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안 칼럼 (14)]전태일 열사의 42주기를 맞이하며

그와 같이 죽을 수 없다면, 그와 같이 살아야 한다
뉴스일자: 2012년11월13일 15시52분

▲고 전태일 열사
그들 만났던 건 열여섯 까까머리 소년 때였습니다.

한 때는 그의 대학생 친구가 되고 싶었고, 또 한때는 그의 무게가 무거워 부정하고 던져 버리고 싶었지만, 그를 모르고 살았던 시절보다 그를 알고 살아온 시간이 길어진 나는 거울 속에 비쳐있는 그를 보며, 또 깊어진 가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1970년 평화시장에서 타오르던 불덩이 하나와, 그를 지켜보며 흘리었던 수많은 눈물들이 40년이 넘어 온 지금 우리에게 무엇으로 남아있었는지 가을이 짙어지면 낙엽의 색만큼 나의 심장에 농해집니다. 쓰러지면서도 놓지 않았던 그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던 쓰라린 외침이 40여 년이 지난 지금 울산의 송전탑 위에서 똑같이 넘쳐흐르는 지금, 수 십년째 ‘더 이상 죽이지 마라’는 만장이, 노동자의 죽음에서, 장애인의 죽음에서, 농민들의 죽음에서도 그대로 사용되는 지금, 상식을 이야기하고, 노동을 이야기하고, 차별 없는 세상을 이야기하면 무조건 빨갱이가 되는 지금, 모양은 조금 다르지만 알맹이는 바뀌지 않는 그 아픔을 40여 년간 지녀온 우리는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는 것일까요

이제 우리는 또 다른 불덩이를 태워야 합니다.

그가 몸에 불을 붙였 듯, 우리는 그렇게 심장에 불을 붙여야 합니다.

그와 같이 죽을 수 없다면 그와 같이 살아 내야 합니다

오늘은 공장의 전태일로, 내일은 가정의 전태일로, 그리고 다음은 거리의 전태일로...

삶을 한올한올 엮어가며 아침의 다짐이 저녁에 황망함이 되더라도, 하루하루 다짐하고 하루하루 되새기며, 거울 속에 웃고 있는 그를 외면하고, 그를 지워버려서는 안됩니다

전태일은 고유명사가 아닌, 살아있는 모든 자의 심장에, 억압받는 모든 자의 이름이 되어 그렇게 살아 있듯, 우리는 43년 전의 그날처럼 오늘을 살아야 합니다

비바람 치던 날 그를 기리는 노동자대회가 있었답니다. 그의 삶만큼 힘든 삶들이 그의 절규보다 더욱 피내음 가득한 오늘을 외쳤습니다

가을이 깊어지고 낙엽은 중력에 꼬꾸라져 쓰러지지만,  인간의 함성은 이 땅을 박차고 하늘로 오르고, 36.5℃의 작은 비계덩어리가 모여, 세상을 바꿀 거대한 물결이 되는 건사람만이 스스로의 삶을 엮어 역사의 수레를 굴리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은 어제보다 힘들지만, 내일은 오늘보다 행복하기를 낙엽이 가듯 그리 가신 그에게 기도하여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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