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날] 미완의 기록, <두 개의 문>

우리에게 말한다. 기억하라 그리고 분노하라고.
뉴스일자: 2012년07월07일 00시53분

[출처 : 영화 <두 개의 문> 블로그]

이 영화는 기록하고 있다.

MB라고 호명되는 이 나라의 권력집단이 ‘국민’으로 호명되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부수고 짓밟아버리는가에 대하여.
법과 질서, 법과 질서 …, 대통령부터 말단의 경찰까지, 고장 난 로봇처럼 되뇌고 복창하면서 사람을 죽이고 저들 또한 죽는 일을 어떻게 서슴없이 저질러버리는가에 대하여.

어느 날 새벽, 사람이 여섯이나 죽었고 그 지옥 같은 풍경을 모든 국민이 실시간으로 생생하게 지켜보았는데, 그들의 목숨에 대하여 현장에 있었던 진압경찰들도, 그 위에서 진압명령을 내린 경찰 간부들도, 그러한 명령을 내리도록, 그렇게 끔찍한 진압작전을 수행하도록 부추기면서 압력을 행사한 그 윗선과 또 그의 윗선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권력의 오만방자함에 대하여.

“이건 재판이 아니야.” 라는 유족의 절규는 이미 공허하다.

현장은 불에 타서 아무것도 건질 게 없고, 시신은 동의도 없이 부검이라는 명목으로 난도질 되어버렸다. 피고들에게 유리할지도 모르는 증언 자료들은 봉쇄되었고, 재판장이 법에 근거해서 증거를 제출하라고 명령을 해도 검사는 못 내어 놓는다고 버틴다. 증거조차 없이 판사는 재판을 진행하였다.

정당한 재판을 받을 권리조차 없는 이 나라는 법치국가가 아니다. 삼권분립이 유린당하는 위헌적인 상황이 발생했음에도 “어? 어?” 하는 사이에 지나간다. 이 나라의 민주주의는 아직 근대의 문턱도 넘어서지 못했다.

여기까지가 기록물의 역할이다.
 
이명박이 대통령의 자격으로 미국에 가서 쇠고기 수입개방을 약속하고 돌아왔을 때, 우리는 분노하고 경악했다. 그 분노의 힘으로 2008년 광장의 정치를 복원했다. 2009년 1월 용산의 비극 앞에서 우리는 치욕스러웠다. 순리대로라면 이 정부는 그때 뒤집어졌어야 했다. 그러나 궁지에 몰린 야수의 발악과 MB집단 특유의 몰염치와 교활함으로 그들은 위기를 덮었다. 이 영화는 그들에게 말한다. 위기는 지나간 것이 아니라 잠복해있었을 뿐이라고. 그리고 우리에게 말한다. 기억하라 그리고 분노하라고.

하지만 이 영화는 발화점을 갖지는 못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여전히 미완의 작품이다.

2009년 용산의 비극이 우리의 이야기가 되려면, 삶의 터전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지키기 위해 철거될 건물에 올라가야 했던 그 사람들의 이야기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협상도 없이 크레인과 컨테이너와 물대포와 엄청난 병력으로 몰아붙이는 압도적인 물리력 앞에서 투쟁을 계속할 것인가 투항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했던 그들의 고뇌와, 야수처럼 달려드는 적들에게 물리고 뜯기고 개처럼 두들겨 맞으며 죽어가야 했던 그들의 최후가 영상으로 되살아나야 한다.

그리고 이 영화의 결말은 이런 것이다.

[출처 : 영화 <두 개의 문> 블로그]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항상 그래 왔듯이, 우리는 매캐한 유증기 속에 웅크린 채 발화의 순간을 숨죽여 기다리고 있다. 학살자들의 공포에 질린 숨소리가 점점 커진다. 우리는 낮고 음험한 목소리로 그들에게 말을 건넨다.
“너희들은 포위되었다!”


이 뉴스클리핑은 http://newsdg.jinbo.net에서 발췌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