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랑비가 내린다. 이번 겨울은 유난히 춥기도 하지만 비도 자주 내린다. 글을 쓰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았는데 문자가 온다. “사진가 최민식 선생 귀천. 용호동 성모병원장례식장5호실, 발인 15일” 선생님이 돌아가셨다. 사진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알만한 분이겠지만, 그분의 사진을 볼 때마다 지지리 못난 군상들과 전쟁과 가난의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 리얼리즘 사진을 이야기하면서 최민식 선생님의 사진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젊은 날에 선생님의 사진 한 장이 웅변해 주는 것을 보면서 내 노래가 가지는 설명이 참 번거롭기까지 했다.
50~60년대 부산 사람들의 모습과 그 흑백사진에서 묻어 나오는 자갈치 시장 사람들의 생존 모습에서 고스란히 한 시대의 절망과 그리움을, 그리고 그 속에서 가난하지만 피어오르는 꿈을 읽을 수 있었다. 또한, 부산을 지키며 최근까지 한순간도 작업을 게을리하지 않는 모습에 예술가로서의 태도를 어깨너머로 배우기도 했다. 가끔 길에서도 우연치 않게 뵐 수 있었고 어떤 자리에선 내 노래하는 모습을 찍고 싶다고 하셨다. 그땐 참 황송했다. 선생님의 사진 중에 나를 깨우친 사진들도 있지만, 다큐멘터리 같은 부산의 옛 모습이 담긴 사진에서는 많은 것을 아프지만 그립게 한다. 하나같이 가난한 이들이 사는 곳이요 생활의 현장이다. 그 사진 한 장 중 50년대 보수동 판잣집 사진이 있다. 어찌 그리 하나같이 똑같은 모습일까. 가장 구하기 쉬운 판자로 다닥다닥 붙은 집들이 우리네 힘들었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지금의 중앙동에 가면 잘 정돈된 40계단이 있다. 계단 중간에 아코디언을 켜고 있는 노인의 동상과 그 아랫길에 역사테마거리 조성사업으로 예전 우리네 삶의 단편들을 형상화한 조각들로 잘 꾸며져 있다. 40계단은 영도다리와 보수동 헌책방 골목, 국제시장과 함께 피난시절 사람들이 많이 붐비던 곳이다. 40계단에는 슬프고도 참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다. 전쟁 통에 피난 왔던 사람들이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헌책도 팔고 일도 해야 했지만, 지금은 꽃마을이라고 하는 산동네에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산기슭에 꽃을 심어 사람이 붐비던 40계단에 나와 팔았더니 돈이 되더란다. 이집저집이 꽃을 심어 팔다 보니 40계단은 꽃마을에서 내려온 꽃 장사들로 꽃밭이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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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까지 살았던 산복도로 보수동 우리집 앞의 골목길에 있는 바위. 길을 오다 바위를 만나야 한다. 뛰어넘던지 한 뼘 되는 바위 옆길을 돌아가야 한다. [사진: 우창수] | | |
전쟁통에 힘들고 처절한 삶들이었겠지만 그래도 꽃 한 송이 사서 사랑하는 이에게 건네줄 순정이 전쟁 중이라도 가능했으리라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참 애처롭고 사랑스럽다. 그 산 위쪽으로 생성된 마을들이 달동네들인데 그 중간에 길들이 생겨나고 좌천동, 영주동, 보수동 넘어가는 길을 산복도로라 한다. 부산에만 있는 길 이름이다. 나는 산복도로에 집을 구하러 다닌 적이 있는데 일부러 만들려 해도 그렇게 만들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어느 집 방안에 들어섰는데 계단이 있다. 그 귀에 집을 얹고 또 그 위에 집을 얹어 지금의 산복도로 집들이 형성된 것이다. 나는 부산에 구경 오는 사람들에게 해운대, 광안리도 있지만, 부산을 보려면 이곳 산복도로 마을과 영도의 절영해안도로를 가보라고 한다. 이름난 관광지들이야 삐까뻔쩍해서 외국의 어느 관광지 못지않지만, 부산을 보려면 역시 산복도로다. 그곳엔 사람도 있지만, 역사도 있다.
한진중공업이 있는 영도는 일제시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조선소가 있었던 곳이다. 배를 수리할 때마다 수작업으로 망치를 때리니 그곳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을 망치소리에 빗대어 “깡깡이 아줌마”라고 했단다. 좀 더 먼 옛날로 돌아가 보면, 옛날 말을 키우기 위한 섬이니 영도의 옛 이름은 ‘절영도’이다. 끊을 ‘절’ 그림자 ‘영’ 예컨대 말이 자기 그림자를 끊고 달려갈 정도로 날쌔고 좋은 말들이 있는 섬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옛날엔 말들에게 호랑이가 가장 무서웠기에 호랑이가 범접하지 못하는 섬에다 목장을 만든 것이다. 지금은 그 표지석만 있을 뿐이다. 영도의 동네이름에는 신선과 관련된 동네이름이 많다. 대표적으로 ‘신선동’이 그렇고 ‘영선동’이 그렇다. 한여름인데도 영도 봉래산 산 중턱에는 구름이 걸려있다. 안개도 많아 영도의 젊은 엄마들은 지금도 아이들 천식에 고생한다. 그런 구름이 걸려있는 영도이고 보니 가히 신선들이 있는 섬이라고 했을 법하다. 그런 영도의 달동네에도 ‘산복도로’가 있다. 그 작은 집들이 서로 웅크리며 끌어안고 앉아, 저 아래 부산 앞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는 집들이 있다. 그 집들이 알처럼 품고 있었던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에게 전해줄 때가 있다. 한결같이 가난했지만, 영도를 떠나는 꿈을 꾸었고 또 누구는 영도로 살러 들어왔다. 그래서 산복도로에는 이야기가 있다. 멀지 않은 과거의 나와 당신의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나는 ‘신선동 편지“라는 노래를 몇 해 전에 만들었었다. 그 가난한 꿈들의 이야기를...
최민식 선생님의 귀천 소식을 듣고 최민식 선생님의 그 종이거울 속의 얼굴들과 자갈치 시장의 할머니, 산복도로의 그 집들이 새삼 생각난다. 선생님의 명복을 빌면서 영도의 신선동, 그 산복도로에서 부르는 노래를 창밖 빗소리에 얹어본다.