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대구문화재단 사태의 본질은 무엇인가?

정치놀음을 끝내고, 예술인과 시민에게 대구문화재단을 돌려주시라
뉴스일자: 2013년05월22일 16시01분

지난 3월 20일, 수암 김정길이 대구문화재단 대표직을 버리고, TBC 사장으로 건너가면서 시작된 대구문화재단을 둘러싼 일련의 사건들을 쫓아가려면 상당히 숨이 가쁘다.

임기 대부분을 남기고 사라진 대표. 그러나 대구시는 대표를 뽑지 않고, 대구시의회는 재단 관련 조례 개정을 예고한다. 조례개정에 반발한 이사와 감사 10명(대구문화재단의 이·감사 총원은 13명이다)이 두 차례 성명을 내면서 조례가 통과되면 총사퇴를 외치니, 시의회는 얼른 사퇴하시라며 보란 듯이 조례를 통과시킨다. 조례개정을 주도한 문화복지위원장은 조례안이 잘못됐다면 시의원직을 사퇴하겠다며 강수를 둔다. 이사들은 시의회의 명백한 월권이라 외치고, 시의회는 이사를 포함하여 예술인들의 패거리 문화를 타파해야 한다고 외친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른 것일까?

▲ 대구문화재단 일부 이사들이 대구시의회의 대구문화재단에 대한 조례 개정에 반발해 성명서를 내고 사퇴했다.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제각각 자신들이 파악하고 있는 진위와 잘잘못에 대해 말한다. 도대체 대구문화재단 사태는 어떻게 된 것이며, 누가 잘못한 것인지 묻는다. 출범 5년째지만, ‘대구문화재단’이라는 이름은 시민들에게 아직 생소하며, 이번 사건은 더 복잡해 보이는 모양이다.
 
대구문화재단 사태의 본질은 '정치놀음'

본질은 간단하다. 대표적인 극우논객 김정길씨가 문화재단의 대표가 된 것도 정치놀음이요, 그 틈을 타고 대구시의회가 대구문화재단 위에 군림하기 위해 졸속 조례 개정을 시도하는 것도 정치놀음이다. 문화재단 문제에 문화예술은 오간 데 없고, 정치놀음만 가득하다.

재단이라 함은 ‘출연자 혹은 기부자가 제공하는 영속적 자산을 근거로, 비정부, 비영리, 독립성, 목적의 개방성을 유지하면서, 사회 전반의 공공 이익을 위해 기부금 조성이나 프로그램 운영 등의 방법을 통해 전문화∙조직화∙제도화된 자선을 실행하는 기관’이며 ‘독립적인 기금, 독립적인 이사회와 의사결정기구, 공공복리를 향상하는 기관의 역할과 사업, 비영리/비정부의 형태’가 필수요건으로 꼽힌다.

지난 시기 대구문화재단은 지나치게 대구시의 간섭을 받아왔다. 일견 하청 기관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조례개정을 통해 대표이사의 권한을 제한하고 중요사항을 시의회 상임위에 사전 제출토록 한다면 민간재단을 설립한 이유가 없다.

보수적 가치와 진보적 가치의 대립도 아닌 번지수를 잘못 찾은 엉뚱한 정치놀음, ‘문화예술중심도시’와 ‘공연문화중심도시’를 표방하는 대구시 문화예술판의 한복판에서 어떻게 이런 수준 미달의 정치놀음이 가능한 것일까?

시의회의 거듭된 무리수, 대구시의 보여주기식 행정 등 대구문화예술계 총체적 난국

최근 일 년 동안 시의회와 대구시는 사업이 철회된 대구뮤지컬전용극장의 시립극장으로의 재추진용역, 대구오페라재단 통폐합과 법인화, 범어아트스트리트 제안, 대구예술발전소 운영 등 다양한 사안을 두고 불협화음을 일으키거나, 다분히 문제 있는 판단을 해왔다.

▲대구뮤지컬전용극장 조감도

앞서 언급한 사안은 예술계와 시민의 여론을 충분히 조율하지 않거나 전문적 식견이 부족한 상태에서 무리하게 추진하다 실패하거나 암초에 부딪힌 것들이다. 실제로 대구문화예술현장실무자정책네트워크가 지난 2년간 대구시의회 문화복지위원회의 회의를 참관한 결과 안건 대부분이 시설설치와 토목공사 위주로 흘러갔다. 대구문화재단에 대한 부분도 출연금과 후원금확보를 둘러싸고 대구문화재단 초대 대표와 신경전을 거듭해왔고, 여타 문화예술 관련 안건 대부분에 대해 시의원의 전문성이 현저히 부족해 보인다는 결론을 내렸다.

시의회의 거듭된 무리수에도, 시의회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부재하다. 대구의 주류예술계가 뒷전에서는 볼멘소리하지만 공식적으로는 침묵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대구문화재단이 문예진흥기금 명목으로 1년에 한 번 나눠주는 지원금은 사실상 푼돈에 불과하지만, 시의회 의결로 집행되는 금액은 주류예술계에 집중된 알짜이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의견을 개진했다가 예산 삭감이나 반려와 같은 불이익을 당할까 두렵다는 점, 당장 불이익은 아니더라도 장기적으로 봤을 때 정치인을 적으로 돌리는 것이 단체 운영이나 개인의 보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영리한 판단을 하는 것이다.

