 자신의 작품에서 동성애 관련 작업을 하지 않았다. 그는 남성성과 여성성을 주제로 생각하면서 만든 드로잉, 남성 성기를 비유한 물건을 전시한 작품을 통해 “트랜스젠더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안 나오는데 사람의 성기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려고 했다”고 작품의 의미를 이야기했다.

퀴어가 궁금하다면 퀴어미술전을 찾는 것에서 시작하자. 방천시장 입구에 ‘여기 퀴어 있다’는 대형 현수막과 퀴어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 줄 작품이 당신을 이달 30일까지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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