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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을 보는 눈>, 강수돌 저, 개마고원, 2012. 12. 7, 정가 14,000원 | | |
사실 강수돌은 자신의 꿈을 ‘돈의 경영’이 아니라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즐겁게 일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를 연구하는 삶의 경영학자라고 소개한다. ‘배운 것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자’라는 가르침을 자신부터 실천하는 것이 변혁의 첫걸음이라고 강조한다. 그런 그에게서 나온 노동에 대한 관점은 단순한 지식인의 관점보다는 마을 이장과 교수로서의 언행일치를 강조하는 행복, 더불어 사는 행복에 관한 이야기이다.
구체적으로 ‘노동을 보는 눈’은 노동 전반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고 노동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전망까지 내놓는다. 무엇보다도 쉽고 평이해서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그는 노동, 토지, 화폐는 상품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임에도 상품화가 된 것이 자본주의 가장 근원적 모순이라고 밝힌다. 노동력이 상품화되는 과정은 노동력과 생산수단의 폭력적 분리의 과정이라고 고발한다. 그리고 자본의 노동에 대한 통제는 인간자본론, 성차별,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따른 치열한 경쟁을 통한 노동자 간 경쟁 유발이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그의 결론은 생산수단과 노동력 분리 지양, 노동력, 토지, 화폐의 탈상품화와 사회적 필요에 의한 생산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특히 파업과 관련해서 강수돌은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소수만 제외하고 대부분은 노동하며 살아가야 하는데도 노동자에 대한 차별적 시각과 심지어는 자신이 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라고 생각하지 않거나 강자 동일시를 통해서 생존권을 찾기 위해 파업을 하는 노동자를 비난하는 자세가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럼 강수돌의 노동에 관한 이야기를 따라 가보자.
강수돌은 봉건시대까지는 노동을 천한 노예가 하는 일이라고 인식했지만 종교개혁과정 이후 이런 인식은 조금씩 바뀌기 시작하며 급기야 ‘노동을 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원칙까지도 등장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 원칙은 이중으로 적용된다. 정치가나 자본가는 별다른 노동을 하지 않으면서도 과소비나 사치로 흥청대고 노동자들이 힘겹게 파업을 벌이면 무노동 무임금의 원칙을 갖다 댄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물품이나 서비스의 제조, 판매 과정에서 노동의 의미나 보람을 느끼지 못하고 소외된 노동을 하기 일쑤이며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고립되거나 파편화된 인간관계만을 유지하면서 무한 경쟁 속에서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고민하고 하루하루 연명할 생각만 하는 상태에 놓여있다고 진단한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 남부 유럽 노동자들의 투쟁 등은 자본에 의해 왜곡된 현실을 희망적인 방향으로 고치기 위한 진지한 움직임으로 평가한다.
그리고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을 인용 자본주의 특수성과 모순, 노동시장의 탄생과 비밀을 밝힌다. 칼 폴라니는 ‘거대한 전환’에서 노동, 토지, 화폐는 상품이 되어서는 안 되는 성질임에도 자본주의에서는 모두 상품이 됨으로써 인간의 삶이 불행해졌다고 본다. 삶의 터전이 되어야 할 토지, 거래의 수단이라는 성격의 화폐가 상품이 됨으로써 투기, 재산 증식의 수단으로 되었고 노동력이 상품이 되다 보니 일을 통한 보람과 만족보다는 기계의 부품으로 전락했다고 본다. 그래서 노동력의 상품화야말로 자본주의 사회의 특수성이자 자본주의 모순의 근원이라고 지목한다.
노동력이 상품으로 거래되는 과정은 사람이 공동체에서 분리되는 과정, 그 과정에서 노동력과 생산수단이 분리되는 과정, 부르주아의 등장, 근대 계몽주의적 시민혁명의 과정이었다. 사람이 공동체에서 분리되는 대표적인 사례는 영국의 인클로저 운동이며 한국의 새마을 운동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농촌 공동체로부터 개인이 분리된 것은 동시에 노동력과 생산수단이 분리되는 과정이기도 했다. 이제 몸밖에 남지 않은 프롤레타리아트와 성공한 상인, 수공업자 출신의 부르주아는 형식적으로 자유로운 계약이나 자본가의 사적 소유권의 보장을 위해 시민혁명을 일으켰다. 사실 자유와 평등을 시민혁명의 핵심으로 알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소유권 보장이었다. 이런 것들이 노동력 상품화의 역사적 전제라고 밝힌다.
