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창수의 노래나무 심기] (5) 총파업의 추억 “기계를 멈춰”

싸우는 노동자여 외로워마라, 정든 일터를 서러워마라
뉴스일자: 2012년08월29일 20시55분

민주노총이 총파업을 한다. 29일은 지역별 총파업에 31일은 총파업 상경 투쟁이다.

‘파업은 조직된 노동자의 최후의 수단이며 강력한 무기’라고 말한다. 또한, 노동자의 가장 단결된 대중 조직으로서 민주노조는 한국 노동자의 투쟁과 고난의 역사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노동자의 역사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의 문예운동도 이 노동운동의 역사 속에서 동고동락하며 발전하기도 하고 때론 선전선동이 강조되면서 방향성의 혼란과 정체의 길을 걷기도 했다.

나는 20대 초엽에 87년 노동자 대투쟁을 곁눈으로 보았고 내가 규정짓지 않아도 흔히 말하는 무슨 무슨 세대로 불리기도 하였다. 87년 이후 노동조합을 포함한 노동자 중심성의 조직과 당 운동이 한국사회의 주요한 운동을 주도했고 이런 노동중심성과 민주화로 이야기되는 운동을 87년 체제라고 하고 요즘은 이 87년 체제의 성과와 한계를 말하면서 운동의 재구성과 대안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나도 87년 체제의 한 점일 수 있다.

87년 이후 점점 운동의 경력을 자신을 치장하기 위해 운동하는 사람들이 나타났고, 전대협 동호회는 금배지 동호회가 되었으며, 그 인사들은 종종, 무슨무슨 비리로 신문지상을 오르내린다. 노동조합의 간부 중에는 브라질의 룰라처럼 현장으로 돌아가는 간부를 좀처럼 보기 힘들어졌고, 그 사람이 그 사람이 되었고, 민주노조의 지도부는 역시 여의도의 회전의자에 앉기 위한 경로가 되었다.

내가 아는 노동운동가 중에는 여전히 외롭게 원칙과 노동자의 미래를 위해 애쓰시는 분들이 있다. 그분들의 삶에 부끄럽고 여전히 존경하지만 그분들 스스로도 너무 상처가 많고, 그동안 받았던 폭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나도 별반 다르지 않고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하고 싶은 말은 하고 살아야지 하며 내 자신 스스로 치유적 글쓰기라며 애써 위로하고 있다. 나는 버릴 권력도 없고, 이제는 어디 정치조직에도 속하지 않았고, 권력이 있는 운동가들이 무시해도 좋을 만큼 이름없는 예술가이고 문화 권력이 있는 곳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연대를 하고 싶었다. 문예운동을 하는 사람의 삶을 노동자 들이 들여다보고 이들과 어떻게 연대할 것인가 고민해 주길 바랐다. 싸움이 힘든 곳에서 연대를 요청할 때 나는 가서 노래를 불렀고 공연비 때문에 초대하지 못해도 갔다. 나뿐만이 아니다. 민중가요 , 노동가수라는 사람들이 어디 나뿐이랴. 거기에 고통받는 노동자가 있고 민중이 있어 노래했고, 그 가치가 아직 노래할 수 있는 힘을 준 것이기에 후회는 없다.

노래하기가 정말 힘들 때가 있다. 총파업을 하지 않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무대 위에서 총파업을 말해야 할 때 나는 자괴감이 든다. 김주익 열사가 돌아가시고 나는 한동안 노래를 부르지 못하였다. 곡도 못 썼다. 무기력했고 회의가 들었다. 총파업을 하는데 양치기 소년이 생각나고 허수아비 위의 참새가 생각났다. 나는 얼마 전까지 무기력 했고 냉소적인 나를 발견하곤 했다. 노래한다고 별 문제의식 없이 집회장 어느 곳에서 노래했던 나도 이런 문화에 틀림없이 한몫했으리라.

