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날] 이득재의 서재 (1)

<런던코뮌>, 지방사회주의의 실험과 좌파정치의 재구성
뉴스일자: 2012년07월07일 01시00분

성남시가 부채로 모라토리엄을 선언하고 인천시의 부채는 10조에 육박하며 대구시도 부채가 2조 7천 934억 원이다. 대구 지하철의 부채는 1조 5천억 원이다. 광주시는 3억 부족한 1조 원의 부채 중 지하철 건설이 32%를 차지한다. 서울시 부채는 20조 원이나 된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지자체마다 부채 몸살을 앓고 있다. 게다가 부채 축소로 사실 지자체 빚이 얼마가 되는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대한민국 국가부채가 700조라는 말도 있지만 2010년 기준으로 대한민국 국가부채는 1848조 4000억으로 서열 세계 4위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항간에서 이야기하듯 복지를 너무 해 줘서 생긴 병 때문일까? 그것은 절대 아니다. 복지 제로 수준에 가까운 나라가 대한민국이므로 부채는 다른 이유 때문에 생겼을 것이다. 그것은 인천이나 서울을 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터져날 정도로 공간을 가득 메운 아파트를 지으면서 혁신도시네, 무슨 도시네, 뉴타운이네 해가며 마구잡이로 공간을 헤집어 놓고 건설사의 배만 잔뜩 부풀려 놓는 사업들. 노무현 정권 때부터 본격화한 이러한 신자유주의적인 도시개발에다가 경인수로 등 또 개발, 거기다가 무슨 섬 만든다고 돈 붓고 디자인 서울 만든다고 돈 붓고 4대강사업 한다고 돈 붓고. 이렇게 해서 지자체마다 공기업마다 부은 돈들은 모조리 재벌의 입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도 숱한 난개발들의 뒤치닥꺼리를 하는데 돈 들어간다고 부자 감세는 해주면서 없는 사람들의 호주머니만 강탈해 간다. 이쯤 되면 이제 우리가 지자체를 접수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래서 건설사에 대해 모라토리엄 선언해야 하는 것 아닐까. 이제껏 별의별 개발과 토목공사로 엄청난 이득을 얻지 않았나. 그렇지 않고서야 무슨 돈으로 그 엄청난 부채를 없앨 수 있단 말인가. 또다시 노동자 민중들의 주머니를 털어 빚을 청산한다는 핑계로 건설사만 배만 불릴 것인가.

하지만 지자체를 접수해 새로운 실험을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국가권력 장악 이전에 작은 정부인 지자체 장악마저 쉽지 않다. 늘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일이지만 누가 군수를 하든 진보세력이 시장을 하든 구청장을 하든 지자체를 통해 새로운 실험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국가권력의 일부인 지자체의 장악이 아니다. 윗선이 바뀌어봐야 신자유주의적인 난개발을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다국적 기업 맥쿼리가 지하철 9호선을 먹도록 내버려둔 것이 누구고 현재 박원순 서울시장이라고 해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오늘날 벨기에 같은 나라에서는 지자체를 가리켜 ‘코뮌’이라고 하지만 여기 한 가지 예가 있다. 1981~1986년까지 존재했던 런던의 광역시의회(GLC)가 펼쳤던 지방사회주의의 실험이 그것이다.

▲런던코뮌, 서영표 (이매진, 2009)
제주대 서영표 교수가 자신의 학위논문을 책으로 낸 『런던코뮌』(이매진, 2009)은 영국에서 신자유주의가 득세하던 대처 시절에 GLC가 펼친 급진적 사회주의적 실천과 열망을 다룬 책이다. 저자에 따르면 GLC는 대처에게 늘 눈엣가시였다고 한다. 지자체를 코뮌으로 바꾸고 거기서 새로운 실험을 한 GLC. 이러한 GLC의 경험은 우리에게 지자체의 장이 선거로 바뀌어봐야 그리고 권력의 자리를 민주당이 잡거나 민주노동당이 잡아봐야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교훈을 준다.

그렇다고 해서 좌파가 썩어 문드러진 지자체를 마냥 방치할 수도 없다. 문제는 지자체에 개입해 지자체를 사회주의적인 지방정부로 재탄생시켜야 한다. 그러나 좌파가 시의회의 권력을 장악했다고 해도 좌파와 우파, 지방정부 부처들과 위원회들, 공무원과 시의원,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사이의 갈등을 조정하기가 쉽지 않다. 지자체가 시장의 논리, 자본의 논리에서 벗어나게 하는 프로젝트는 더더욱 어렵다. GLC가 지자체에 대한 새로운 실험을 하는 가운데 그것의 주된 목적으로 내세운 유연전문화, 더 나은 노동 조건과 더 많고 안전한 일자리 창출, 공공경제 등은 그 공과를 살펴볼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어떤 역량으로 GLC 같은 실험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선거판에나 뛰어들어서는 세상이 변하지 않지만 ‘런던 코뮌’ 같은 실험도 만만치 않다. 거기에는 지역의 노동 운동의 역량, 사회운동, 공동체 운동 등에서 나오는 변혁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주민참여예산제를 소수 엘리트에게만 맡기고 그마저도 거의 존재하지 않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지자체를 어떻게 하면 코뮌으로 변혁시킬 수 있을까? 『런던 코뮌』이 그 답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책을 읽으면서 아이디어를 얻을 수는 있다. 서영표 교수가 국가 내에서 국가에 저항하는 것이라고 말하듯이 신자유주의 광풍이 몰아치던 영국에서 GLC가 펼쳤던 지방사회주의의 실험은 그러한 저항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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