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현의 그 노래를 들어라] (24) 마천에서 산내로 가는 지리산 여객 버스

투쟁하는 노동자 민중들에게 평화와 위안의 시간이 도래하길
뉴스일자: 2013년04월25일 20시30분

마천에서 산내로 가는 지리산 여객 버스
 
마천에서 산내로 가는 지리산 여객 버스는
늘 소담스럽다
마실 나가는 아지매 몸빼 바지에 묻어있는 이야기나
아침 일찍 일 나가는 할매들 배낭 속에 이야기를
지리산 여객 버스는 스스럼없이 받아 안는다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버스는
어떻게 지냈냐는 안부를 대책 없이 던지더라도 버스는
딱히 부끄러울 것도 없고
딱히 자랑할 것도 없는 이 작고 작은 마을을
지리산 여객 버스는
설렁 설렁 잘도 간다
치매끼가 들어 걱정이라는
아비의 이야기를 진담 반 농담 반 섞어
내게도 던지는 지리산 여객 버스는
함양군수 재 선거 현수막이 붙은 마천농협을 지나서
북한 미사일 발사 위협을 들먹이는 세상을 지나서
내려앉은 한 뼘 햇살처럼 평온하게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경계도 없이 간다
길가에 늘어진 노란 개나리에게도
떨어져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벚꽃에게도
다 들릴 만큼 조용한 길 위에서
지리산 여객 버스는
쉬엄쉬엄 잘도 간다

 
**주말에 쉬지 못하고 주중 이틀을 쉬고 있는 지금은 한없이 평화롭다. 멀리 경운기 탈탈거리는 소리도 들리고 엔진톱으로 무언가를 자르는 소리도 들리고...이름 모를 새들이 마당에 피어난 매화나무며 복숭나무 가지에 앉아 그 작은 흔적을 남기고 떠나기도 한다. 휴양림이 있는 함양과 이곳 산내는 버스로 약 20분 남짓이다. 가끔 시속 30킬로미터의 속도로 오가는 지리산 여객 버스를 타고서 집으로 온다. 묻지도 않은 이야기와 묻고 싶었던 이야기를 주섬 주섬 사람들은 내남없이 이야기 하고 웃으면서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매일 보는 얼굴이겠지만 그들이 건네는 안부와 인사는 한없이 정겹다. 이런 평화로움을 즐기고 있는 나는 오늘도 죽음의 시간과 단절과 고립의 고통을 견뎌내며 투쟁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한없이 미안하고 미안하다. 하루 속히 모든 투쟁하는 노동자 민중들에게 평화와 위안의 시간이 도래하길 기도해 본다.


신경현(시인, 노동자) 그는 '해방글터' 동인으로 시집 '그 노래를 들어라(2008)', '따뜻한 밥(2010)'을 출간했다. 그는 대구와 울산 등지에서 용접일을 해왔다. 2011년까지 성서공단노조에서 선전부장으로 일하다가 현재는 지리산 실상사 산자락으로 들어갔다. 도시를 떠나 산골에서 자연과 사람의 이야기를 노래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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