이런 자괴감과 허함이 쌓여 한동안 노래를 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주의의 벗들에게 고백하건대 푸념조로 이런 말을 종종 하곤 했다. “위대한 노동자가 말야 위대한 짓을 해야 위대한 노동자지 노조 집행 권력이나 가지려하고 관료가 되고 비리나 저지르면 그게 위대한 노동자야?” 이 글을 읽는 분들은 가볍게 글을 펼쳤다가 기습적인 나의 고백을 듣고 혹 떼러 왔다 혹을 하나 붙인 기분일 수도 있겠다. 허나 어쩌랴 길은 가야하고 그래도 땀 흘려 일하며 꿈꾸는 당신이 있기에 나는 당신에게 손을 내밀고 있다. 이제 나는 훨씬 편안해져 있다. 노동조합의 가치와 한계도 어렴풋이 정리되었고 노동운동의 발전도 중요하지만, 그에 걸맞은 사람의 영성이 있어야 함을 나는 요즘 깨닫는다.

집회가 끝났다. 나는 노래를 하고 몇몇 벗들과 돼지 국밥에 소주를 먹는다. 옆 테이블에 있던 한 노동자가 술을 한잔 따라준다. “아까 그 노래 참 좋던데요” 한다. 흰머리에 아버지뻘 되는 노동자가 손을 꼭 잡는다. 내 마음은 봄눈처럼 녹는다. 한 잔 먹고 지하철을 타려는데 오줌이 마렵다. 화장실에 갔는데 청소하시는 분이 기타를 맨 내 뒷모습을 보고 당황스럽게 말한다. “오늘도 어데 노래하고 가는가 보제?” 바지를 올리지도 못하고 돌아보니 일전에 “임을 위한 행진곡”을 가르쳐 드렸던 지하철 서비스지부 여성 조합원이다. 아이 참 꼭 화장실에서.... 웃음기가 돈다.

현대 자동차 비정규직 지회의 투쟁이 전개되고 있다. 긴박하고 연대가 절실하다. 투쟁으로 돌파하자는 구호는 구호가 아니라 이곳에서 실재여야 한다. 기계를 멈추는 것에 연대가 더해져야 한다. 나는 한낱 노래꾼일 뿐 이곳엔 함께 싸우는 노동자가 필요하다. 정규직, 상급단체, 정치조직의 이름이 아닌 바로 노동자의 연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면 된다. 그것이 격려의 문자 한 통이라도 좋다. 그것이 마음을 내는 것이다.

노래 “기계를 멈춰”

97년 노동법 대투쟁 총파업 전 전국 순회공연 후에 만든 노래이다. 함께 부르는 노래도 있지만, 기왕 총파업을 하자면 듣기만 해도 힘이 될 만한 노래가 없을까 하고 만든 노래이다. 꽤 긴 노래인데. 원래 처음 만들 때는 더 긴 노래로 만들어졌다.

노랫말들을 잘 뜯어보면 크게 두 단락인데 음반에는 전반부에 노동자의 과거 역사, 후반부에는 노동자의 지금 “총파업-기계를 멈춰” 로 볼 수 있는데 원래 곡을 썼을 때는 그 중간에 노동자의 미래인 “선언2” 노래가 삽입되어 있었다. 그래서 노동자의 “과거 - 미래 - 지금 여기”라는 노래의 구조를 가진 것인데 아마 녹음당시 긴 노래시간으로 인해 노동자의 미래를 빼고 녹음한 것이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꼭 희망찬 미래를 만들어 넣어 노래하고 싶다.

얼핏 보니 15년이나 된 노래인데 새삼 듣고 있자니 마음이 뒤숭숭하고 얼굴 표정 이랬다, 저랬다 한다. 모쪼록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이 얘기하신 것처럼 풀처럼 눕고 낮게 기는 삶을 깨우쳐야 할 것인데... 그 기는 삶에 언제 작은 노래 씨앗 하나라도 심을 줄 알게 될까? 생각하며 이 글을 못 끝내고 있는 이 물건은 태풍이 지나간 길목에 또 한 번 한없이 작아진다.



노래 다운받기  (마우스 우클릭 후 다른이름으로 대상 저장 누르셔야 합니다)

악보 다운받기  (마우스 우클릭 후 다른이름으로 대상 저장 누르셔야 합니다)
 


노동문화예술단 일터 활동
1997년 솔로활동 시작
2007년 창작곡 1집 “빵과 서커스” 만듦
2010년 아이들 글에 붙인 창작 동요 “우리 개똥이 하는 말” 만듦
현재 우창수와 장난감밴드 활동 / 개똥이 어린이 예술단 대표

 

우창수의 노래나무 심기 http://cafe.daum.net/woo2011


이 뉴스클리핑은 http://newsdg.jinbo.net에서 발췌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