‘자본주의에서는 노동력을 팔지 않으면 왜 생계가 곤란할까?’라는 물음을 통해서 노동력과 생산수단의 폭력적 분리를 고발한다. 겉으로는 자유로운 선택으로 이뤄지는 노동의 이면에는 땅과 사람의 폭력적 분리, 이에 대한 개인적·집단적 저항과 저항의 실패, 그로 인한 좌절과 체념이 배경으로 깔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장기적으로는 생산수단과 노동력의 분리를 지양하고 노동 생산물, 노동력, 토지, 화폐를 탈상품화하고 이윤이 아닌 사회적 필요에 맞는 생산을 대안으로 내놓는다.
자본의 ‘정당한 차별’이라는 개념의 속성을 통해 자본의 노동통제도 언급한다. 정당한 차별의 대표적인 사례인 ‘인적자본론’은 사람을 자본으로 보고 인적자본에 대한 투자(교육, 훈련)를 많이 할수록 인적자본(사람)이 받는 보상도 크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자본주의 경영학에서는 능력에 따른 차별을 정당한 차별로 본다. 이 능력이란 자본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되는 능력으로 일 잘하는 능력과 말 잘 듣는 자세까지 포함한다. 그렇지만 기업이 요구하는 이윤을 추구하는 데 도움이 되는 능력은 인간적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과는 차이가 있다. 사회와 기업에서 이런 능력을 강조하면 할수록 공동체적 인간관계는 약화하고 이기적 심성은 조장된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소통과 연대보다는 개인의 능력을 키우고 인정받으려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노동자들 내부는 분열과 경쟁이 심해진다. 하지만 이럴수록 자본은 노동 전반을 통제하기가 쉬워진다고 강조한다.
이런 점에서 성차별 역시 예외일 수가 없다고 한다. 성차별은 오랜 역사를 가졌지만 가장 체계적이고 구조적으로 이뤄지는 것은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부터이다. 자본입장에서 여성 노동력은 미숙련 노동자이기 때문에 남성 임금의 절반만 주어도 되고 기업의 통제와 지시에 저항할 여지가 적었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었다. 현재 노동시장에서 구성원 수는 여성과 남성이 거의 비슷하지만, 남성 가부장주의가 지배적인 사회구조상의 문제,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능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조직문화 및 사회풍토, 불평등한 가사 및 육아 노동의 분배, 편견 등등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상승 장벽(유리천장)으로 많은 차별을 받고 있다. 성차별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는 남성과 여성의 평등을 중시해야 하지만 이차적으로는 남녀 모두가 현실의 잘못된 구조와 의식을 함께 타파하는 데 힘을 합쳐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남성 위주의 경제 활동 오류를 여성도 범하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의 노동에 대해 강수돌은 경쟁이 전 세계적으로 치열해지면서 인간 노동력끼리의 경쟁도 심화한다고 본다. 이렇게 되면 노동유연성 강화로 정리해고나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노동강도도 강화된다. 노동 유연화라는 것은 해고를 자유롭게 하거나 비정규직의 사용을 쉽게 하거나 노동자가 여러 가지 일을 수행하게 한다든지 시간,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일을 수행하게 하는 것이다. 노동자로서도 노동유연화는 어느 정도 필요하지만, 기업의 필요에 따라 이뤄지는 노동유연화는 사회보장 제도가 미비하고 온갖 차별이 심한 현실에서는 대량 해고와 비정규직의 급증으로 이어진다. 결국, 노동유연화는 겉으로는 자유로운 유목민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더 많은 삶의 자율성을 잃고 일자리나 돈벌이에 매달려야 한다. 그리고 정리해고와 더불어 노동유연화의 대표적 수단으로 등장한 비정규직은 노동과 생활이 불안정하고 여러 처우에서 차별이 심하다. 이런 차별은 마음에 큰 상처를 남기고 이런 점 때문에 더욱 외톨이가 되고 참된 사회 변화를 위한 소통과 연대는 갈수록 어려워진다고 진단한다.
