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지난 2월 17일 서울동부지방법원 민사합의21부(부장판사 고충정)는 박유하 세종대학교 교수 저서 『제국의 위안부』와 관련해 위안부 피해자 9명이 박 교수와 출판사 대표를 상대로 낸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이 책의 34군데를 삭제해야만 판매할 수 있다고 결정했다. 재판부는 다만 '박 교수 등의 접근·취재를 막아달라'는 신청은 기각했다. 자유로운 토론과 비판을 원했던 박유하 교수의 바람은 금지도서가 됐다. <뉴스민>은 『제국의 위안부』와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의미 있는 토론의 장을 열고자 한다. 이에 인문학자 정승원의 글을 열 차례 연재한다. 정승원의 견해와 입장이 다른 글도 얼마든지 환영한다. (010-8585-3648, newsmin@newsmin.co.kr)
1. 역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세 가지 차원
제가 보기에 『제국의 위안부』은 세 가지 차원의 내용/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1) 사실(팩트)차원: 당시 조선인 위안부의 양상들은 어떠했으며, 위안부란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그리고 위안소는 어떻게 운영되었는가?
2) 해석 차원: 사실(팩트)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3) 정책/실천 차원: 한일 간 위안부 문제를 미래지향적으로 어떻게 풀 것인가?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의 죄 없는 조선의 여성들이 일본놈들한테 당한 것이 명백한데, 해석은 뭔 놈의 해석이야? 당장 일본 천황이 한국 와서 위안부 할머니들한테 무릎 꿇고 사과하고 일본정부는 할머니들한테 보상해야지!” 세상사나 개인사가 이렇게 단순하게 이해되고 해결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아픈 과거의 상처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확인하고, 그 역사적 사실을 특정한 관점으로 바라보고/해석하고, 그런 해석된 사실을 바탕으로 피해당사자가 가해 당사자에게 사과와 보상을 받는 과정은 생각보다 복잡합니다. 그래서 지난 몇 십 년 동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사실확인을 위해 여러 구술증언자료집이 나왔고, 일본과 미국 쪽 문서를 찾는 작업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아우슈비츠 자료 발굴 때도 그런 일이 있었지만, 잘못된 기억과 증언으로 혼선을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1942년까지 패전 때까지 육군대본부로부터 트럭과 군인 등을 제공받아 제주도에 와서 조선인을 연행해갔다’는 요시다 세이지의 증언은 현재 허위로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일본군 위안부에 관한 자료들은 계속 발굴되고 있습니다.
자료 발굴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이 자료를 해석하는 문제입니다. ‘조선인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해석은 다양합니다. 같은 역사적 사실이라도, 일본 우익처럼 ‘개인의 자발성’을 강조하는 측이 있습니다. 이럴 경우, 국가의 책임이 희석됩니다. 반면, 일본의 책임과 사과를 요구하는 측에서도 해석 지점에 따라 갈라질 수 있습니다. ‘민족’이 아니라 ‘여성’의 문제로 보는 관점에 따르면, 위안부 문제는 가부장제 아래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성 억압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제국의 위안부』처럼 조선인 여성을 인신매매하거나 납치하는 업자나 포주에 주목할 수 있습니다.(물론, 이 이들에게만 책임을 묻는 것은 아닙니다.) 그럴 경우, 어떤 해석 방법을 택하느냐에 따라 역사적 사실에 대한 책임 주체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런 해석방법은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실천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실천도 다양할 수 있습니다. 일본의 법적인 배상을 요구할 수도 있고, 법적인 해결이 어려우므로 국민들이 모으는 기금을 통해 사과를 표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역사 교과서에 위안부 관련 역사적 내용을 수록하여 가해자 국민들을 교육하는 방식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일본이 조선인 여자에 대해 피해를 입혔다는 사실에 소수의 일본 사람 이외에 많은 사람이 동의할 것입니다. 하지만 해결방법에 있어서 의견이 다양합니다. 역사적 사실(팩트), 해석방법에 따라 해결방법도 상당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차원(사실(팩트) 차원, 해석 차원, 정책/실천 차원)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위안부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2. 억압되고 소거된 기억/이미지/정보를 복원하기
일단 역사적 사실, 팩트 부분부터 살펴보죠. 『제국의 위안부』 내용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시는 분들 중, ‘나눔의 집’에 계시는 할머님들의 증언을 반론의 증거로 제시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거기에 계시는 할머님들의 증언은 맞을 겁니다. 책의 저자인 박유하 교수도 이 부분에 대해 부인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일제 식민지 시기 조선인 위안부의 전체적인 상입니다.
책에서 비판하는 것은 기존의 위안부 담론과 운동들이 생산해내고 있는 ‘부분적인 상’, ‘하나뿐인 조선인 위안부 이야기’입니다. 그 대표적인 이미지가 ‘우물가에 빨래하다가 일본군의 총칼에 끌려가는 소녀’와 같은 소녀 피해자 이미지입니다. 그리고 이미 잘못된 역사적 사실로 밝혀진 ‘일본군에 의해 끌려간 20만 명의 소녀’라는 통설입니다. 현재 정확한 숫자가 확인된 바는 없습니다. 그리고 위안부로 끌려간 여성들은 소녀뿐만 아니라, 다양한 나이의 여성이라고 합니다.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 세우려고 하는 ‘소녀상’은 이런 기억/이미지/정보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기억/이미지/정보에 고착될수록 다른 기억/이미지/정보들이 소거되거나 은폐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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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위안부』는 기존의 위안부 담론과 운동에 의해 만들어진 상식/통념 하에서 소거되거나 은폐된 ‘다른 기억/이미지/정보들’을 우리에게 제시합니다. 그 기억/이미지/정보들은 사실 색다른 것이 아닙니다. 기존의 위안부 연구서들이나 증언자료를 꼼꼼히 살펴보면,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조한욱 교수(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가 한겨레신문 칼럼에서 “성 노예 할머니들에 관한 제국주의 일본 정부의 자료는 사료가 되기에 미흡하다.”고 『제국의 위안부』를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책의 제1, 2부에 인용된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들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서 직접 엮은 5권으로 된 증언집에 나오는 것입니다.(『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로 한울출판사에서 3권, 풀빛 출판사에서 2권 나왔습니다. 책이 나온 시기는 1993년, 1997년, 1999년, 2001년(4, 5권)입니다) 혹시 미심쩍은 사람은 직접 증언집과 『제국의 위안부』를 놓고 제대로 인용되었는지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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