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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청도군 각북면 삼평리의 송전탑 공사 반대 농성장. | | |
며칠 남지 않은 추석에도 농성장을 지키는 이들이 있다. 멀리 떨어진 자식을 기다리면서도 한국전력의 송전탑 공사 강행을 막기 위해 천막을 지키는 경북 청도 삼평리 주민들이다.
지난 11일 정홍원 국무총리가 밀양을 찾으면서 추석 직후 공사 재개가 예상이 나오고 있다. 그동안 한전이 밀양 구간 공사 재개 이전에 청도 구간 공사 시작을 주장해 왔기에 밀양의 움직임에 청도 삼평리도 다시 긴장감이 감돌 수밖에 없다.
불길한 예감이 맞아떨어진 걸까. 추석을 며칠 앞둔 15일 오후 기자가 삼평리 농성장에 들어서니, 한전 대구경북지사 직원과 청도경찰서 정보계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
“기자가 있으면 주민들과 이야기를 할 수 없다”는 한전 직원의 말에 잠시 농성장 밖을 나와 송전탑 공사가 중단된 곳을 바라보았다. 송전탑 공사를 위해 논을 가로질러 놓은 길과 굴착기, 덩그러니 파헤쳐진 송전탑 건설 예정지는 지난해 용역을 투입해 주민들을 길바닥으로 내동댕이친 한전의 ‘공사 강행 의지’가 떠올랐다.
주민과 ‘간담회’를 마친 한전 대경지사 관계자는 “추석 이후 공사를 강행하겠다는 통보를 하러 온 것이냐”는 질문에 “어떤 말도 해줄 수 없다. 추석이라 그냥 찾아온 것”이라는 대답만 반복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한전 측이 찾아왔다는 이야기를 “기사에 싣지 말아달라”는 말을 덧붙였다.
한전 직원과 경찰이 떠난 농성장에 들어섰다. 이내 할매들의 구수한 사투리와 정겨운 욕설이 흘러나왔다.
“저것들이 공사 강행할라고 또 찾아왔다. 근디 이제는 하나도 겁 안 난다. 기냥 추석이라 찾아왔다믄서 ‘밀양에 보상금이 늘어나서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청도도 보상금이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이바구는 와 하노. 우리는 보상금도 필요 없다고 안 카나”
예상했지만, 또다시 주민을 회유하기 위해 찾은 것이다. 신고리 3호기 생산 전기를 송전하는 북경남 송전선로 계획은 계속해서 어긋나고 있다. 정부가 밀양 송전탑 공사 강행 이유로 내세운 ‘신고리 3호기 내년 3월 상업운전’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신고리 3호기 부품성적서 위조로 공사는 최소한 2014년 8월까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시기가 되면 화력발전소 등이 준공될 것으로 알려져 정부와 한전이 강조하는 ‘전력 수급’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 가능할 수 있기에 송전탑 공사 강행은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삼평리 주민들도 이 상황을 잘 알고 있다. 지난해 공사 강행에 투입된 용역들과 몸싸움을 치른 삼평리의 김춘화 씨는 “신고리 3호기까지는 밀양 765kv 송전탑을 지중화하더라도 문제가 없다고 알고 있다. 밀양 송전선로를 지중화하면 우리 마을도 지중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날도 한전은 주민들에게 “전력 수급이 힘드니 송전탑을 빨리 지을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전했다고 한다.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온 이야기에 주민들은 정부와 한전의 전력수급 정책에 대해서도 알아가기 시작했다.
“송전탑 반대하러 도심에 다니다가 보이는 가로등 때문에 화딱지가 난다. 전기 모자르다면서 왜 불을 수도 없이 켜 놓는지...대기업에 드가는 전기를 싸게 파니까 전기가 모자르는 거 아니냐. 정 전기가 필요하면 저거 공장 근처에 발전소 세우고 송전탑 세우지, 왜 시골 사람들 못살게 구노”
농성장에 모인 주민들은 추석 차례상 준비만큼이나 송전탑 공사 강행에 대한 준비가 한창이다. 작년 처음 용역과 한전 직원과 마주했을 때는 겁이 났지만, 이제는 겁나는 게 없다. “암만 자주 와도 우리는 안 넘어간다. 한전과 정부가 여태껏 해온 거 생각하면 돈 몇 푼에 절대 안 넘어간다. 당해보기 전까지는 국책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정부가 하는 일이 이리도 (주민에게) 나쁜지 몰랐지만, 이제는 안 당할끼다”는 말을 내놓기 무섭게 할매들은 농성장 겨울나기 준비 이야기에 여념이 없다.
멀리서 찾아오는 자식들이 송전탑 반대 싸움을 걱정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언지. 암말도 안 한다. 엄마 그거 끝나면 심심해서 우야노 카드라”며 되받아치는 삼평리 할매들로 농성장은 한바탕 웃음소리가 들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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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5일 삼평리 주민들과 연대를 위해 찾은 시민들은 '예비소집의 날' 행사를 열고 송전탑 반대 싸움을 위한 의지를 모았다. | | |
지난 8월 15일 ‘삼평리 예비소집의 날’을 열고 송전탑 반대 싸움에 연대의 뜻을 모은 대구경북 시민들은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인 22일(일) 오후 4시에 ‘1차 비상소집’ 행사를 연다. 한전의 공사 강행 의지와 밀어붙이기식 공사에 저항하는 삼평리 주민과 연대의 힘 가운데 어느 쪽이 강한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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