강수돌은 일중독 사회에서 그 피해는 노동자들에게 전가되고 있다고 고발한다. 한국은 OECD 나라 중에서 최고의 노동시간을 자랑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과로사, 소진, 스트레스 왕국처럼 되었다. 한국은 대학진학률도 세계 1위이지만 산업재해율도 1위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부에서는 산업안전 예방뿐만 아니라 통계 수치에도 많은 신경을 쓴다. 그 탓에 안전사고나 직업병 등 업무상 사고가 나더라도 산재 인정을 받기가 어려운 경향이 있다. 특히 LG전자나 삼성전자 같은 재벌 기업에서 발생하는 직업병, 안전사고는 수많은 현실적 장벽 탓으로 산재 신청을 내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고발한다.
그럼 왜 사람들은 건강이 망가지고 생명이나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을 잃을 정도로 일할까? 흔히 생계 문제라고 한다. 하지만 이 답은 진실의 일부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한국보다 훨씬 적게 일하는데도 삶의 질은 높은 나라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같은 자본주의이지만 사회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강력한 노동조합 운동을 바탕으로 노·사·정 사이의 대화와 협상을 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고 개인 권리 의식과 더불어 사회적 책임 의식을 체계적으로 교육하는 점 등등의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 이런 사회도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때문인 경쟁 압박이 작용해서 일중독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한다.
파업과 관련해서 강수돌은 노동법의 한계와 정부, 언론 태도의 문제점, 시민의 자세에 대해 강조한다. 파업에 관한 단서 조항이 많아 노동자의 집단행동권은 많은 제약을 받아 형식적으로는 권리가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무권리 상태가 되기 쉽다. 즉 파업 같은 쟁의행위는 노동권 보호 차원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경영권이나 자본주의 체제 자체는 공격하지 못하게 막는 시스템 보호의 차원도 있다. 그래서 노동법의 테두리 안에서 노동문제를 푸는 것은 일정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헌법에는 노동3권이 보장되어 있다. 그럼에도 언론이나 사회에서는 노동조합을 가능하면 없어야 할 존재, 무언가 정치적 의도를 가진 존재로 여긴다. 이는 정치적으로 기업과 권력의 입장에서는 노동조합을 야당 내지 재야 세력으로 간주하고 노조가 개입하면 돈이 많이 들고 원하던 대로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노조를 가능한 한 배제하려고 한다. 게다가 반공이데올로기는 자본주의에 비판적일 수밖에 없는 노동조합 운동을 더욱 삐딱하게 보게 한다. 그리고 사회심리적으로는 기업이나 경제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노조는 방해만 될 뿐이라고 사람들은 인식한다. 이런 사회적 편견은 언론, 교육 등 여러 이데올로기 장치를 통해서 재생산되고 있다. 이런 편견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릴 때부터 인권/ 민주시민교육과 사회 전반에서 평등하고 민주적 토론과 합의를 이루어내는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철도나 전기와 같은 공공부문이 파업하면 정부나 언론은 ‘시민의 발목/목숨을 잡은 파업’이라는 표현을 쓴다. 이렇게 되면 시민권과 노동권이 대립하는 형국이다. 반면 의사 등의 고수익 전문가들이 파업하면 원인을 진단하고 당사자들의 의견을 듣고 토론을 열어 합리적인 해결책을 모색한다. 이런 이중성은 전문직, 정치가들은 높은 사람이고 노동자들은 낮은 사람이라는 뿌리 깊은 편견과 평소 공무원, 공공기관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파업 같은 사태로 폭발해서 그런 반응이 나오고 반공이데올로기 등이 원인이라고 진단한다. 이중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노동자 파업이 일어났을 때 다소 불편하더라도 당연한 노동자의 권리 또는 사실 모든 시민이 결국 노동자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강수돌은 노동해방을 통해서 일류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고 한다. 자신의 꿈을 발견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에 꾸준히 실력을 증진하면서 자신의 행복과 사회의 행복을 같이 추구하는 것이 바로 일류인생이다. 사실 아무리 해도 세상이 변하지 않을 것 같지만, 역사는 변화해왔다. 그래서 노동해방과 일류인생을 살 수 있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나 자신부터 변화하고 모든 사람이 보편적으로 행복을 찾는 꿈을 꿔야 한다. 이렇게 되었을 때 경쟁과 분열을 극복하고 소통하고 연대가 가능한 사회가 가능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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