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날] <체 게바라, 혁명의 경제학>

쿠바 경제관료 게바라의 사회주의 정책 연구서
뉴스일자: 2013년01월19일 02시45분

▲헬렌 야페 저, 류현 역, 실천문학사, 2012.04.13, 615p
2007년 미국에서 시작된 경제위기는 현재 유럽을 강타하고 있으며 자본주의 경제학자마저 신자유주의의 위기를 공공연히 말하며 대안을 찾고 있다. 그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착한 자본주의이다. 착한 자본주의 들을수록 애매모호하고 알쏭달쏭하다.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가 아니라서 착한 자본주의를 대안으로 생각한다는 말인가?

고도의 생산 사회화와 생산수단의 사유화에 따른 자본주의 생산의 무정부성의 대안으로 계획 경제가 주목받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구소련으로 대표되는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일 것이다. 민주주의의 말살로 말미암은 창의성 부족과 더불어 시장을 통한 상품거래, 기업의 이윤 추구, 노동자들에 대한 성과급 지급, 개별 기업의 독립채산제 등 구소련 사회주의의 자본주의적 요소야말로 구소련 붕괴의 가장 큰 원인이다. 이런 소련식 사회주의 문제를 이미 60년대 지적하고 소련과 다른 경제 정책을 시행한 인물이 바로 우리에게 혁명가로 널리 알려진 체 게바라이다.

이 책은 게바라가 가진 반군 사령관, 무장한 국제주의자라는 편협한 인식을 넘어 1959년부터 1965년까지 쿠바 경제관료로서 그의 사회주의 정책에 관한 연구서이다. 이 책을 편찬하기 위해서 저자는 오직 쿠바 안에서만 유포된 자료와 회의 기록, 측근을 비롯한 60명의 인터뷰 내용, 쿠바 밖의 2차 문헌까지 참고하였다. 쿠바 사회주의를 비판하기 위한 이데올로기 전쟁에 주안점을 두는 (영어권)쿠바학은 성장률과 생산성에만 초점을 맞춰서 혁명 직전의 쿠바 상황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실상은 쿠바는 설탕에 의존하는 단일작물경제였고 미국의 투자와 무역에 지배받는 자유기업경제였으며 빈곤과 실업, 불완전 고용으로 인한 빈부격차 심화, 수도와 지방의 불균형이 만연해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혁명 직후의 문제는 저발전 상태에서 사회주의체제에 들어맞는 새로운 의식과 새로운 사회관계의 형성을 방해하는 자본주의적 메커니즘에 의지하지 않고 어떻게 생산력과 노동 생산성을 높일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쿠바는 여기서 자본주의적 개혁을 거부하고 기존 사회주의 국가들의 경제 정책도 순순히 따르지 않는 조치를 취했다.(시장을 통한 상품거래, 기업의 이윤 추구, 노동자들에 대한 성과급 지급, 개별 기업의 독립채산제가 없어지지 않으면 소련은 자본주의로 후퇴하리라는 것을 1965년에 이미 간파하고 있었다) 특히 예산재정시스템이라는 경제관리시스템을 수립, 발전시켰고 이 시스템은 이 책의 주요 논의 대상이다. 때문에 김수행 교수는 새로운 사회를 어떻게 세울까 고민하는 모든 사람은 이 책을 반드시 읽을 것을 강조했다. 다음은 예산재정시스템의 등장 배경, 대논쟁, 소비에트 ‘정치경제학 편람’ 비판에 관한 간단한 요약이다.

혁명 공고화와 예산재정시스템의 등장

혁명후 쿠바는 경제구조에서 비롯된 사회경제적 문제들에 봉착했다. 경제는 설탕 관련 상품의 무역에 의존했고 이 무역은 미국에 종속되었고 가장 중요하고 복잡한 산업은 미국 기업과 기술자에게 전적으로 의존한 상황에서 불완전 고용, 빈곤은 극심했다. 이런 상황에서 농업개혁법을 비롯한 급진적 입법에 반발한 자본가들은 투자 동결, 조업 시간 단축 등의 사보타주를 단행했다. 농업개혁법은 다소 온건하였지만, 농업에 대한 국가 개입, 협동조합화 원칙, 궁극적으로는 집산화에 있었다. 아무튼, 자본가의 사보타주를 막기 위해 혁명 정부는 산업 시설을 국유화하였다. 이에 미국은 유럽과 남미에 압력을 넣어 쿠바 경제봉쇄 조치로 맞섰다. 그러자 혁명 정부는 생산관리와 계획 경제를 위해 새기구 설립과 기존 조직들의 조직 개편을 단행하였다. 그 결과 혁명 2년 후에는 미국의 지배를 받던 자유기업 경제에서 산업의 84%를 국가가 통제하는 계획경제로, 교역관계도 자본주의 국가에서 사회주의 국가로 옮겨갔다.

