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날] <수신확인 차별이 내게로 왔다>

바로 당신, 에게 쓴 편지
뉴스일자: 2013년05월11일 02시55분

어릴 적 나는 말이 없는 아이였다. 정말 정말 말이 없었는데 아침에 학교를 가서 집에 돌아올 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는 날이 대부분이어서 교사가 내게 친구를 만들어주기 위해 전략을 짜야했다. 그랬던 내가 만약 지금의 학교에 있다면 정서발달검사나 학생상담카드에 ※표가 쳐져 있겠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그랬던 내가 유일하게 따박 따박 따지는 일이 있었다. 내 어머니는 공부를 굉장히 잘하던 사람이었는데 시험에서 도(道) 수석을 해서 신문에 난 적도 있다고 했다. 반면 내 아버지는 손재주가 좋아 못 다루는 악기가 없고 따라 그리지 못하는 그림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공부는 별로였다. 내 아버지는 어머니가 신문을 읽는 것조차 싫어했다. 생각해보건대 그건 열등감이었다. 딸만 둘인 집이라 자주 그렇진 않았지만 어쩌다 ‘여자가...’ 하는 말이 나오면 난 언성을 높였고 내 아버지는 도대체 집에서 어떻게 세뇌를 시켜서 애가 이러냐고 어머니에게 화를 냈다.

‘여성’은 그렇게,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전 과거부터 내게 ‘부당하다’라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게 해주었던 말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여성주의 운동에 헌신했던 것은 아니다. ‘자매애’같은 건 키우지 않고 팔짱을 끼면 온몸에 닭살이 오르며 화장실을 같이 가는 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인 나란 사람은 여성커뮤니티에 끼기 힘들었다.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사생활을 털어놓는 수다를 나누는 것은 노력해봤지만 잘되지 않았다. 함께 활동하던 사람들에게 그런 부분들을 문제제기 받은 것도 있었지만 결국 내가 체득한 것은 나란 사람이 여성과 함께 있는 것을  불편해하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오히려 소주 병나발을 불어야 하는 남성커뮤니티가 편했다.

난 소위 남자들의 코드를 맞출 줄 아는 여자였다. 대학을 다닐 때에도 그랬고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는 더 빛을 발했다. 내 주변은 늘 남성들로 채워졌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난 낙동강 오리알이었다. 종국에는 난 남자가 아니기 때문에 끼어들 수 없는 상황을 마주해야 했고, 성별로 양분된 사회에서 나는 여성커뮤니티에도, 남성커뮤니티에도 끼지 못했다. 경계에 선 나는 상대적으로 덜 차별받았지만 상대적으로 덜 환영받았다. 인권이란 환대받을 권리라 했던가. 그래서인지 나는 내가 ‘여성’이라는 것에 대해 스스로 소수자성을 강하게 느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외에는 나는 사회적 기득권자였다. 나쁘지 않은 학벌에 가방끈도 길고 제법 칭찬받는 외모에 비장애인이며 여자 사람의 겉모습을 가진 여성이고 남성과 연애하는, 요즘 시대 신귀족층인 정규직이니 말이다. 성소수자 인권에, 장애인 인권에, 비정규직의 투쟁에 그리고 어린이청소년이 받는 차별과 무시에 공감하고 분노하지만 나는 계속 내가 성소수자가 아니라고, 장애인이 아니라고, 비정규직이 아니고 어린이청소년이 아니라고 생각해왔다.

뭐, 그게 잘못된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스스로를 피해자로 생각하는 것보다 내 안의 가해자성을 발견하고 그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는 것이 내가 더 자유로워지는 것이라고 생각해왔고 그것이 내 운동의 방식이었다. 청소년과 말을 놓는 것처럼 내가 행하는 가해로부터, 내가 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구조로부터 내가 빠져나오는 그 하나하나의 해방이 날 자유롭게 했다.

그런데 이 책. <수신확인, 차별이 내게로 왔다>는 좀 다르게 다가왔다. 어떤 사람은 이 책을 읽고 눈덩어리를 옷 속에, 등에 넣은 거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는데 내 경우엔 마치 투명한 갈고리 같은 느낌이었다. 우산 손잡이 같은 갈고리. 근데 투명하고 형태도 없어서 몸이 통과하는 갈고리. 그래서 내 몸의 겉면엔 아무 느낌도 없었는데 갑자기 수욱- 안으로 들어오는.