비주류예술단체와 예술인들이 목소리를 내지 않는 이유는 지금까지 대구문화재단의 업무가 자신의 상황에 맞춰져 있지 않아, 일상예술활동과 상당한 거리감이 있기 때문이다. 또, 시행정과 재단행정에 모두 불만이 팽배해있기 때문에 양비론을 펴면서 제자리에 머물고 있다.

그렇다면 언론사들이 상반된 관점으로 이 사안을 바라보거나 갈팡질팡하며 진의를 파악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톺아보면 지역의 보수지로 손꼽히는 <매일신문>이 비교적 적절한 기사를 쓰고 있고(매일신문, 2013. 5. 3 [이슈 논쟁] 대구문화재단 이사-시의회 갈등), 다른 언론사들은 갈등 양상만 다루거나 지엽적인 부분을 들며 재단을 비판하고 있다. 더구나 대표적인 진보언론이라고 할 수 있는 <오마이뉴스>는 주류언론을 비판하는 관점에 국한되어 기사를 쓰다 보니 오히려 보수적인 태도를 개진하고 있는데(오마이뉴스, 2013. 5. 14<매일신문> 대구시의회 연이어 비난...왜?), 이러한 현상은 그만큼 대구의 문화예술정책이 공허해서 언론사조차 맥을 제대로 짚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구시는 공연문화중심도시, 문화예술중심도시를 표방하고 있지만, 지나치게 문화산업론에 근거하여 좌충우돌 문화행정을 펼치고 있다. 이를 견제하고 비판하고, 대안적인 문화예술정책을 연구하는 단체는 부재하다. 일부 연구단체가 있지만, 대구시로부터 용역을 받아 공무원들이 생산한 정책의 설득력을 뒷받침하는 역할에 국한돼 있을 뿐이다.

시의회 문화복지위원회의 비전문적이고 저돌적인 양상과 대구시의 보여주기식 문화행정, 행정에 길들여진 주류예술계, 소외당한 채 한숨만 쉬는 비주류예술인, 대구시의 하청기관으로 전락한 대구문화재단, 문화예술정책 견제단체의 부재 등 대구문화예술계의 총체적 난국이 이번 대구문화재단 사태에서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독립적 운영 가능하도록 조례 개정과 예술계, 시민사회 의견 수렴 해야

▲대구문화재단 현판식에 참석한 김범일 대구시장 [출처: 김범일 대구시장 블로그]

대구문화예술계 전체를 바꾸려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 같고, 그렇다면 막막하기 짝이 없는 대구문화재단 사태는 어떻게 해결국면에 접어들 수 있을까? 의견은 다양하겠지만, 필자는 시의회가 대구문화재단의 조례를 원래대로 복구시켜 독립적인 의사결정기구로서의 위치를 되찾도록 양보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이후 대구문화재단 역시 절치부심하여 예술계와 시민들에게 지지받을 수 있도록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 현재, 대구문화재단의 역할은 방대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정된 업무만 할 수 있어 대구시의 하청기관이나 다름없는 상태다. 전체예산의 규모가 작기도 하지만 융통성 있게 쓸 수 있는 실질예산은 더욱 부족하다. 도저히 창의적인 일을 도모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민간전문가 혹은 예술가와 소통을 통해 상상력을 충전하기보다는 공무원 눈치 보기에 급급한 태도는 반드시 바뀌어야 존재 이유를 증명할 수 있다. 일부 언론에서 지적한 특정 언론사와 기획사 위주의 인사 구설수 역시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
 
결국, 예술계와 시민사회의 의견을 수렴하는 효율적인 과정을 통해 재단설립 후 5년간 흐지부지 흘려보낸 중요과제인 기금확보방법과 명확한 목적성 사업 설정, 민간전문가 확보와 소통 등의 주요한 문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의견수렴 결과에 맞게 관련 조례를 개정해야 한다. 현재 대구시장이 이사장, 대구시 문화체육관광국장이 상임이사인 조항 역시 독립성을 침해하므로 반드시 수정되어야 한다. 또, 재단과 시의 역할을 정확하게 구분하여 서로의 영역을 침해하거나 군림하지 않고, 효율적인 파트너가 되도록 해야 한다.
 
공무원의 어설픈 기획과 기획업자들의 속 보이는 연출, 주류예술가들의 입지확보 속에서 대구문화예술계의 악순환을 끊어내기 위해서 대구문화재단의 역할은 참으로 중요하다. 준공무원으로서의 자리매김이 아니라 민간의 톡톡 튀는 상상력과 시의회의 무거운 원칙 사이를 오가며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한다. 

필자는 일련의 사건들이 오히려 약이 되길 바란다. 대구문화재단이 시대의 흐름에 맞춰 그동안 소외되었던 독립, 인디, 민중, 자립, 생활, 동네, 공동체, 비주류예술가들에 대한 지원과 관객운동, 매개자 발굴, 문화복지, 지역밀착형 문화유통, 생활밀착형 문화정책개발 등을 지원하여 문화예술에서 비롯된 활기로 대구의 새로운 비전으로 만들어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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