국유화의 과정에서 각 사업장의 관리자를 물색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지배계급의 망명으로 노동자, 농민이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경험을 통해서 혁명을 급진적으로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기술적 경험만큼이나 중요하고 관리자와 노동자들 간의 협력도 중요하다는 것을 게바라는 깨달았다. 실현가능성이 적다는 이유로 경제적 독립을 달성, 유지하는 필요한 조치를 미루거나 멀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산업부흥부로 이관된 업체 중에는 파산한 업체도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게바라는 예산재정시스템으로 발전하는 행정의 집중화, 재정의 집중화를 확립하였다. 산업부흥부 직원들이 사업장을 방문 봉급 총액과 주요 지출 항목을 조사 연간 예산을 산정하고 예산을 공정하게 분배하였고 추가로 배정받을 수 없었다. 또한, 생산의 효율성뿐만 아니라 새로운 관리 유형이 필요했다. 그래서 자문평가법이 도입되는데 매달 공장 운영 상황을 보고받고 이를 분석 평가해서 각각의 등급에 따라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이다. 그리고 자문평가법은 예산재정시스템에 통합되어 운영되었다.

대논쟁

역사적으로 사회주의를 건설을 시도한 나라들은 저발전국가였다. 특히 소련은 역설적이게도 산업화과정을 높이기 위해 경쟁, 이윤 동기, 물질적 인센티브, 신용, 이자 등 자본주의적 도구를 사용했다. 하지만 게바라는 인간의 태도와 가치를 바꾸지 않은 채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자본주의적 수단에 의존하면 자본주의적 사회관계와 의식을 재생산하게 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소련의 자율재정시스템 도입을 반대했고 저발전국가에서도 사회주의 건설 과정에서 생산성뿐만 아니라 의식도 같이 높일 수 있는 대안적 시스템인 예산재정시스템을 수립했다. 하지만 국립농업개혁원과 대외무역부를 중심으로는 자율재정시스템을 적극 지지했다. 게바라의 대안은 검증되지 않았고 한편으로는 사회주의 국가에서 쿠바에 파견된 기술자, 경제학자들 역시 게바라의 안을 거부하였다. 그 결과 쿠바는 두 가지 경제관리시스템이 경쟁하는 양상을 띠었다.
 
대논쟁은 그 당시 침체한 사회주의권 개혁 논쟁과 관련이 있었고 그 중심에는 사회주의 경제와 관료주의의 폐단을 없애기 위해 자본주의적인 메커니즘을 도입할 것을 요구한 ‘시장사회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대논쟁은 논자에 따라 다양한 각도에서 해석됐다. 사회주의에서 가치법칙의 작동, 도덕적 인센티브 사용에 대한 의견 불일치, 기업의 재정 (탈)집중화 정도에 대한 논쟁, 기타 등등이다. 이 중에서도 가장 핵심은 사회주의 이행기에 가치법칙이 작동하는가 여부였다.

가치법칙을 논하기 위해서는 상품 생산은 교환을 전제로 하고 상품에 체화된 노동시간은 사회적 필요 노동시간이라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행기에서는 아직 노동이 필요에 따라 보상받을 수 있을 정도로 풍요롭지 않으며 이 상태에서 어떻게 공산주의 사회로 나갈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다. 사회주의권에서 나온 해답은 가치법칙에 기초한 생산, 분배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게바라는 가치법칙에 의존하는 것은 공산주의 건설을 방해할 뿐이며 국가계획, 연구기술투자, 관리메커니즘, 사회주의 의식 같은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게바라는 쿠바는 거대한 공장으로 봐야 하고 국영기업들 사이에서는 가치법칙이 작동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이행기에 기본 모순은 비자본주의적 생산방식(생산수단의 사회화)과 부르주아적 분배양식(노동에 따른 분배) 간의 모순이라고 밝힌다. 그래서 그는 사회주의 국가는 가치법칙을 사용하거나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이 법칙의 작동 영역을 정확하게 간파하고 완전 폐지를 위해 국가가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생산 능력을 높여 가치법칙을 무시해도 될 정도로 물질적 풍요를 달성해야 함을 의미한다.