그는 파란만장하다는 말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민우의 이야기는 끊임없이 흔들린다. 그래서 누군가는, 민우가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묻고 싶을 수도 있다. 차별에 맞서 싸우자는 것인지, 굳이 문제 삼지 말고 넘어가자는 것인지. 평범하다는 것인지, 특별하다는 것인지. 그러나 하나만 기억하자. 그 흔들림을 만들어내는 것이 차별이라는 점을. 사회가 만든 테두리와 자신이 붙박고 싶은 자리가 어긋날수록, 흔들리지 않고는 살아내기 어렵다는 것을. 그러니 질문은 민우가 아니라 사회를 향해야 한다. (p. 184)

<수신확인, 차별이 내게로 왔다>는 논리적인 책이 아니다. 혼란스럽고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건지 모를 글도 있다. 인터뷰하고 추려 글을 쓴 사람들은 반차별활동가들이다. 하는 일이 사례를 듣고 상담하는 일인 사람들. 하지만 모두가 그렇듯 누군가의 이야기를, 삶을 듣노라면 그것은 하나의 사례로 정리되지 않는다. 산다는 게 위대하다는 것은 노래가사에 불과한 말이 결코 아니다. 모든 이의 삶은 진실로 위대하고 자신의 삶을 한 조각 잘라내어 건네는 이야기는 듣는 이에게 늘 가슴 먹먹한 무게로 전달된다.

그래서 엮은이들은 오래 고민했을 것이다. 사람들이 건넨 그 먹먹한 무게를 어떻게 다시 전할 수 있을까. 아마도 엮은이들은 구호가 아니라 감수성으로, 스며들 듯, 젖어들 듯 무게를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것이 이야기해준 이들에 대한 예의이자 보답이었을 테니.

그래서 어느 순간, 느끼지 못한 채 수욱- 들어오는 느낌일 것이리라. 맞나 틀리나 따질 필요 없이 그냥 수욱. 이 책은 읽는 동안 내 안에서 뭔가를 기싱 기싱 만들었다. 만들어진 무엇은 징검다리 같은 느낌이기도 하고 천에 삐뚤 삐뚤 막아진 바느질선 같기도 했다. 뭔가 이어지는 느낌들. 연결되는 느낌들.

그녀가 가난하고 외로운 삶을 사는 이유가 그녀가 트렌스젠더이기 때문일까요? 일찍 집을 나가야 했고 안정적인 직업을 구하지도, 가족을 꾸리지도 못한 채 여러 차례 수감 생활을 보낸 후 40대 후반의 나이인 현재까지도 빈궁하게 지내는 이유가 그녀의 성별정체성이 남달랐기 때문 만일까요? 그것이 소위 그녀가 겪는 차별의 ‘근본 원인이자 단일한 원인’인 게 과연 맞을까요? (pp.63-64)

살면서 우린 “왜?”라는 질문을 참 많이 한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 참 쉽게 대답하기도 한다. 내가 그랬다. 한 학생이 어떤 곤경에 처하게 되었을 때, 그 원인을 파악하는데 내가 투입한 시간은 밝히기 부끄러울 정도로 적었다. 채 5분, 10분이 걸리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몇 명의 학생들에게 물어보고 그 전해 담임교사들에게 전화를 걸어보고 보호자들과 통화 한 번. 그렇게 파악한 몇 개의 정보, 그것도 매우 단편적인 정보로 한 개인의 삶이 가지는 맥락을 재단했다. 그 학생은 장애학생이니까 차별당할지도 몰라, 그 학생은 체구가 작으니 학교 폭력의 피해자가 될지도 몰라, 그 학생은 가정형편이 어려우니 여러 가지 힘든 상황이 생길지도 몰라... 

재단되는 것은 그 학생의 삶만이 아니었다. 나와 그 사람, 나와 세계가 단절되는 것이기도 했다. 나는 차별받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고 시소로 따지면 그들은 저편에, 나는 이편에 앉아 있는 사람이었다. 분명 나는 소수자들과 함께 살고 있는데 ‘그들의 세상’이 존재하고 나의 세상이 존재했다. 내가 차별을 받더라도, 나의 인권이 침해당하더라도 나의 차별은 분리되어 있었다. 내가 버스에서 당한 성추행은 뉴스에 나오는 성추행과 달랐고 내가 하는 욕설은 이주노동자들에게 행해지는 욕설과 달랐다. 내가 당하는 차별도 개인적인 문제였고 내가 하는 차별도 탈정치화되어 있었다.

<수신확인, 차별이 내게로 왔다>라는 제목처럼 이 책은 차별과 나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는 느낌이었다. 차별을 유지하려 하거나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사람들. 그들은 ‘차별받는 자’들로부터 스스로가 멀리 떨어져 있다고 확신하고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하지만 차별금지법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차별과 자신의 거리를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차별을 행하는 이, 차별을 당하는 이. 그 사이의 공간은 분명히 비어있지 않다. 그 거리를 어떤 고민으로 채워나가는가가 어쩌면 우리가 차별에 대해 진정으로 생각해야 할 물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차별이 내게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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