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현의 그 노래를 들어라] (26)세상은 달라질 것이다

밀양과 청도 송전탑 반대 투쟁을 생각하며
뉴스일자: 2013년05월24일 14시50분

세상은 달라질 것이다
- 밀양과 청도 송전탑 반대 투쟁을 생각하며

오늘 밤이 지나면
세상은 달라질 것이다
부끄러웠다는 고백도 부질없어 질 것이다
미안하다는 말끝에 걸린 사과도
군홧발에 짓이겨져 보이지 않을 것이다
떨어지지 않은 발길을 돌려
집으로 돌아가던 길도 깜깜하게 사라지고 말 것이다
먹 고무신과 부지깽이와 지게작대기가
사이좋게 풀물 들어가던 가난 속에서 살아 온 
저 마을을 외면한다면
산 그림자 내려앉은 길을 따라 논으로 밭으로 걸어가던,
흙물 든 늙은 삽자루와 이빨 빠진 호미 날의
저 마을을 외면한다면
쭈그려 앉아 밭을 매고 쭈그려 앉아 밥을 먹으며
막걸리 한 잔 담배 한 모금 맛나게 피워 물던
쭈글쭈글한 손마디와 굳은 살 베인
저 마을을 외면한다면
마지막 남은 존엄마저 벗어 버린
처절하게 늙은 저 마을을 외면한다면
밧줄에 걸린 허공을 응시하며
이빨을 꽉 깨문 서늘한 눈빛의 저 마을 외면한다면
허리를 숙이고 고개를 숙여 하늘을 바라보며
땅에 기대 살아온 평생의 저 마을을 외면한다면
세상은 달라질 것이다
오늘밤이 지나면


*일촉즉발, 지금 밀양의 상황이다. 누대로부터 이어 온 농사일과 어렵게 지켜 온 가난한 집 한 칸,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기억과 추억과 슬픔을 간직한 그 모든 것들을 하루 아침에 빼앗길 위기에 처한 할매, 할배들이 국가권력에 맞서 싸우고 있다. 한창 논일, 밭일에 신경을 써야 할 시기지만 지금 밀양의 할매, 할배들은 그럴 여력이 없다. 한전과 정부의 일방적인 송전탑 건설에 맞서 싸워 온지도 어언 몇 년이 지났건만 여전히 저들은 할매, 할배들의 송전탑 반대의 뜻을 외면하고 있다. 그리고 청도의 할매 할배들도 마찬가지로 한전과 정부에 맞서 싸우고 있다. 도시의 전력난을 이유로 왜 밀양과 청도의 할매, 할배들이 집을 빼앗기고 논밭을 빼앗기고 급기야 살던 곳에서 쫓겨나야 하는가? 


신경현(시인, 노동자) 그는 '해방글터' 동인으로 시집 '그 노래를 들어라(2008)', '따뜻한 밥(2010)'을 출간했다. 그는 대구와 울산 등지에서 용접일을 해왔다. 2011년까지 성서공단노조에서 선전부장으로 일하다가 현재는 지리산 실상사 산자락으로 들어갔다. 도시를 떠나 산골에서 자연과 사람의 이야기를 노래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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