경제생활의 많은 영역에서 가치법칙이 작동하지 않으면서 생산성은 어떻게 높일지, 정신/육체노동의 이분법은 어떻게 극복할지, 생산수단에 대한 투자와 소비수단에 대한 투자는 어떤 식으로 균형을 유지할지 등등의 많은 과제를 낳았다. 게바라는 사회주의 건설을 목표로 둔 노동자들의 의식적 행동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런 관점에서 도덕적 인센티브는 사회적 의무로서 노동이라는 새로운 노동 개념을 만들기 위한 도구였다.

소비에트 ‘정치경제학 편람’ 비판

1965년과 1966년 사이에 게바라는 소비에트의 ‘정치경제학 편람’에 비판적 주석을 달았다. 이 주석은 부인을 통해 그의 부관이었던 보레고에게 전해졌다. 하지만 보레고는 이 노트를 40년 동안 숨겨놓았다. 왜 어떤 내용을 담고 있었기에 꽁꽁 숨겨놓았을까? 게바라는 이론적 분석과 대안적 경제관리시스템에 확신을 얻은 후 사회주의 나라와 사회주의 혁명을 하고 있는 나라를 위해 대안적인 이행 모델을 제시하려고 했다. 이는 사회주의 블록에서 소련의 지위에 대한 도전이었다. 이 노트를 통해 게바라는 자율재정시스템을 비판함으로써 혼합체제, 즉 자본주의적 요소를 가진 사회주의에 내재한 위험들을 밝힐 수 있다는 확신을 했다. 사망하기 직전까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몰려 있던 레닌이 신경제정책으로 귀결되는 조치들을 취함으로써 전국적으로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다시 도입했고 현재의 소련 사회의 법적. 경제적 토대가 전 독점자본주의의 관계와 범주를 허용하는 신경제정책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주장했다. 즉 소련은 자본주의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 비판적 주석 노트를 자세히 살펴보면 정치경제학 편람이 제국주의 영향을 고려하지 않은 채 고전 마르크스주의의 계급관계 개념을 그대로 따랐다고 비판했다. 제국주의는 개도국에서 착취하는 잉여를 자국의 노동자와 나눠 먹고 이런 이유에서 제국주의 국가의 노동자들은 더 이상 혁명의 전위는 아니라고 봤다. 그리고 콜호스 집단농장에 대해서도 첫째, 콜호스는 소련의 특징이지 사회주의의 일반적인 특징이 아니며 둘째, 상부구조에 자본주의적 소유관계를 부여한다고 주장한다. 소련에서 토지는 사회적 소유지만 콜호스에 속한 생산수단은 사회적 소유가 아닌 콜호스 소유이기 때문에 사회와 콜호스 간에 간극은 이데올로기적으로 심화한다고 봤다.

게바라는 공산주의가 반드시 자본주의보다 생산성이 높아야 한다는 주장에 반대했다. 자본주의와의 경쟁보다는 사적 생산수단의 존재로 초래된 모순을 해결하고 공산주의 교육을 확실히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봤다.
 
소련의 수정주의 경향은 실용주의와 과학적 분석의 부재 때문이라고 게바라는 결론을 내렸다. 쿠바에서는 소련의 지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조금씩 재정 보유고를 확충해 나갔고 이런 준비가 사회주의 쿠바가 아직 존재하는 이유가 되었다. 게바라는 1965년 4월 쿠바를 떠났지만, 자본주의적 산업이 사회주의적으로 운영되는 이행을 후유증 없이 순탄하게 진행했다. 물론 떠나고 난 후 그의 유산들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거나 폐지된 것도 있지만 많은 정책이 쿠바에 깊숙이 뿌리내렸다. 특히 예산재정시스템은 그의 가장 큰 공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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