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날] 만년 겨울, 얼어 붙은 <두만강>

경계짓기, 그 소리없는 슬픔
뉴스일자: 2013년02월16일 07시48분

다른 뉴스는 모두 묻혔다. 묻힐 수밖에 없었다.

지난 한 주는 북한의 핵실험이 신문지면과 웹을 뒤흔들었다. 북한을 비난하는 태도에서 대화 시도를 단절한 현 정부를 비판하는 태도까지. 2011년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불법파견 철폐를 요구하며 공장점거 파업을 벌일 당시, 연평도 포격 사태가 일어나자 언론의 관심은 조용해졌다. 현재도 한국사회를 뒤흔들 가장 큰 요인은 ‘북한’임이 새삼 확인된다. 그렇지만 우리는 북한을 잘 모른다. 알 턱이 없다.

핵실험과 같은 거대담론에 지쳐있을 이들에게 갈라진 ‘경계’를 고민한 영화 <두만강>을 소개한다. <태극기 휘날리며>, <고지전>류의 한국전쟁이 낳은 분단의 아픔을 그린 블록버스터도 아니다. 대사가 거의 없는, 무성영화인 줄 착가에 빠질만큼 고요하고 지루할 수도 있는 영화다.

연변 조선족 자치주와 북한 함경도를 사이에 둔 두만강 변의 한 마을. 식량을 구하려고 강을 넘나드는 소년 정진과 조선족 소년 창호는 우연히 친구가 된다. 둘은 축구를 매개로 더 가까워진다. 하지만 누나 순희가 탈북 청년에게 강간당한 사실을 안 창호는 정진을 외면한다.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두만강은 얼어있다. 얼어붙은 두만강 위를 냅다 달리던 이는 이내 소리 없이 누운 차가운 시신으로 얼음 위에 뉘여 있다. 계절이 겨울이어서 일까.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계절은 겨울이다. 한반도의 계절이 변함없이 겨울이듯.

창호의 할아버지는 북한 방송이 나오는 TV를 보고, 치매에 걸린 노파는 다시 두만강을 건너 북한으로 가고자 한다. 그 곳 사람들은 굶어죽는다는 말도 노파에게 들리지 않는다. 전파는 건너는 강을 사람들은 건너지 못한다.

두만강을 건너는 북한 친구를 신고한 창호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누나를 강간한 몹쓸놈과 친구 정진 사이에 공통점은 ‘탈북’한 사람이라는 것 뿐. 우리는 종종 이데올로기가 만든 범주로 경계를 짓는다. 경계선 근방에서 두리번거리는 이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두만강>의 연출자 장률은 이전 작품인 <망종>, <경계>에서 그렇듯 끊임없이 경계를 담는다. 넘어서지 못하는, 넘을 수 없는 경계를 고민한다. 남한 사회에서 바라보는 시선이야 조선족과 새터민이 크게 다를 바 없겠지만, 그 곳에도 경계가 있다는 사실.

강 건너 함경도로 건너고자 하던 노파는 영화의 마지막에서 두만강 다리를 뚜벅뚜벅 걸어 그 곳으로 간다. 갈 수 없는 곳이라는 사실을 치매 덕분에 망각한 것이다. 철지난 영화를 다시 꺼내 들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아직도 한반도가 겨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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