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빨간 주부의 부엌에서 보는 세상 (19)

“새로운 신입 활동가 두 분을 소개 합니다~”
뉴스일자: 2015년03월10일 18시35분

지난 달 한 시민단체의 공식적인 행사 자리에서 ‘활동가’로 호명되었다. 쉰을 바라보는 나이에 새 일을 시작했고, 그것은 오랫동안 소망했던 NGO 활동가였다. 그런데 막상 ‘활동가’란 이름으로 호명되니 낯설기 그지없었다. 몸에 안 맞는 옷을 입은 듯 불편했다. 

활동가는 ‘어떤 일의 성과를 거두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힘쓰는 사람으로 정치 활동에 적극적인 사람’을 이른다고 국어사전에서 정의한다. 활동가란 이름과 함께 단체에선 ‘간사’라고 불리기도 한다. 간사는 ‘일을 맡아 주선하고 처리하는 사람, 혹은 단체나 기관의 사무를 담당하여 처리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수습기간 동안 ‘활동가와 간사’라는 두 이름에 과연 어울리는 사람인가 생각했다. 적극적으로 일의 성과를 위하고, 정치 활동에 열심이었나? 자문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또, ‘일을 맡아 주선하고 처리하거나 사무’와 관련된 일을 경험했나? 돌아보면 역시 주저 된다. 

익숙하지 않은 시민단체 업무를 시작하고 낯선 사람을 많이 만났다. 대학 교수, 정당인, 국회의원 보좌관, 다른 NGO 활동가, 예술가, 시민 등 선배 활동가 옆에서 묵묵히 경청했다. 그런데 동석한 자리에서 사람을 관찰하고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주목하게 되었다. 사무실에서 가장 오랜 경력의 선배 J는 십년 차다. 어떤 일에 십년의 경험을 쌓은 것은 그 분야에 전문가와 다르지 않다는 의미다. 그녀의 경력에서 나오는 업무 처리 과정을 보노라면 매번 놀란다. 그러나 업무에 능숙하고 익숙하다는 것은 한편으로 매너리즘에 빠질 위험도 도사린다. 그녀를 보면서 시민운동가로서 나름의 원칙을 고수하고 개인 역량을 향상시키려고 꾸준히 노력해 온 지난 세월을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생활 속에서 환경운동가로서 작은 실천을 등한시 하지 않는다. 일회용품 사용 자제, 버리지 않고 나누기, 회원에 대한 배려, 환경 중심적으로 생각하기 등 일상과 운동의 선을 그어 일과 삶이 분리되지 않았다.  
 
다음으로 내 옆자리에 앉은 동기 활동가 G도 흥미롭다. 180cm가 넘는 큰 키에 안경을 쓴 그는 이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동안이다. 외양은 또래의 흔한 청년이다. 알고 보니 실제 나이는 삼십대 초반이었다. 법학과를 졸업했고 번듯한 직장도 다녔다. 그러다 가난하고 일 많은 인권단체에서 인턴십을 거쳐 같은 기수로 일하게 되었다. 이 청년과 함께 있으면 무한한 긍정 에너지와 따뜻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 가끔 시대착오적인 유머가 그의 나이를 의심케 하지만 그가 던지는 농담은 낡은 사무실의 분위기를 돋운다. 때로 그의 재치는 나처럼 우울한 이상주의자에게 발 딛고 선 현실을 보라고, 객관적 사실에 충실하라고 경고등을 켜 준다. 그래서 무척 고마운 사람이다. 언젠가 그에게 왜 좋은 직장을 관두고 힘들고 빈곤한 이 일을 선택했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는 명쾌하게 대답했다. “거기 있는 것보다 여기 있는 게 더 편안해서요.” 그렇게 그는 자신의 마음이 이끄는 곳에 서 있고 싶어 했다.

또, 한 사람은 우리 단체의 회원이면서 '핵 없는 세상을 위한 대구 시민 행동 모임'에서 활동하는 청년이다. 마흔을 앞둔 그에게 '청년'이란 수식이 어울릴지 모르겠지만, 특정한 단체나 운동을 목적으로 탈핵 운동 단체에 가입하지 않았다. 살면서 어떤 계기가 그를 탈핵 운동으로 이끌었는지 자세히 모른다. 하지만 그는 일이 없는 시간이면 탈핵 시위에 참여하고, 모임의 정례 회의에도 참가한다. 자신의 손으로 무언가를 할 줄 아는 기쁨, 두 손과 두 발이 건강해서 움직일 수 있다는, 작은 것의 소중함을 아는 청년이다. 내게 감동을 준 또 고마운 사람이다.

십년 전 채용 면접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도 하고, 월급도 준다니 너무 좋은 데요” 라고 했다던 십년 차 선배, 동기 간사, '핵 없는 세상'의 청년. 그들의 삶에서 운동은 커다란 명분이 아니다. 자신이 해서 즐거운 일을 할 뿐이다. 그 일이 그들의 마음을 편하게 하므로 환경운동을 한다고 말한다. 그들에게 환경운동은 또래들이 누리는 안정과 다르지 않다. 우리가 충실하게 하루하루를 사는 것처럼 그저 삶일 뿐이다.

부르는 이름에 “네!” 라고 답하는 순간, 우리는 이름에 예속된 주체가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활동가’란 호명에 무조건적으로 대답할 수 없었다. 수습 기간 동안 이런저런 공간에서 만났던 다른 NGO 활동가, 그리고 같은 사무실의 동료들, 그들을 통해 오늘도 나는 시민운동가 혹은 시민단체 활동가란 호명을 고민한다. 세상의 수많은 직업 중에 하나이고, 일상과 분리되지 않는 삶이며, 자신의 직업에 성실한 그들처럼 생활인으로서 살아가기, 그것이 우선 얻은 호명에 대한 내 대답이다.

▲추위에 아랑곳없이 탈핵 시위에 나선 시민운동가들.(출처:빨간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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